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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에이스 Jan 29. 2024

푸른 용의 해, 나는 다시 태어난다.

어제는 고기를 샀는데 동네 마트에서 껍데기 붙은 삼겹살을 찾은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동네 앞 조그만 가게에서 만팔천 원짜리 와인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또 평점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걸 조금 전에 같이 먹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올해 현재 기준 최고의 저녁 식사였다.

올해 무엇인가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좋다. 무엇에 관해서건 무슨 일이건 나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알 수 없는 믿음이 나를 감싸고 있다. 어떤 이런 승리자의 고양감과도 같은 기분을 2주간 혼자 누리고 있으니, 이미 성공한 것 같기도 하다. 여러모로 올해는 즐거울 것 같다.


사실 올 1월은 나름 가슴 아픈 소식으로 시작을 했다.

한껏 기대한 인사평가 결과는 11월부터 나에게 긍정적인 말을 수없이 해주신 나의 리더를 경솔하게 공수표만 실컷 날린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는 지난 1년 간의 노력에 대한 극도의 부정적 결과로 이를 인식하면서 약 1주일 정도는 조직과 기득권 그리고 소위 탑 매니지먼트라고 하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분노를 쏟아내며 한시적 투장가가 되었다. 하지만 난 이를 극복했다. 아닌가? 아냐 그래도 극복했다. 이는 나중에 조금 정리를 해서 적어보리라.
세상은 나에게 한 번의 시련을 더 주었다. 직전 글에서도 썼지만 지독히도 운 없던 날이 있었다. 비도 오고 가기 싫은 심부름과도 같은 일을 나서야 했었고, 사실 글에는 안 썼지만 비를 맞으며 기다리기도 했었고 기어이 홀로 차사고를 냈던 그날, 십 분간 세대에서 네대 가량의 차량으로부터 지독한 빵빵 세례를 받은 날이 있었다. 적어도 그날 저녁 열 시 전까지 올해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이제 1월인데 남은 11월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노와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극복했다. 값싸게 수리도 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1주일 만에 깔끔하게 수리된 차를 보니 언제 그랬냐 싶었다. 사소한 고통을 극복하고 새롭게 시작한 지난 한 주였다.


지난 월요일,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른 새벽 눈을 뜨게 되었고 뜬금없이 컴퓨터로 유튜브를 보다 생방송으로 갑자기 그것도 매우 오랜만에 새벽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근데 뭐랄까 예배 말씀과 푸른 용이 나를 응원하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 오묘한 조합인 것은 인정한다. 하나님께는 다소 죄송하오나, 말씀의 축복과 우리 토속 신앙이 결합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두건의 불운이 완전한 액땜으로 믿어졌다. 정말 확신을 갖고 올해 모든 불운은 이것으로 사라졌다고 믿어지는데 솔직히 이것은 신앙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찔리긴 한다. 어쨌든 그런 기분이 예배 시간 중에 들었으니 아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올해 나에게 계획된 축복의 시간에 대한 기대가 제법 찼다. 거짓말은 안 한다. 활활 타올랐다는 아니었고 살면서 이럴 때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올해 내 인생에 어떤 변화가 될 것 같은 그런 설렘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날 아침만큼은 나도 천사표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고 다행히 지금까지 유사한 상태를 유지 중이다. 이로 인한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나의 불안과 불만, 초조와 짜증이 조금씩이나마 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에 나는 1월을 엄청난 불안감으로 시작했다. 평가를 해야 하고 받아야 하고 계획을 세우는 등,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게 보낼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때로는 불만과 시기와 질투의 시간을 보냈던 것도 같다. 아무 필요 없는 고민의 시간들로 말이다. 어디 강남 모처에 어마어마한 집을 산 것도 아닌 걸 보면 확실히 내가 하는 고민은 생산성도 없고 건강에도 안 좋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글쎄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누군가 있고 그분이 또 남부럽지 않은 경제적 규모를 일구어 내셨다면 또 내가 할 말이 없긴 하다. 

이제 안 싸울 거야! 도와줘서 고맙고 나도 잘할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가끔 누가 우리 팀일에 돕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주도권이 침해된다고 느낄 때 이를 말 그대로 팀 간 알력 다툼으로 인식을 했었다. 지난 1주일간 2차례 정도 유사한 일이 있었고 여지없이 예전처럼 짜증과 화가 나려 할 때, 푸른 용이 돕는 나는 천사라고 되뇌며, '도움은 도움으로 받자, 그저 감사함으로'라고 혼자 다짐하며 참은 적이 있다. (분명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했다. 유치하고) 이게 참 별 것 아닌데, 그렇게 마음먹고 미팅이 끝날 때쯤이면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기분으로 나는 그들에게 진짜 감사해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미팅이 끝나고 그 찜찜함과 짜증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이는 나에겐 참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런 수준이라면 나는 작년에 겪은 화와 짜증의 90프로 이상은 줄여갈 수 있을 것이고 그 열정과 힘을 행복한 관계 형성과 나의 발전에 쓸 수 있으리라.


나만 느끼는 작은 변화이지만 지금 글을 쓰는 것도 그렇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조금 오후 4시가 끝났다. 그러면 얼마 전의 나라면 월요일의 불안감과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반대 의견을 상상하며 어떻게 내일의 미팅에 대처할지 상상하느라 두세 시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아마도 너튜브의 숙면음악을 들으며 겨우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근데 지금 나는 이렇게 부족하나마 글을 쓰며 1월을 돌아보고 2월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 얼마나 발전적인 변화인가. 훌륭하다 나 자신아.

싸구려 와인을 마신다. 쌈밥과도 잘 어울리는

그래서 오늘 이렇게 일요일에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김에 또 하나의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보통 나는 일요일에는 술 한잔 한 적이 없다. 왜냐? 슬퍼서 그렇다. 그냥 일요일이 슬프고 그저 월요일이 두려워서 술도 안 마시고 좀비처럼 소파에 앉아서 유튜브로 자연인들이 나오는 다큐만 보곤 했으나 더 이상 그러지 않으리. 오늘 고기 한판 거하게 굽고 싸구려 와인을 한병 비우리라. 그리고 내일 아주 상쾌하게 시작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오늘 이 시간을 끝까지 즐겁게 놀다가 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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