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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Sep 12. 2023

넌 가격이 아름답지 않아

돈이 시각에 미치는 영향

 물가가 자꾸만 오른다. 늘 별생각 없이 사던 것도 왠지 한번 더 가격표를 보게 된다. 나는 젤리를 좋아한다. 편의점에 가면 한 봉지씩 사 먹으며 행복해하던 날이 있었지만 요즘은 가격 때문에 아예 편의점에서 젤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과일을 좋아하는 귀여운 아들은 오늘도 한자리에서 한 개에 4000원은 나갈 복숭아를 혼자 포크로 우걱우걱 먹는다. 나는 생각 없이 복숭아를 몇 조각 씹어 먹다가 포크를 내려놨다. 복숭아 가격을 생각하면 내가 씹는 것이 복숭아가 아니라  조각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는 먼저 생김새와 기능, 그리고 가격을 본다. 내가 가지고 싶은 어떤 물건이 있는데 그걸 가질 수 없다면 그건 보통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물건의 가격은 물건을 가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어떤 물건을 한번 사기를 주저했을 때 그것은 다른 분야로 바뀐다. 나에게 이 물건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이런저런 상황들을 따지다 보면 이상하게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가격이라고 하는 것이 전제조건이 아닌 무언가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나는 그걸 미의 조건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가격을 미의 조건으로 보면 좋은 점이 많다. 가장 좋은 건 돈을 위해 목숨걸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 그것보다 조금 덜 아름다운 걸 가지면 되는 것일 뿐이다.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제일 좋은 것은 인과 싸울 일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구매를 했던 그 사람은 단지 그 물건이 아름다워 보였을 뿐이고 나는 그게 아무리 봐도 예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가격을 그저 하나의 조건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건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를 죽이는 것은 생명활동에 필요한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당하는 데 있다. 결국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상황이 우릴 불행하게 한다.


 물론 돈은 언제나 필요하다. 아들 입에 들어갈 과일 한 조각이라도 더 사려면 바짝 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텅텅 비는 통장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삶과 그 삶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아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을 위해 오늘도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을 보며 이 말을 하고 지나간다.

"미안. 너라는 물건은 가격이 아름답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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