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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과 신입 개발자

LLM에 맞서 '뉴 노멀'시대의 개발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by 임용식 Mar 03. 2025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렸을 즈음, 대한민국에서 '코딩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몇 개월간의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을 받으면 그동안 대한민국에서의 '회사' 하면 떠오르는 경직된 분위기가 아닌 마치 실리콘밸리에서나 볼 법한 뛰어난 복지와 유연한 근무 환경 속에서 평균적인 직장인들의 수준을 상회하는 연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는 소문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하거나, 심지어는 부트캠프나 국비 학원을 등록해 개발자가 되기 위한 단기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특정한 원인을 지목할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저 '뉴 노멀' 세상이 도래하며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듯이 사회에 적용되면서 발생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여하간 그 시점에 우리가 맞닥트린 '뉴 노멀' 세상은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세상이었고, 그에 맞춰 공급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뿐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흐름이었고, 그렇게 '뉴 노멀' 세상의 주인공이 된 개발자들이 그 수요를 메우며 꽤 낯설지만, 그런대로 안정적인 세상이 찾아올 것이었다.


2022년이 거의 지나가던 어느 날, 저 멀리 미국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의 한 집단이 이전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던 생소한 서비스를 대중에게 발표했다. 모니터 앞의 채팅창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뭐든지(정말 '뭐든지'는 아니지만) 알려주는 이 서비스는 빠르게 정보를 찾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며 그 성능만큼이나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정보들을 찾아 가공하고 유통하며, 그 흐름을 통해 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일단 사용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 서비스는 개발자들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ChatGPT, 코파일럿, 클로드, 그리고 최근 수많은 놀라움과 논란을 함께 야기한 딥시크까지. LLM(Large Language Mode, 대규모 언어 모델)은 그렇게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맞이한 2025년 지금. LLM이라는 훌륭한 조수이자 동료를 옆에 두게 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모두 행복할까? 적어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코딩 열풍'의 시기에 개발자가 되기로 결정한, 혹은 열풍과 상관없이 그즈음에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이제 취업을 시도하거나 목전에 둔 이들에게 LLM은 이미 그 누구보다도 무서운 '경쟁자'가 되어 있었다. 기존에 이미 개발자로서 사회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 시사적으로는 '기성 세대'라고 불리고 개발자들 사이에서는 '시니어'라고 불리는 그들은 이제 LLM을 옆자리에 앉혀 놓고 개발을 한다. 그리고 그 옆자리는 원래 신입 혹은 '주니어'의 자리가 되었어야 했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예측은 이전부터 줄곧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지만 그 대상의 최선두에 인공지능을 창조한 개발자들이 위치하게 될 줄도 알았을까. 인공지능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개발자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하극상'이나 심하게 표현하면 '패륜'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극단적으로는 원망의 대상이 인공지능을 개발한 개발자들을 향하기도 한다. 그들이 인공지능을 만듦으로써 동료 개발자들의 '사다리'를 걷어찼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개발 업계의 밖에 있는 수많은 대중들과 언론들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머지않아 완전히 AI에게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사들은 개발자들의 취업난에 대한 뉴스와 기사들을 내보내고, 유튜브와 같은 개인 동영상 플랫폼에서도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이제 개발자를 하면 안 되는 이유'나 '개발자를 그만둬야 하는 이유'라는 비관적인 제목을 단 영상을 매우 자극적인 썸네일과 함께 올리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취준생들의 단골 대화 주제였던 '복지'나 '고액 초봉'은 입에서 꺼내기도 힘든 사치스러운 단어가 되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심지어 이미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들도) 들어본 적 없는 기업들은 수백 대 일의 지원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러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과 질문들이 이제 갓 3년차가 되어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는(심지어 당시에는 더 경력이 일천했음에도) 내게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발자들의 사정에 밝지 않은, 그리고 최근까지 전혀 관심이 없었던 지인들은 '개발자의 종말'에 대한 자극적인 소문들을 걱정 어린 시선과 함께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고, 개발자로의 취업을 꿈꾸고 있는 '코딩 열풍' 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지인들은 마찬가지의 주제에 대해 걱정 어린 시선과 함께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처음 그런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꺼내기 시작할 때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한 심도 깊은 주제에 대해 아직 회사에서 승진 한번 해보지 못한 경력의 내게 어떠한 인사이트를 제공받길 원하는 걸까? 결국 의견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에겐 '그러게요, 열심히 해야죠'와 같은 말로, '질문'을 주는 사람들에게는 '힘내세요'라는 등의 김 빠지는 한 마디를 대답하는 것으로 유야무야 대화의 주제를 돌리곤 했다(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대답하고 있다).


