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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l 22. 2024

권리와 전문성, 두 마리 토끼

https://m.news.eduhope.net/26235

교사들의 금요일 조퇴는 간헐적 논란을 일으켜왔다. 조퇴 사용은 엄연한 법적 권리이다. 쓰라고 만든 제도를 썼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더구나 주 4일제가 총선공약으로 제시됐고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들이 늘면서 금요일 조퇴를 둘러싼 논쟁은 수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부 교권국에서 복무 관련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 공무직 구성원들의 잦은 혹은 예고없는 휴가 사용으로 곤란에 처한 유치원 교사, 영양교사들의 사례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퇴 사용의 옳고 그름 따위를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다. 중요한 건, 노동환경을 둘러싼 수많은 욕망과 갈등, 이해 충돌의 지점을 개인의 권리행사라는 원론적 관점만으로 푸는 건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교사에게 열심히 일할 이유가 있는가"


학교마다 상황이 다름을 전제한다. 작년까지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팬데믹을 거치며 금요일 조퇴가 많은 구성원들에게 일상화됐다. 조퇴 행렬에 동참했던 일원으로서 나는 단순한 경제논리를 따랐다. 같은 임금 기준, 가장 적은 시간을 노동해야 합리적인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어차피 학교와 교육당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적 노력, 즉 다면평가와 성과급 기준안에 제시되지 않는 노력은 없는 존재 취급을 한다. 측정할 수 없고, 지위나 경제적 보상 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전문성 향상 따위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자로서의 수십 년의 경력과 헌신이 단 한 번의 악성 민원으로 인해 붕괴될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투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학교일에 몰두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기획할 필요가 없다. 사회를 잠식한 경제논리, 넘쳐나는 교권 침해 사례, 수사 과정을 방불케 하는 학폭과 민원 처리 등의 과정을 통해 학생과 교사들은 학습한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만족을 얻자. 나의 책임은 줄이고 타인의 책임은 높이자.


"포기할 수 없는 교육전문성"


텅 빈 학교에 덩그러니 남아 안해도 되는 일거리를 생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똬리 튼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회가 교직을 전문직으로 인정하든 말든, 나는 교사란 전문직 노동자이고 교육 전문성이란 실재하며, 교사는 전문가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전문성은 '기술적 합리성' 이상의 다층적 지식, 재해석과 통합, 반성적 실천 능력 등을 복합적으로 요구한다.


학교 외부에서 '애들 교과서 가르치는 게 뭐가 어렵나?'는 말이 나올 때 황당한 이유는, 수업은 이미 정해진 지식과 기술을 효율적으로 '전달'만 하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움이란 늘 과정 중에 있고 당장은 그 쓸모와 가치를 측정할 수 없다.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일을 '공문처리 다했고, 다음 날 수업 준비 다했고, 그러니 할 일 끝!'이란 기술적 형태로 정리하기 어렵다. 물론 누구나 매일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가지만, 추상적인 영역에선 그런 방식으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 교사의 일이자 교육 전문성의 특징이다.


단순 명쾌한 경제논리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고민했다. 납작한 경제 논리 혹은 노동자의 '권리'에 매몰되어 우리 스스로 교육 전문성과 잠재력을 헐값에 내다 팔고 있지는 않은지. 교사의 권리와 전문성에 대한 합의를 함께 이끌 방법은 없는지. 외부에서 '행정업무 많다더니 금요일 조퇴 러시 웬말인가'라고 성토해도 '권리'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야 이 상황의 조율이 가능할지 말이다.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잘 해내려는 욕망’"


리처드 세넷은 저서 ‘장인’에서 장인을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잘 해내려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세넷은 현대 사회에서 장인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를 '일할 동기의 약화'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퇴 논란 속에 내가 마주했던 진짜 문제는 노동 의욕 약화,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려는 욕망'의 사라짐이다. 이는 직업윤리나 소명의식의 관점과 결이 다르며, 윤리의 관점은 문제 해결에 충분히 유용한 틀을 제공하지 못한다. 러시아의 계획경제 몰락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국가를 위해 일하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라’라는 도덕적 의무 부과는 장기적으로 노동 의욕을 말살한다. 경쟁을 통한 개별 보상에 대한 약속도, 교원평가나 차등성과급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노동의 자율성과 노동 의욕 고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높은 성과를 달성한 조직은 대부분 경쟁보다 협력을 장려했다.


무엇보다 현재 교사 노동 의욕 약화의 주범은 임금 수준이다. 2024년 신규교사 임금 실수령액(230만 원)은 1인 가구 생계비(241만원, 22년 통계청)에 미치지 못한다. 민간 기업 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은 83%에 불과하다. 지난 10년간 무서우리만치 하락한 교원 임금 수준을 높이지 않고는, 노동 시간을 줄여서라도 악화된 지위와 임금을 보상받고자 하는 본능적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 전문성이든 장인정신이든, 교사가 일 자체를 잘 하고 싶은 욕망을 상실하고 오로지 생계형 직업인으로만 일하게 하는 환경이 과연 미래에 도움이 될지 따져볼 일이다.


교사는 '노동자'다. 동시에 교육 '전문가'이자 교육 '장인'이다. 세상이 온통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메아리로 들끓지만 우리는 노동자로서 권리, 전문가로서의 소양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육전문성을 갖추고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와 권리를 요구하자. 그것이 '교사는 노동자다'라는 오래된 구호를 풍부하고 건실하게 다져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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