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경 Nov 26. 2020

우리는 왜 몰랐던 것처럼

kbs명작 다큐 다르마 4부작 리뷰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어느 날 눈에 들어온 kbs명작다큐멘터리 다르마 4부작. 전반적 내용은 불교를 기반으로 두지만 종교 설파 목적은 전혀 아니니 기존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다르마 4부작은 각각 1편 '붓다의 유언', 2편 '치유', 3편 '환생과 빅뱅', 4편 '행복은 어디있는가' 의 소제목을 갖고 있다.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은 1,2편만 리뷰할 예정.



1편 붓다의 유언

"아난다여 그대는 한 쌍의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만들어라. 피곤하구나, 누워야겠다. 그러자 아난다는 방으로 들어가 문틀에 기대어 울며 말했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나를 그토록 연민해주시는 스승께서는 이제 돌아가시겠구나.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는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BS명작다큐 다르마 4부작 중 1편에 대한 설명은 석가모니의 이 말씀 하나로 충분하다. (참고로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중 하나이고, 대화에서 언급되는 세존이 석가모니다.)

1편은 사실 홍콩 과학단지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을 번갈아 보여주며 대장경이 앞으로 어떻게 3D로 검색될 수 있는지 기술적인 면을 소개해서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각국의 신자들이 번갈아 자신의 언어로 석가모니의 말씀을 읽어주는 연출을 통해, 그 반복되는 말씀 속에서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진리를 계속 다시 알려주는 구성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다큐에 나온 것처럼, 어느 것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데 우리는 왜 몰랐던 것처럼 눈물을 흘릴까.


20대 중반을 지나보내며,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면 비슷한 생각이 든다. 당시에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팍팍해질 대화 주제며, 계산적인 인간 관계와 어렵기만 한 사회생활까지 모두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시간은 그 때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변해가는 모든 상황은 이따금씩 슬프게 느껴지곤 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진리를 외면하면서 사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내 가족, 지금의 시간들, 내 소유물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 사실을 항상 분명하게 인지하는 건 스트레스로 다가오니까.

물론 순간을 즐기면서 사는 건 바람직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모든 게 끝이 날 그 때가 오지 않을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고는 변해버린 상황이 닥쳐올 때마다, 몰랐던 것처럼 아파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이 다르마 4부작을 유튜브로 봤는데, 1편 댓글중에 반려견을 잃고 이 다큐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말이 있었다.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말, 이 뻔한 말을 석가모니의 입을 빌려 듣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그 분은 어떤 괴로움을 겪고 다큐를 찾았을지, 댓글만 읽고도 마음이 아팠다. 양육자보다 분명 일찍 생을 마감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반려견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헤어질 거라는 사실을 부정해야했던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집 반려견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에게도 늘 숙제처럼 남아있는 고민이다. 이변이 있지 않는 한 나보다 짧은 생애를 살고 갈 사랑스러운 털뭉치를 가만히 보다보면, 그 유한함을 내가 곁에서 견뎌낼 수 있을지 벌써 두렵다. 최선을 다해 잘 해주려고 애쓰지만 나 자신의 후회를 떠나, 그 부재를 틀림없이 몸서리치게 애달파할 거라는 게 벌써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래서 당장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모른 체 하는 임시방편을 계속하게 된다. 사랑스러운 것을 찾는 것도 힘든 세상에,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너무 벅차게 다가온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뻔한 진리 하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후회를 하게 되는 건 모두가 성인(saint)이 될 수는 없다는 반증인가보다.


2편 치유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았고, 마음을 울렸던 편이다. 4편을 모두 보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은 2편이라도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2편에서는 메사추세츠 병원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병으로 인한 통증, 트라우마,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호흡을 통해 손가락 끝의 세밀함까지 인지하고, 순간 일어나는 느낌에 집중하는 훈련을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살면서 힘든 일을 모두 피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이 진정되어 있으면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게 그들 수련의 요지다. 몸과 정신이 함께 있지 않으면 온갖 이야기들, 각자의 개인사를 곱씹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일생을 보내게 된다. 현재가 못 견디게 불행하지는 않지만 끝없이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마 이런 이유에서인 듯하다.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중 하나가 마인드 컨트롤을 못 하는 점인데, 어릴 때부터 심약해서 그런지 중대한 사건이 가까워질수록 집중을 못 하는 편이다. 더 집중해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도 될까말까 한 일을 앞두고 늘 '잘 안 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휩싸여 그저 불안해 한 경우가 많다. 이것이 불교에서 지적하는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상태'겠지. 스스로도 잘 알지만 역시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다.



다큐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런 나의 유달리 마음을 울렸던 명언이 있다.

"做事不患日力不足 但患心力不逮耳"
 
정조께서 말씀 하시길
"모든일에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다만 내가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그것을 걱정하라"


어쩌다보니 학문의 길을 걷게 되어 미래의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가,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내가 몰입해서 진심으로 내가 선택한 공부를 할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하고 대비해야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때로는 뻔한 말이 누군가의 권위를 통해 나에게 커다란 충고로 다가와주길 바랄 때가 있나보다.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걸 방해하는 잡다한 걱정들을 뒤로 하고, 마음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을 지를 생각해야지.



이 다큐에서 가장 좋았던 말이 고려대장경 중아함경에서 나온다.
"감정을 자아로 여기지 말라. 나는 느낌이고 느낌은 나의 것이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지 말라"


우울증 관련 글을 읽으면서도 봤던 원리인데, 지금의 불행이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감정으로 치환될 수 있음에도, 이 감정이 나를 잠식해 자신을 '불행한 사람' 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우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라고, 감정에 지배당해 희망을 잃으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중아함경에서는 불교의 근반인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마음 상태를 '나'로 동일시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한다고 말한다. 느낌은 변하는 것인데, 계속해서 변하는 것을 '나'라고 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고, 생각과 몸, 마음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라고 말한다. 행복, 물질에 대한 집착이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는 분명한 사실의 굴레에서 중생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가엽게 여기며.



언젠가 내 SNS에 툭 흘려놓은 말.

이 젊음을 가치 있고 열정적으로 보내야 하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는지, 남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나도 그래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반은 젊음이 꽃처럼 활짝 피는 때'라는 말에 집착해, 그게 안 되는 스스로를 탓하고 원망하기도 했었다. 돌아보면 모든 시간이 우울과 불행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음에도, 순간의 감정을 흘려 보내주지 못해 붙들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20대는 그렇게 꽃 피우는 시기가 아니라 성장통을 겪는 시기라는 생각으로 바뀐 것도 크지만.


사실 물질, 감정, '나'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수행하는 스님들께서나 가능하겠지만, 언급한 세 가지 중 적어도 감정에 집착하지 않는 것만큼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지금의 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지만 이 기분은 영원하지 않겠지'하고 되뇌이는 것이 요즘의 힘든 세태를 버텨 나가는 데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제목을 '우리는 왜 몰랐던 것처럼'을 한 이유는, 다큐를 통해 석가모니의 말씀을 배우다 보면 새로운 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순간에 몸과 마음이 같이 있어야 한다는 류의 내용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몇 년 전 다큐가 조회수 2-30만을 웃도는 건 그만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많아서인 것 같다. 아는 말이지만 누군가 도닥이면서 한 번 해줬으면 좋겠는, 그런 지친 상태를 많은 사람들이 한 조각씩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왠지 조금은 애달프기도 하다.


앞에서 말했듯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으니(4편에는 성당 신부님들도 나온다)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3,4편에 대해 리뷰를 쓸 지는 모르지만 우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써 봤다. 지친 마음들이 모두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현실과 가상의 기로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