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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Oct 30. 2022

자상한 시간

일본 후라노 | 브랜드 커피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커피를 즐기게 된 건 일본에서 지내게 되면서였다. 일본의 카페엔 커피가 포함된 점심 세트가 있었고, 커피는 브란도 코-히- (ブランドコーヒー)라고 쓰여있었다. 간혹 메뉴에 아메리카노라고 쓰여 있기도 하지만, 카페별로 원두를 블렌딩 하여 내린 그 카페의 대표 커피였다. 카페 별로 묘하게 다른 맛이 나는 브란도 코-히-의 매력에 빠졌고, 이후 드립 커피를 좋아하게 됐다

"삿포로에 가면 후라노의 <숲의 시계>를 꼭 가봐, 일단 드라마 <자상한 시간>부터 꼭 봐야 해." 

커피와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선배 언니의 추천을 받아 오래된 드라마 <자상한 시간>을 어렵게 찾았다. 출연진을 보니 아라시의 멤버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출연한다. 이 언니, 역시...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오랜 팬) 그래서 보라고 한 거였군.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한 남자는 그녀의 고향인 후라노에서 <숲의 시간>이라는 카페를 운영한다. 마스터라 불리는 남자에겐 아들 타쿠로(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있다. 타쿠로는 후라노와 멀지 않은 비에이에서 도예를 배운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는 잔잔했다. 특히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설경의 후라노, 숲 안에 위치한 카페 <숲의 시계-모리노 도케이>는 꼭 가보고 싶었다. 

삿포로에서 후라노행 버스를 타고 눈이 쌓인 산길을 통과했다. 눈은 잦아들다가 펑펑 내리기를 반복했다. 여름의 홋카이도는 라벤더가 가득하다고 했는데, 하얀 눈으로 덮인 광활한 대지가 보랏빛으로 물라고 생각하니 기분 좋은 라벤더 향이 솔솔 풍기는 듯했다. 드디어 도착한 후라노, 지도를 보고 천천히 걸어 도착한 카페/레스토랑 <숲의 시계>는 드라마에 나온 모습 그대로였다. 

'森の時計はゆっくり時を刻む' 

숲의 시계는 천천히 시간을 새긴다 

라고 쓰인 액자를 지나 바리스타의 움직임이 보이는 오픈형 탁자, 바에 앉았다. 드라마에 나온 마스터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한 바리스타가 내게 메뉴를 건넸다. 역시 첫 번째로 쓰인 메뉴는" 브란도 코-히- (ブランドコーヒー)" 커피를 주문하니 그는 내게 커피콩이 담긴 통과 핸드 그라인더를 건넸다. 작은 핸드 그라인더에 로스팅한 커피콩들을 넣고, 손으로 돌리니 서걱서걱 콩들이 부딪치며 갈리는 소리가 났다. 바리스타는 갈린 가루를 그릇에 담아 내게 향을 맡으라며 건넸다. 마시는 커피도 좋지만, 갓 갈아낸 신선하고 고소한 커피의 향, 그는 내가 간 원두로 천천히 핸드 드립을 시작했다. 따뜻한 찻잔에 담긴 브란도 코-히- 를 받았다. 넓은 창 너머로 펑펑 눈이 내리고, 하얀 눈송이들이 솜이불이 되어, 앙상한 가지를 덮었다. 나에게 주어진 자상한 시간, 커피를 마시며 나는 천천히 이 시간을 마음에 새긴다.



Furano, Hokkaido _ 森の時計 (숲의 시계)의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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