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가사리 Oct 30. 2022

벚꽃 피는 봄이 오면

일본 도쿄 | 자이카레 

오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쿠니타치역에서 우연히 같은 셰어하우스에 사는 독일인 아저씨 미카엘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는 나를 집 방향이 아닌 반대쪽 출구로 이끌었다.      

“반대쪽 출구에 기가 막힌 카페가 하나 있어.” 

“저 쪽으론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남쪽 출구로 나오니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제야 이 동네가 영화 <4월 이야기>의 배경이라는 걸 깨달았다. 히토츠바시 대학으로 가는 길가는 벚꽃이 만개했다. 육교 위에서 보는 봄의 풍경이 가관이었다. 파아란 하늘 아래 온통 핑크빛으로 물든 거리,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일본의 4월이 좋아. 벚꽃이 정말 아름답거든.”      


출장으로 자주 일본을 오가던 그는 봄의 벚꽃에 마음껏 취할 수 있는 4월이 좋다고 했다. 지금 이 시기에 일본에 파견을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의 안내를 따라 골목 사이 <로지나 사보 ロージナ茶房>라고 쓰인 오래된 카페로 들어갔다. 1953년에 문을 연 카페는 한 눈에도 옛 정취가 물씬 풍겼다. 내부는 더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대학가라 그런지 연극, 공연 포스터들이 게시판에 붙어있었다. 런치세트로 인기가 많다고 적힌 소고기 카레 <자이카레>를 주문했다.      


미카엘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년간 함께 지낸 프랑스 친구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새로 셰어하우스로 온 그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우리가 지낸 셰어하우스는 다른 지역보다 저렴했고, 그 이유는 북쪽 출구에서 꽤 멀었고 언덕길을 올라야만 했다.      


“멀리 자판기 불빛이 보이면 희망이 생기지 않아?”

“어머, 맞아! 나도 그래”      


셰어하우스 집 앞엔 음료 자판기가 있었다. 도보로 30분은 가야 하는 집으로 가는 길, 마지막 골목을 돌면 저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캄캄한 밤에 보이는 작은 빛, 점점 불빛이 커지면서 어떤 음료가 있는지 보이면 우리의 집이 가까워진 것이다. 그와 나만 공감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우리는 깔깔 웃었다.      


주문한 <자이 카레>가 나왔다. 하얀 밥과 카레, 위에 올려진 삶은 달걀. 두 덩이의 오이 피클, 진한 갈색 빛이 도는 카레는 오랜 시간 뭉근히 끓인 맛이 났다. 깊은 감칠 맛은 아마 양파를 오랜 시간 볶아서 낸 맛이겠지. 잘게 다진 소고기가 씹히면서 매콤하다. 집이 아닌 반대쪽 출구에 이런 곳이 있다니, 봄이 오기 전에 이 동네로 이사 오길 참 잘했다. 


Tokyo, Japan _ 벚꽃이 만개한 날, 쿠니타치의  자이카레                                  


매거진의 이전글 말랑말랑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