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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근거림 Dec 08. 2022

진실로 원하는 삶으로 향하는 길, 알아차림

근무하던 센터에 들렀던 날이었어요. 그곳에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볼일이 있었거든요.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에서 출발했어요. 아침 8시 즈음이었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제가 그만둔지도 벌써 4개월이 가까워 오고 있어요. 그 사이에 자격증도 준비하고, 코로나에도 걸리고,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도 응모하고.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취업에는 여전히 성공하지 못했어요. 한 달 전 정도였을 거예요.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기에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 쓴 이력서가 붙어서 면접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두 번째로 쓴 이력서는 서류에서 떨어졌고요. 최종 합격을 승, 서류 합격을 무, 서류 광탈을 패라고 본다면 저는 2전 1무 1패로 보아야 할 것 같아요.


번듯한 직장에 채용돼서 갔다면 좋았으련만. 백수인 상태로 전 직장에 가려니 위축되더라고요. 하지만 집을 나서는 첫걸음부터 의기소침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요즘 '순간의 알아차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나 감정, 혹은 신체를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나 감각 등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관찰하게 되는 여러 가지 정보를 친절한 마음으로 지긋이 바라보고 있어요. 처음에는 분명 기대하는 마음이었어요. '센터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내가 알던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학교 풍경은 여전할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출근할 때마다 타던 마을버스에 오르니 마음이 달라지더라고요. 그제야 현실감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만둔 지 4개월이나 된, 여전히 백수인 저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또한 '내가 기대한 것만큼 사람들이 안 반가워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크게 들었어요. 센터에 들어가면서는 후회라는 감정이 기어코 저를 장악하기에 이르렀어요.


센터 문으로 들어갈 때의 중압감은 상당했어요. 하필이면 청소를 하기 위해 입구 주변에 선생님들이 모여있었거든요. 그들의 첫 표정을 저는 기억해요. 물론 그들이 어떤 의도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저는 알지 못해요. 묻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그 상황에서 제가 내릴 수 있는 해석은 '어색함'이었어요. 어쩌면 제가 먼저 어색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어요. 전 직장의 동료들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어색할 만도 하지요. 그때 저는 '아, 역시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만나기로 했던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고, 얼떨결에 하던 일을 잠시 도와드리게 되었어요. 바쁘시더라고요. 그 일을 도와드리며 다른 선생님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어요. 여전하더라고요. 상담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답게 스스럼없이 저를 대해주었거든요. 뭐랄까. 어색한 기류가 금세 사라졌다고나 할까요. 그들은 저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며 저를 맞아주었어요. 제가 백수라는 것이 우리 관계에 아무런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들이 제 조건을 보며 관계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기도 했고요. 물론 저는 그동안 살아오며 그럴싸해 보이는 조건을 갖춘 적도 없었지만요. 


그렇게, 대화하는 시간과 끝내는 업무가 늘어갈수록 편안함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곳은 제가 2년 넘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주는 편안함이 컸어요. 괜스레 한 마디라도 더 말을 붙이고 싶은, 낯가림이 심한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다니며 인사를 건네게 하는 데에는 그들의 선한 마음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보상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일을 하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의 일을 해낼 때마다, 그 일이 비록 서류를 정리하는 작은 일일지라도 저는 해냈다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으며, 기어코는 뿌듯한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졌어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제 경험이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겠지만, 그날의 순간들이 저에게 주는 메시지는 상당했어요.

 

빨리 취업을 하고 싶더라고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람들과 새로이 친분을 쌓고 싶기도 하고, 주어진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고도 싶고, 일 외의 나머지 시간을 더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무기력감이 감도는 일상을 보내던 저에게 예기치 못했던 전 직장에서의 근무는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주었어요. 이처럼 '순간의 알아차림'에 집중하면 삶의 많은 경험들을 보다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어요. 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은 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 감정, 느낌, 감각 등을 부드럽게 바라보고, 알아주고, 끄덕이는 순간의 과정은 진실하게 원하는 삶에 한 뼘 더 가까워지도록 돕는 기적 같은 시간이에요. 


어느덧 12월이 되었어요. 저는 현재 새로운 직장에 취직하였고, 위의 글은 '순간의 알아차림'에 빠져있던 때에 기록한 내용이에요. 막상 취업을 하고 보니 쉬던 때가 그리웠어요. 사무실에 전화는 마구 울려대고, 밀린 일을 다급하게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알아차림'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아' 하는 탄식이 떠오를 때마다 '알아차림'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요. '아, 내가 지금 조급해지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짜증이 일어나고 있네'처럼 평온할 때와는 달라진 호흡을 우선 알아차리며 달라진 몸과 마음의 상태를 깨닫고는 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면에서 들끓던 감정들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제가 느끼는 감정이 '나'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지요.


내일도 저는 출근해야 해요. 내일은 오늘 미처 끝내지 못한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해요. 그중에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들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이제 내일로 가려고 애쓰지 않아요. 이곳, 여기에 집중할 따름이에요. 내일의 '나'가 어떠할지는 더 이상 묻지 않을래요. 저는 다만 오늘의 '나'에 대해, 지금 이 순간의 '나'에 대해 가만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며 몸과 마음에게 물어보려고요.


Image by Petr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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