타고나지 않았어도 노력은 해야 하는 법
나는 시간 개념이 없다. 약속 시각에 종종 늦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 남편은 늘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와서 더 늦게까지 혼자 여유로운 나를 기다렸다. 그래도 나에게 화내지 않았고, 나는 무슨 특권인 양 그 상황을 누렸다. 시간 개념이 정확한 남편 몸에서 사리가 나왔을 것 같다. 연애 7년, 결혼 13년을 합쳐 20년을 함께하며 나를 지켜봐 온 남편은 시간 부분에선 이젠 내려놨다. 그래야 본인이 편하니까.
5년 전 자기계발을 하면서부터, 성공한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시간을 지키려고 애썼다. 돈의 속성을 쓴 김승호 작가는 약속 시각을 지키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이 얼마나 성공할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워낙 천성이 느린 데다 시간 개념이 없는 나는 약속 시각보다 3시간 정도 더 일찍 서둘러서 준비를 시작한다. 1시간이면 되겠지 하고 준비하다 보면 1시간을 늦게 되기에. 3시간 전부터 여유 있게 준비하다 보면 고작 30분 정도 일찍 도착한다. 매번 늦으며 나는 왜 이 모양 밖에 안될까 하는 자기 비난을 하다가, 시간을 지키고부터는 내가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뻑도 한다. 그럼에도 매번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순간 또 시간을 통으로 날려버리곤 한다.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올해 디지털 배움터 강사로 일을 하며 강의 시간에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늘 1시간 전에는 강의장에 도착해 여유롭게 일을 했다. 그리고 좋은 기회로 연결이 되어 모 협회 직원 대상 특강을 진행하게 되었다. 호텔 컨벤션 홀에서 진행되는 행사였고, 50여 명의 직원 앞에서 강의해야 했다. 일면식도 없고, 그들이 SNS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도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하는 첫 강의라 긴장이 되었다. 내가 강의를 해야 하는 시간은 2시였다. 그 전에 다른 강의가 1시 50분에 끝나니까 1시 40분까지만 와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라서 아예 1시까지는 도착해 있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날 오전에는 블로그 수강생들과 독서 모임이 있었고, 다행히 독서 모임 장소와 강의장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독서 모임 끝날 즈음 시간을 봤더니 12시였다. 모두 한마디씩 소감을 듣고 독서 모임을 마무리했다. 한 분이 남아서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나는 시간을 보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제 슬 준비해야겠다 싶어 시계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시 47분이었다.
"지금 1시 47분이 맞는 거예요? 시계가 잘못된 거 아니죠? 저 1시 40분까지 강의장 가야 하는데……."
"맞아요. 저는 강사님이 시간 점검하고 계신 줄 알았어요."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순간 눈앞이 캄캄하며 정신이 아늑해졌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짐을 챙겨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택시가 바로 잡혔다. 강의가 늦어져서 5분 정도 걸린다고 담당자에게 전화하니 괜찮다고 시간 안에만 오라고 하신다. 강의장은 제주 썬호텔이었다. 1시 54분. 택시 기사님이 데려다준 곳은 제주 선스테이 호텔이었다. 썬호텔로 가야 한다고 하니 내가 택시 어플에 도착 장소를 선스테이 호텔로 찍었단다. 이럴 수가. 제대로 체크하지 않는 나의 허당이 이럴 때 나오다니. 2시에 강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죄송하지만, 썬호텔로 빨리 좀 데려다 달라고 사정을 하고 가는 내내 마음을 얼마나 졸였던지. 다행히 썬호텔 도착하니 1시 59분이었다. 빛의 속도로 뛰어 2층 강의장에 2시에 도착했고, 바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강의를 앞두고, 시간을 체크 해야 했음에도 나는 또 어느 순간 느긋해졌다. 이런 알 수 없는 여유는 타고난 성향이라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J 성향이 강한 남편과 딸은 약속 시각이 정해지면 수시로 시간 체크를 한다. 반면에 나와 닮은 아들도 시간을 보지 않고 느긋하다. 아들을 보며 나는 나를 보았다. 내가 저랬구나……. 새삼 남편에게 미안해졌었다.
인프피 친구들도 종종 약속에 잘 늦는다. 아이도 키우며 각자 일을 하다 보니 늘 쫓기듯 시간을 내어 모임에 온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것 같은데 종종 허당이다. 스스로 구멍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세세한 건 잘 못 챙기고, 이상은 추구하지만, 현실감각은 떨어진다. 때때로 실수를 하고, 약속 시간에 늦고, 놓치는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또 어떻게든 해내는 근성은 있다. 다만 내가 관심 있고 하고 좋아하는 일에만 발휘된다는 것.
이번 강의도 다행히 어떻게든 시간에 맞춰 진행하게 되긴 했다. 만약 늦었더라면, 행사 전체가 늦어졌을 수도 있고, 나를 기다린 사람 50여 명의 시간에 피해를 끼치게 되었을 것이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다. 타고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변하려고 노오력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