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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힘

이어령의 [거시기 머시기]를 읽고

저는 뱀띠입니다.

어릴 적 전 그게 그렇게도 싫었습니다.


왜 난 뱀띠로 태어났을까?


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요?

조금 늦게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용띠가 아닌 뱀띠가 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괜스레 용의 한자를 예쁘게 적은 종이를 오려

일기장에도 붙이고 필통에도 붙이곤 했어요.


용이 되고픈 뱀의 발악이라고나 할까요(푸훗..)


이어령의 [거시기 머시기]를 읽다 보니

이런 글이 있어 인상 깊어 인용해 봅니다.

뱀을 보고 어린아이가 말해요,
“용이다!” 그러자 홍수에 떠내려가던 뱀이
용이 되어 승천했어요.
어린아이는 아무런 선입견이 없어요.
그러니 뱀을 보고 “용이다!” 하니까
진짜로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거예요.

뱀을 보고 용을 만드는 것,
그것이 창조적 상상력,
언어의 힘인 겁니다.


뱀을 용으로 만드는 언어의 힘에

자연스레 이끌렸습니다.


중력에 구속받는 자연계에서 벗어난,

언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재차 강조합니다.

절대 변화가 불가능한 자연법칙이 아닌,

인간의 창조적 의지로 얼마든지

word를 world로 바꿀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 언어의 세계 속에서

우리의 삶을 창조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요.


용이 되지 못한 뱀의 결핍은

세상에 주눅 들고 매사에 자신 없어하는

지금의 제 모습으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뱀을 용으로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유동성과 가능성이 존재하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저를 극복할

해답을 찾고 싶어 졌습니다.


잘 쓰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글을 쓰겠다고 하던 것도 어쩌면

그런 언어의 세계에 저도 모르게

이끌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철로 위를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길이 없는 곳에서도 자유롭게 가고
자유롭게 쉴 수 있게 해주는
자동차를 탄 사람


언어를 소비하고, 뒤쫓아가는데
그치지 않고 만들어가는 사람


언어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자기 인생과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


우린 이곳에서 글을 쓰면서

각자의 답을 찾아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존이며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요.


뱀을 보고 용을 만드는 것.

뱀이 용이 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언어의 힘을 빌려 

결핍의 세계를 더 나은 세계로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지금은 이 생에 계시지 않지만

그분의 언어 끝에는

남은 이들의 새로운 세계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하늘 어딘가에 계실 선생님께 한 자 한 자 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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