사실 '전달'하는 사람들에게는 대화 중에 꺼내는 이런 주제에 전혀 무게가 실려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밥 먹었니' 혹은 '몸 조심해라'와 같은 의례적인 수사일 뿐임을 알기에 그들도 이내 대화의 주제를 바꾸고,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대화를 끝내고 나면 어느새 그 말들은 금세 머릿속에서 휘발되고 만다.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대화를 끝내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들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게 된다. 아무래도 그들이 말한 몇 마디 속에 들어있는 한탄과 불안의 무게가 그것들을 저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이리라. 백여 개가 넘는 기업에 이력서를 보내고, 그럼에도 취업을 하지 못해 개발자로 일하는 것 자체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갈망하는 그들을 보며 겨우 한 장의 이력서로 얼떨결에 취업해서 매일 아침마다 얼마나 출근이 귀찮은 행위인지에 대한 불평과 함께 재택근무를 상상하는 내 모습이 마치 정당히 누려야 할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어떠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조언을 제공하는 행위 자체가 주제넘게 느껴져 한 두 마디의 짧은 응원으로 내가 먼저 서둘러 대화의 주제를 바꿔 왔다.


사실 내 성격상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앞서 언급한 스탠스를 유지하며 계속 지내왔을 것이다. '당장 내 앞길도 모르겠는데 감히 누굴 걱정해 줄 수 있겠나'와 같은 시니컬한 성찰은 덤이다. 그런데 작년 연말, 그 특별한 일을 겪을 기회가 있었다. '크래프톤 정글'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 프로그램에서 교육생들이 진행하는 최종 프로젝트의 멘토링을 요청받게 되었고, 나 역시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기에 흔쾌히 수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멘토-멘티로 만나게 된 교육생 분들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나 조언을 드리며 멘토링을 이어 나갔다. 멘티 분들은 프로젝트와 '개발'에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임해서인지 매 주마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이나 일정 계획을 상회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고, 그러다 보니 멘토링을 진행하는 1시간 중에 절반은 기술적인 대화보다는 멘티 분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하는 의도치 않은 커피챗 시간에 받게 되는 질문들은 앞서 말한 내가 먼저 나서서 외면해 왔던 부류의 것들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 그 당시에 멘티 분들께 어떤 대답을 드렸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대충 얼버무리며 깊게 생각해 오는 것을 피해 온 질문에 대해 '멘토'라는 두 글자 타이틀을 달았다는 것 만으로 훌륭하고 날카로운 조언을 제공해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그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을 거라는 건 확실하다. 그 후로도 계속 멘토링을 진행하며 최종 발표회에서 멘티 분들이 완성한 프로젝트의 발표를 보는 것으로 나의 4주 간의 멘토링은 끝이 났다. 멘티 분들은 나의 걱정을 포함한 기대보다 더욱 뛰어난 결과물을 완성해 내었고, 발표가 끝난 후 내게 주신 많은 감사의 인사 덕분에 짜릿함과 함께 벅참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후로 4주의 멘토링 기간에 대해 회고할 때마다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그 질문에 대해 더 의미 있는 대답을 해 주지 못한 것이다.


사실 지금도 동일한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조언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진 않는다. 여전히 회피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나에게는 경험, 실력, 또는 그 밖에 어떤 요소이든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매우 추상적으로나마, '뉴 노멀'시대의 개발자들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의 표현에 가장 부합하는, 그리고 가장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집단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거인의 변덕과 몸부림에도 그의 어깨에서 미끄러지거나 내팽개쳐지지 않을 역량'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그것을 키워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맺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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