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될 영화 <나의 올드 오크>에는 감독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들이 대사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목소리를 빼앗긴 이들, 얼굴이 잊혀진 이들의 말과 얼을 재현함으로써 한평생 예술의 가치를 보여온 그의 모습이 영화 속 주인공 TJ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위태로운 삶의 존엄성을,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변부에서 착취당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소외된 삶을 그렸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무너저가는 펍 'The Old Oak'를 배경으로 잊혀진 노동계층과 이주 난민 간의 갈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감독은 TJ 삼촌이 남긴 먼지 쌓인 옛 사진들과, 야라의 카메라를 통해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연대의 가치들을 포착해 낸다. 그 또한 가감없이.
나이가 들수록 허구적인 해피엔딩이나 드라마적인 서사보다는, 희망과 절망이 있는 그대로 뒤섞인채 나타나는 리얼리즘 양식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사라지는 잠깐의 행복과, 동시에 내려 앉는 씁쓸한 현실의 무게가 갈수록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켄 로치 영화의 매력은 포장된 희망 대신, 절망적이고 엄혹한 현실 가운데서도 무엇인가 해보기 위해 애쓰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평생 잘 해보려고 애썼지만 그 근처에도 못갔어" 비록 세상은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왔지만, 그럼에도 '용기, 연대, 그리고 저항'의 깃발을 들고 한 평생 싸워온 노장 감독에게 경이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