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보통의 이들을 위한 AI 안내서_AI 민주화의 역설
AI는 이제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일상 곳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나오는 물처럼, AI는 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다가가기 쉬운 존재가 됐죠. 그렇다면, 접근하기 쉬워졌다고 그냥 막 다가서도 되는 걸까요? AI가 누구나 쓸 수 있을 만큼, 아무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졌다는 건 마냥 축복이기만 할까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AI라는 강력한 도구가 대중의 손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특별한 기술과 도구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AI는 이러한 전통적 가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습니다. 마치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갑자기 샤먼의 능력을 얻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겠죠.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의 역설
지난해 미드저니로 동화책 만드는 법과 만든 동화책을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법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올렸습니다. 조회수도 많이 나오고, 이 영상으로 유튜브 구독자도 많이 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같은 영상에 인사이트(?)를 받아, 미드저니로 동화책 만들어 파는 법에 대한 유료 강의와 전자책을 만들어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때 모두가 열광했던 이모티콘 열풍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화책을 만들어서 아마존에 올리며 AI로 ‘돈 벌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나아가 그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입니다. 누구나 접근하기 쉬워졌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것을 ‘기회의 평등’으로 퉁치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입니다. 때론 접근성, 평등, 공평함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마음만 먹으면 1~2년 안에 금을 무한히 소유할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요?
모든 이가 백만장자가 된다면 백만장자라는 지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만 더 부지런 떨면 억만장자(?), 그 이상도 충분히 될 수 있는 세상에서 경제학적 관점으론 지금의 1백만 원, 1천만 원은 종이 조각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문화적으로 중대한 함의를 지닙니다. 접근의 무한함, 가능성의 무한함은 오히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앙하던 그 가치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거죠. 그저 몇 번의 타이핑과 클릭만으로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한다면 MidJourney로 만든 이미지나 GPT로 쓴 글 같은 AI 작업의 가치나 특별함은 점점 더 희미해질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AI 기술이 결국 무의미해질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적 위계질서의 형성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AI 시대 생존법, 소유가 아닌 '대화 능력'
이 거대하고 급속도로 변화하는 AI의 물결 속에서도, 인간의 창작물에 의미와 가치를 새기려면, 끊임없이 빛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어떻게 쓰느냐'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누구나 치킨 한 마리 정도의 값이면 챗GPT나 미드저니 같은 AI도구를 쓸 수 있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에 나만의, 나다운 고유한 창작물이 탄생할 것입니다.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고 이미지는 물론 영상까지 생성할 수는 있지만, 이게 정말 AI로 만든 것인지, CG인지 구분조차 안될 정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작업은 ‘아무나’ 하진 못하기 때문이죠.
즉, 앞으로 중요한 것은 도구의 소유가 아닌, 도구와의 '대화' 능력입니다. 마치 고대 사회에서 신과의 교감 능력이 샤먼의 지위를 결정했듯이, AI와의 효과적인 소통 능력이 새로운 사회적 자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계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AI에 대한 맹목적 거부
둘째, AI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AI와의 대화는 결국 프롬프트에 달렸습니다. 단순히 AI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 나만의 시각을 담아낼 수 있는 능력.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퍼플렉시티 같은 AI 도구들은 결국 나와 AI가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이 도구를 인류의 문화적 진화 과정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새로운 문화적 문해력이자 소통 방식입니다.
AI 시대의 진정한 도전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기술을 기후나 전쟁 등 인류의 파멸을 막는 데 활용하고, 인류의 문화적 자산으로 승화시킬 것인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AI를 두려워하거나 맹신하지 않고, 인류의 창조적 진화 과정에서 하나의 도구이자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마주한 문화적 과제이자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