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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Oct 25. 2022

돼지 엄마와 물귀신 - 1편

- 일단 튀어 (수정본입니다.)

        

   1월, 이사를 했다. 이사 이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음’이라는 편안함과 동시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편안하다는 생각에 커피 한 잔 들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모를 쓸쓸함에 마음이 잠기는가 하면, 그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동네 산책이라도 다녀오고 나면 다시 혼자라는 편안함에 안도하곤 했다.     


   “여보, 나 옷 이렇게 입고 요 앞 마트 나가도 되겠나?”

   “뭘 걱정하노. 이 동네에서 니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어쩌면 편안함 쪽에 더 손을 들어주는 것인가 싶었다. 10여년을 살았던 지난 동네에서는 아이를 찾으러 놀이터에 나갈 때, 식빵 사러 편의점에 갈 때라도 차분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곤 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얼굴만 아는’ 지인들이 훅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2학년이 되는 9살 아들 현민이의 전학이다. 남편은 평일은 거의 회사에서 머물곤 하니 동네보다는 집에 적응하면 되는 것이었고, 나는 편안한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고 있다만. 우리 아들 현민이, 아직은 방학이라 ‘이사 와서 집이 깨끗해서 좋아’라고만 하고 있는데 3월에 개학을 하면 이 녀석이 전학한 학교에 적응을 잘 할지. 도서관 체육관 급식실등을 잘 찾아다닐지 문득문득 걱정이 되곤 했다. 그 중에 가장 큰 걱정은 ‘현민이가 친구를 자연스럽게 잘 사귈지’였다.     


   현민이의 1학년 학교 생활은 현민이 말마따나 ‘재미 하나도 없음’이었다. 현민이의 성격 탓인지, 코로나 탓인지, 엄격하고 사무적이었던 1학년 담임 선생님 탓인지 현민이는 1학년 내도록 단 한 명의 친구도 적절하게 사귀질 못했다. 어린 녀석이 친구들 사이에 끼지를 못하고 아이들 주변을 뱅글뱅글 맴돌기만 했을 것이 눈에 선했다. 1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통화에서도 선생님은 현재 현민이반 남자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태권도나 미술 등의 학원을 알아봐서 현민이도 그 타임에 등록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태권도 학원에 일부러 보내보기도 하였으나 현민이는 아이들과 사귀기 보다는 태권도 도장에서 주는 쿠폰을 모으는데 한참 열의를 보이다가 그것이 시들해지자 태권도 학원도 그만두고 싶다고 떼를 썻다. 


   그러다가 1학년 가을 즈음 남자 아이 한 명이 현민이네 반으로 전학을 왔다. 용재. 현민이는 용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하교시에 용재의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로 걸어오는가 하면, 놀이터에서도 용재의 손을 놓질 않았다. 나는 안 보는 척, 안 듣는 척 하며 둘이 노는 것을 약간 거리를 두며 지켜보곤 했다. 친구를 사귀고자 애써왔던 현민이 마음이 어땠을까... 하면서. 그 날도 귀가 이만해져서 둘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현민이는 용재의 손을 잡고 용재에게 속삭였다. “우리 앞으로 계속 친하게 지내자.”라고.     


   그 날도 용재랑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다며 용재에게 줄 젤리며 초코 과자를 작은 지퍼백에 넣어 신나게 뛰어간 현민이였다. 유튜브를 보며 힘들게 접은 금색 미니카도 용재에게 주겠다며 잊지 않고 챙겨나갔다. 나는 집안 정리를 좀 하고 놀이터로 나가려던 찰나 현관에서 현민이와 마주쳤다. 놀이터에 나간지 30분 정도 지난 후였다.

   “왜? 뭐 가지러 온...”

   아이의 눈을 보니 그건 아닌 거 같고. 현민이는 털레털레 집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네네(잠자는) 이불에 털썩 누워버린다.

   “왜...에...? 용재 안 나왔어?”

   “아니.”

   “음...? 둘이 싸웠어?”

   “아니.”

   “왜에에? 엄마한테 말 해 주기 싫어...?”

   “아니... 그게 아니고.”

   “말 하고 싶을 때 말 해 줘. 난 나갈게.”

   “엄마. 용재가... 나랑 안 논데.”

   “어?”

   “다른 애랑 논데. 놀이터에 나와있는 찬우랑, 승우랑, 민재랑, 영찬이랑.”

   “그랬...구나...”     


    나는 현민이랑 둘이서 그렇게 조금 끌어안고 있었다. 저 어린 것을 어찌할꼬. 엄마인 나는 현민이 같은 반 아이들을 불러다가 우리집에서 치킨파티라도 하고 싶었으나, 코로나 시국에 엄마들이 보내줄지도 의문이였고 파티 후에 오고 갈 뒷말도 염려스러웠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것에 관심은 있으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어린 아들을 케어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케어 안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한 채 그저 아이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현민이의 1학년 학교생활은 마무리되었다.     


   그런 아이를 전학을 시켜야 한다. 1학년 맞춰서 전학을 시켰어야 했는데... 하필 코로나 시국이여서 집 매매가 너무 어렵다보니 1년 늦춰진 것이 괜히 아이에게 부담만 주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나. 너나 나나 잘 적응하는 수 밖에. 나는 전학 신청을 하러 가는 날, 현민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오늘 전학 신청하러 가는데 엄마랑 같이 갈래?”

   “아니.”

   “같이 가면 오다가 엄마가 붕어빵 사 줄게.”

   “어, 붕어빵? 엄마 언제 갈 꺼야?”     

   말캉말캉 순두부 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능글능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 같고. 우린 점심을 먹고 학교를 갔다. 학교를 둘러보며 이제 너가 다니게 될 곳이라고 말 해 주어도 현민이는 그저 빨리 나가자고 졸라댔다. 녀석 머릿속엔 붕어빵만 한가득일테지. 전학 신청을 무난하게 한 우리는 붕어빵을 한 가득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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