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해서 귀엽고 순수해서 무섭다.
스마트폰에 담긴 것 중 추억이 깃든 사진과 주소록 등등 많은 내용이 소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메모장이다.
내 기억력에 무한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에 꼭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알람과 메모 없이 생활이 불가능하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점점 아쉬울 때가 많은데 아기 티를 벗고 어엿한 어린이의 모습을 보일 때도 뭔가 아쉽고, 어휘력이 늘어나면서 적재적소에 맞는 말을 할 때면 더욱 아쉽다. 그동안 잘 몰라서 실수했던 귀여운 어록들이 줄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의 모습들을 기록해두었다.
아이가 했던 순수한 말, 재밌었던 일화 역시 기록해두었는데 어느 여름날 있었던 일들을 한 번 찾아보았다.
아이가 유치원생일 때 신체부위를 다르게 표현할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관자놀이 부근을 ‘골치’라고 하고 가슴 부근을 ‘마음’이라고 말했다.
“엄마 나 마음 좀 닦아줘. 케첩 묻었어.”
“엄마 포도씨를 삼켰더니 목이랑 마음까지 아파.”
“엄마 골치에 거품 남았어. 다시 세수해.”
너무 귀여워서 한동안 일부러 바른말로 바꿔주지 않았다.
역시 다음 일화도 6살 유치원생이었을 때다. EBS 채널에서 다큐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었다. 물고기들이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장면이었다. 내레이션이 잔잔하게 깔리고 있었다. 험난한 여정에도 꿋꿋하게 강을 거스르는 삶에 대해 경이롭다는 설명이었던 것 같다. 나와 남편은 약간의 감동에 젖어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딸의 한 마디.
“맛있겠다. 쟤는 살이 많네.”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딸이지만...... 무서웠다.
또 한 번은 시댁에 안부전화를 드렸는데 아버님이 프미와 통화하고 싶어 하셨다.
“프미야~~ 유치원은 어때? 더운데 어찌 지내냐~”
스피커 폰을 타고 아버님의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잠시 생각하던 딸의 대답은
“버티면서 살아요.”
어른들 모두 그저 웃기만 했다.
순수해서 귀엽고 때론 순수해서 무섭다.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아이가 정말 나의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아마 내 말투와 내가 썼던 단어들을 기억해내서 말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조심해야지....
난 생선살 많다고 좋아한 적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