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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Nov 30. 2023

남자애만 키우는 엄마에게 남성비하란

일란성 쌍둥이지만, 쭌은 엄마 닮고 윤은 아빠 닮았습니다


- 둘이 어떻게 구별해요? 엄마는 구별하죠?

  나는 이 질문은 10여 년 넘게 듣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질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익숙한 질문일 것이다.     

- 글쎄요... 뭐랄까... 윤은 좀 갸름하고 잘 생긴 느낌...? 쭌은 좀 동그랗고 귀여운 느낌이랄까요?

- 네에? 전 둘이 너어무 똑같아서 전혀 구분이 안 가는데요?


  사람들은 나의 대답에 의아해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저렇게 다른 애들이 구분이 안 간다고? 앗따, 눈썰미들 없으시네.’하곤 넘어갔다. 남의 아이를 얼마나 자세히 보겠는가. 그냥 동네에 자주 보이는 쌍둥이들 중에서 조금 흔치 않은 일란성 쌍둥이일터.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아이들의 친구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은 없고, 그저 느낌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아이들 이름을 지을 때부터 일부러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준서, 준우’ 라던가, ‘도윤, 시윤’이라고 명하고 싶지 않았다. 일란성 쌍둥이이기에 더 구분해주고 싶었다.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몸무게로, 머리둘레로, 태동으로 비교당하는 아기들이 태생적 비교 운명에서 조금 비켜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람 했다. 그래서 이름만큼은 누가 들어도 쌍둥이 티가 전혀 나지 않도록 지어주고 싶었다. 그래야, 나 또한 태어난 아이들을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개별자로 각성하며 키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실은 아이들을 키우며 그들의 장단점을 저울질로 비교하며 더 처지는 아이를 타박할 것이 너무 뻔하게 그려지는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함이 제일 컷다.     


  하지만 쭌과 윤은 나의 이런 우려와는 다르게 정말 ‘다른 스타일의 어린이’로 스스로 알아서 자라고 있다. 이 차이는 아기 시절, ‘누가 안아줘야 울음을 그치느냐’로 시작된다. 쭌은 엄마 아빠 할머니 등 누군가 안아주기만 하면 잘 달래졌다. 하지만 윤은 달랐다. 엄마가 아니면 안 되었다. 아기 시절 새벽에 울어대는 윤을 업고 아파트 여러 바퀴를 돈 게 몇 번이던가.      


  이유식도 쭌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줘도 잘 받아먹었다. 하지만 윤은 그 어린 녀석이 먼저 음식의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을 열지 않았다. (으아, 힘들었다) 쭌은 주는 족족 잘 먹는 편이어서 애정 넘치는 어른들의 떠먹임을 받아먹곤 올린 적이 여러 번 있는 반면, 윤은 배가 부르다 싶으면 입을 꾹 다물고 절대로 먹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아기들은 이런 특성을 그대로 발현하며 어린이가 된다. 당연히 성격이 너무 다르다. 쭌은 말이 많고 설치고 부산스럽고 산만한 편이고, 윤은 말이 없고 차분하고 상대적으로 정리도 잘하고 자신의 물건은 잘 챙기는 편이다. 쭌은 늘 친구들 사이에서 몸놀이를 하는 반면, 윤은 친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혼자서 그림을 그리거나 레고 조립을 한다. 쭌은 만화책을 읽거나 감동 스토리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윤은 디즈니에서 만든 스토리 중심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을 힘들어한다.       


  참 쭌은 오른손잡이이고, 윤은 왼손잡이다. 허.

  이 둘의 유전자, 그러니까 DNA 구조는 똑같다. 아니 근데 왜 왼손? 오른손?  

    

  이 둘은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른 걸까? 똑같은 부모에 똑같은 음식에 똑같은 사회 문화 환경을 제공하는데... 왜? 개별자로 키우겠다고 결심한 나와 남편이지만, 이들의 다름에 부모인 우리조차도 어리둥절해할 때가 많다.     


