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메기 먹고 삐약삐약
브런치 글들을 보면 그 글을 쓰시는 분들의 그 성의와 열정에 놀랄 때가 종종 있다.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기도 하거니와 구조를 이쁘게 다듬거나 이미지를 보기에 좋게 편집하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감히 핑계를 대자면 나는 엄청난 구독자를 모으거나 -그럴 수도 없지만- 또는 나의 글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럴 주제도 못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하나였다. 어느 기분이 안 좋은 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쉽지 않은 그런 일이 생긴 날, 브런치에 글을 쓰고 몇 안 되는 분들이 눌러주신 좋아요를 확인했더니, 마치 고해성사를 하게 용서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좋아요가 없어도 글을 써놓는 것 자체가 나의 생활과 감정의 축적과 분출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래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인가? 대체로 브런치에 무엇인가 써볼까 하고 고민하는 날들은 기본이 조금은 좋지 않은 날들인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기본 좋지 않은 날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아쉬운 것이 꾸준히 글을 쓰지 못해 별다른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각설하고, 오늘은 왜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고 있는가 하면, 오래간만에 맞이한 운수 좋은 날을 나누기 위해서 이다.
브런치는 원래 사실만 쓰는 공간은 아니지만 오늘은 사실만을 쓴다. 워낙 운이 좋아서 혹시 한분이라도 글을 읽는 분이 있으면 지어낸 것이라 오해할까 싶어 밝힌다.
어느 토요일 아침, 대학원에서 만난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분은 가업으로 수산물 가공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계신데 과메기와 회를 서울로 보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랑 친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대낮부터 한집에 모여서 과메기와 회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기를 기대했다. (고속버스로 받는 택배서비스가 있다. 나도 잘 몰랐으나 참으로 한반도의 물류는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 설레는 맘으로 물건을 찾으러 가는 길 무엇인가 불안했다. 친구 집에서 출발해서 터미널로 가자면 서레마을의 언덕베기를 거쳐야 하는데, 내리는 비와 어두운 하늘에 불안감이 크게 엄습해 왔다.
5번, 서래마을 골목길에 접어들어 사평대로로 빠져나가기까지 내가 받은 클락션 세례의 숫자이다. 신호 대기 중에 출발할 때마다 빵빵거리는데 모두가 나를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나는 대범하다. 소심하지 않다. 그런데 다섯 번째에는 도저히 대범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지, 누군가 나를 쫓아오나?', '이들 모두 한패인가?', 어이없지만 저런 생각이 들며 헨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옆자리에 앉은 내 친구는 사주경계와 함께 호흡소리가 거칠어져 갔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 고속 터미널로 접어들었다. 정확히는 주차장으로.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여기 주말에 주차가 어려울 때는 시장 바닥보다 차로 더 복잡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 특히 주차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였다. 차들이 앞에서 오고 뒤에서 밀리는 순간 빈자리를 포착하고 한방 주차를 위해 차머리를 우측 두시 방향으로 돌리고 과감히 후진 주차를 하는데 고무끼리 강하게 부비는 듯한 찌이이키키키킥 하는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찢어졌다. 확실했다 그 순간 내 귀에 들려온 소리는 차 우측에 처참한 자상이 남겨지는 소리였다. 대충 세우고 어두운 상황에 잘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져보니 불안함은 더욱 커져갔고 이어지는 내 친구의 한마디, "야 이거 백퍼 찢어졌다 이야,, 찢어졌네." 그래 이날 날씨는 죽기 딱 좋은 날이었다.
친구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굳게 다운 입을 열지 않았고 내 친구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혹시 어떤 차가 또 클락션을 누르지 않을지 맹렬히 주변을 경계했다. 친구집에는 다른 녀석들 셋이 더 있었는데 이 녀석들이 또 넘치는 의리로 지하 주차장으로 뛰어와서 하는 말이 "찢어진 것 같은데?", "그렇지? 이야 이건 수리비가 한두 푼이 아닌데?", "야 문이랑 휀더를 다 갈아야 해 이거 이차 이제 못 팔아." 그래 아는 사이에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이날 배웠다.
과메기와 회를 먹으면서도 차라리 일식집 가서 밥을 사지, 이 얼마짜리 식사를 하고 있는가 하는 그런 자괴감이 힘들게 했다. 자동차를 잘 아는 지인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찢어졌는지 잘 안 보이지만 찢어졌다면 이건 비용이 상당할 것이며 경계선에 부위가 걸쳐져 있기에 더욱 암담하다는 말로 나의 술맛을 돋궈주었다. 산지 제법되었지만 이 녀석도 나름 독일 브랜드임을 어필하려는 듯 만만치 않은 견적이 예상되었다. 대리 기사분의 도움으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인생의 허망함 그리고 가벼운 나의 감정선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운도 없는 날, 재수 없는 과메기 놈, 의리 없는 놈들 등 별별 궁시렁을 멈추지 않을 때 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대리 기사님의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나: "어디 동 앞으로 가주세요."
기사님: "아 바로 저기네요, 이야 사장님 엘리베이터 앞에 제일 넓은 하나짜리 주차장이 비었네요. 오늘 주차 중에 제일 기분 좋은 주차입니다."
나: "... ... ?"
기사님: "올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 "아 네, 사장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근데 저 오늘 사고 났어요."
기사님: "근데 술 한잔 하신 거 보면 아프신 곳도 없고 올해 그냥 정말 액땜하셨네요. 그러면 걱정거리도 없고 완전 복 받을 일만 남았네요?"
나: '뚜시꿍! 뭐지 이 현자 타임은' "감사합니다!"
내 주제에 갑자기 너무 행복해지면서 팁 만원을 더 드렸다. 그러고 보니 이 넓은 곳에 가장 좋은 곳에 주차가 되어 있다. 갑자기 가슴이 뿌듯해졌다. 자세히 사고 부위를 다시 보니, 문짝은 분명히 깊이 파였으나 은색으로 빛이 나는 것이 구멍이 뚫린 것 같지는 않았고 휀다는 색만 벗겨진 덩도로 보였다. 희망이 보였다. 밝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서 전문가에게 문의했다. 기분 좋게 샤워하고 나오니 톡이 와있다.
"이거 안 찢어졌고 잘하면 교체 없이 판금만 해서 해결 가능하니까, 내일 형이 알아볼게."
나의 가벼운 감정이란 참으로 볼품없었다. 기분 좋게 잠이 들고 이튿날 다시 문자를 받았다.
"노 프라블럼, 바로 차 보내라 그냥 간단히 수리 가능하다."
이튿날의 태양은 진정 블루 드래곤 해의 태양이었다. 이런 운수 좋은 날이라니, 이런 운수 좋은 녀석이라니.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이었다. 올해는 기분 좋은 얘기를 좀 써보리라. 그래서 꾸준히 글도 좀 올리고 좋은 감정을 공유하겠다는 작심을 해보며 오늘 일요일을 시작한다.
지금 내 차는 잘 수리 중이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