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간 6학년 학생들과 여섯 곡의 노래를 불렀다. 12월 말에 시작되는 겨울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배울 노래를 선정할 차례다. 지난 곡들은 모두 영화 수업의 주제곡이거나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들이었다. 이번만큼은 별다른 노력이나 설득 없이도 아이들이 쉽게 좋아할 것 같은 노래를 해볼까 싶어 방탄소년단의 'Dynamite'를 골랐다. BTS 노래를 나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열심히 가사를 외우고 박자를 익혔다.
수업 시간에 '두구두구두구, 이번에는 BTS의 Dynamite를 불러봅시다!'라고 발표했다.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심드렁하니 실망스러운 기색이었다. 2021년 신곡 ‘Butter’가 아니라서 싫은지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들은 우물우물 갸웃갸웃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Dynamite의 노래 가사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너무 익숙하다", "신선하지 않다", "지금까지 했던 대로 선생님이 고른 영화 주제곡이나 오아시스의 노래 같은 걸 배우고 싶다". 그런 노래들은 처음에는 배우기 어렵지만 새롭고, 몰랐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어 좋았다고 했다. 사실 내가 늘 학생들에게 해왔던 말이다. "세대와 장르와 국경을 초월해 시도해 보자!", "처음이라 어려울 뿐이지 몇 주 지나면 잘 부를 수 있어!" 같은 말들. 결국 논의 끝에 우리는 다른 곡을 배우기로 결정했고, 괜히 나만 멤버 '지민'의 매력에 뒤늦게 심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뜬금없는 결론을 맺었다.
소위 MZ세대에 가까스로 속하긴 하지만 나도 이제 슬슬 중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중이다. 사회의 흔한 기준에 따르면,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할 나이가 되었다. 사실 나는 언제나 깊은 소통을 갈망했고 그래서 힘들 때도 많았다. 세대 차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하거나, 사생활 관련 질문을 거리낌 없이 하는 윗세대들의 문화는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동갑이나 아래 세대가 마냥 편한 것도 아니었다. 개인의 성향 차이를 뭉개고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둘 사이의 공감대를 당연시하는 섣부름이 불편했다. 또 일부 후배들은 내가 본인에게 하대하지 않으면 편하고 가까운 후배로 생각하지 않고 선을 긋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직업이나 성별, 비슷한 정치적 성향 등도 반드시 소통의 윤활유로만 작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깊은 절망을 선사하기도 했다. 누군가와 깊이 소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본 기사에 따르면,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와 가까워지기 위해 '인싸 이모티콘'과 '82년생 김지영' 같은 책을 구입한다고 한다. 또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콜 포비아' 현상(전화통화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의사소통과 업무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인싸 이모티콘', 몇 권의 책과 노래들이 세대 간 소통을 얼마나 원활하게 만들지는 모르겠다. 소통의 매개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질적인 문화에 다가가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과 의지가 기반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또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 규정되는 '콜 포비아' 현상은 막연히 공감하고 이해하며 마무리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규모와 양태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직접 대면 소통능력, 전화 소통능력,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소통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 어떤 세대이든 의사소통의 목적에 맞게, 해당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소통 매체를 '선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콜 포비아'현상에서 깊은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지점은 따로 있다. 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불안한 사회경제적 지위와 취업, 주거, 관계, 권력 등의 불안과 압력에서 파생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 기성세대의 책임감과 실천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조건 없는 이해와 공감만이 능사가 아니다.
내 경우 후배들과 소통한답시고 공감과 위로 요정 역할을 자처하는 선배들, 내집단의 이기심이나 방어 의식을 자극하는 선배들을 오히려 더 경계한다. 실제로 지긋한 나이의 한 선배교사는 내가 종종 교직문화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로 나를 공공연히 '적'으로 규정하며 비난했다. 후배 교사들을 위한다는 본인은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 교사들은 모조리 차단하며 소통을 거부해왔기 때문에 솔직히 나로서는 실소가 터졌다. 소통은 골방에 틀어박혀 부리는 기교가 아니다. 듣기 좋은 소리가 늘 옳은 말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하고 싶다면 일단 자기 자신과의 대화부터 솔직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절제력, 책임의식, 상황 조망 능력, 자기 객관화 능력 등이 필수적이며 진실한 소통은 자주 성찰과 자각, 발견 등을 동반한다. 소통은 유쾌함과 만족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간, 숙성의 과정과 에너지가 필요한 힘든 과정이다.
이번에 BTS 관련한 교실에서의 시행착오는 어쩌면 내 안일한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막연하게 던진 '이 정도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란 생각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낳았다. 지난 1년간 형성된 공감대를 믿고 평소처럼 '세대와 장르, 국경을 초월해 보자!'라는 자세로 자료를 선정하는 편이 옳았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학생들이 그간 나와의 수업을 통해 배운 건 단순히 몰랐던 노래, 어휘, 문화적 아이콘과 현상 같은 것들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 서면 자주 내 10대 시절을 떠올렸고, 노래와 언어를 매개로 세대를 초월해 학생들에게 가닿고 싶었다. 학생들은 그 노력을 무의식으로나마 느꼈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수업 시간에 가르친 '의사소통능력'이란 그런 소통 '의지와 열망' 같은 것들이 전부였을지도 모르겠다.
모두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한다. 각종 단체들은 젊은 세대 교사들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정치계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젊은 층 표심잡기, 젊은 층과의 소통 확대를 논한다. 사실 나는 '소통'이란 것 자체가 젊음이 기반이 됐을 때만 가능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인 젊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이질적인 자극과 경험을 멀리하고 안주하다 보면 흐르지 않는 강처럼 정신은 노쇠해진다. '소통'이란 본질적으로 젊다. 소통 과정에서 '나이'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하며, 특별한 기술이나 기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소통에 필요한 건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다. 자신에게 솔직한 태도, 타인을 이용하거나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의지, 책임감과 배려, 연민과 상상력 등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늘 세대 간의 단절과 몰이해를 고민해왔다. 중요한 건 기교가 아닌 본질이다. 소통은 당연히 어렵다.
커버 이미지: BTS 지민 (출처: YouTube Big Hit Labels)
글의 내용과 무관하나, 그냥 너무 아름다우셔서 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