  나와 남편의 결론은 DNA 유전자 세팅을 같은 지언정, 발현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니까...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기질적 차이도 있겠지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둘이서 합을 맞추다 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한 번 울면 자지러질 듯 울어재끼는 윤을 엄마인 내가 먼저 안아주다 보니, 쭌이 그 부분은 어쩌면 포기했을지 모르고. 말이 많은 쭌이 말을 해 대다 보니 윤은 말할 타이밍을 자주 놓쳤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윤은 말수가 많지 않은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자꾸만 뭔가를 놓치고 흘리는 쭌을 보며 윤은 자신의 것을 챙기며 쭌을 조금 챙겨줬을 것이고, 친구들이랑 잘 노는 쭌을 보며 윤은 스스로 친구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쭌 옆으로 슬 다가가 시나브로 무리와 어울렸을 것이다.      


 6살부터 유치원 학교 등에서 분반을 하여 지내고 있음에도 이 특성이 크게 달라지진 않고 있다. 이제 이 특성은 쭌의 성격, 윤의 성격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이렇듯, 남들은 생긴 것이 똑같아서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 일란성쌍둥이의 일상과 성격은 매우 다르다. 엄마로서 이 둘의 다름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나나들 또한 있다. 쭌에게는 1단 기어, 윤에게는 중립기어를 넣고 대처해야 하는 여러 상황에, 나는 자주 한계를 느끼곤 한다. ( 아이들이 다른 존재이길 바람 했는데, 막상 또 너무 다르니 감당하기가... 힘들다.)     




  최근에 ‘남성비하’를 들었다. 요지는 이것이다.

  - 남자애들이 공부를 못해서 등급이 약하다.

  - 강남 남자 애들 엄마들은 ‘남고’를 못 보내서 안달이다. 여자애들한테 밀려서.

  - 남자애들 성욕 주체 못 할까 봐, 고등시절에 정관수술 해 주고 대학 가면 다시 풀어준다.

  - 서울대에도 여자 비율이 계속 높아진다.


  인간을 분류하고 특정 그룹에 넣는 순간, 한 개인의 개별성은 지워진다. 나는 세트로 묶이기 쉬운 일란성 남아 쌍둥이를 키우며, 한눈에 보기에 똑같은 이들이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를 매 순간 느끼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들은 그 개별성을 굳이 드러내려고 노력하지 않음에도 그것이 시나브로 발현된다. 남자 쌍둥이인 쭌과 윤이지만, 쭌과 윤은 남자애이기 이전에, 일란성 쌍둥이이기 이전에, 아주 다른 개성과 특질을 가진 인간 사람인 것이 우선된다.      




  몇 달 전, 쭌과 윤이 다니는 학원 실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우리 애들이 남자애들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라고 퉁쳤고, 그런 내게 실장님은.     


  “어머니, 남자애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구요. 그냥 쭌이라서, 윤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여자애지만 설치고 힘세고 태권도 좋아하는 애가 있고요. 남자애지만 얌전하게 소설책 좋아하는 애가 있어요. 어머니, 애들은 정말로 다 달라요. 다들 신기하고 너무 이뻐요.”라고.     


  아차.

  나는 실장님의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일침에 감사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신기하고 이쁜 다른 우주를 담고 있는 개별자를 남자, 여자, 동탄맘, 한남, 김치녀라는 카테고리에 구겨 넣고선 편하게 불특정 다수를 비하하고 뭉갤까. 내가 모르는  다수이기에 그 비하는 한 결 가볍고 쉬워질 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특성을 날린 채, 뭉뜨그려 비난한다.


  나는  해맑고 귀여운 나의 아들들과, 못지 않게 귀여운 우리 아들들의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글을 썻다. 이 어린이들을 미래에 여성들에게 치근대는 잠재적 성범죄자, 여아들 성적에 밀려 뒤에서 노는 한량이 될 것으로 보는 잠정적 시선을 거두어 주길 바람한다. 이들은 이제 겨우 만으로 10살 20살도 되지 않은 개별적 우주다. 내가 그러하듯이 이들 또한 아름다운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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