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 18.
아빠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명절이라 짧은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가족들과 함께 했다. 괜히 걱정했나 싶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엄마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음식을 한다. 꼭 명절이라서가 아니라 우리 엄마는 매사 많은 음식을 만들어 모두가 말리는데 결국 아무도 못 말린다.
아빠가 마지막 몇 달간 머물렀던 병원은 범준에게 주말 놀이터이기도 했었나 보다. 엊그제 범준은 내게 "베비! 나랑 할아버지 병원에서 비둘기 깃털을 봤었지?", "우리 손잡고 이야이야오 노래하면서 문방구에 갔었지?", "복도에서 숨바꼭질을 했었지?"라고 재잘댔다. 세 돌도 안된 아이의 3개월 전 기억이 또렷한 게 신기하다. 내겐 비극적 결말의 공포 영화 배경 같은 그 병원이 범준에겐 베비고모와 신나게 놀던 놀이터였어서 다행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우리나라 장례 문화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무엇보다... 3일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후에 닥쳐왔던 감정의 격랑과 피로의 원인이 내가 3일장 이후 바로 집회를 치르고 무대에 올라가는 바람에 생긴 후유증인줄로만 알았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3일장 이후 과정을 허망하고 힘겹게 보낸다는 걸 알았다. 많은 측면에서 문화가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 멀었다. 명절이든 장례이든 더 간결하게 본질에 접근하는 어울림의 과정, 이별의 과정이면 좋겠다.
나로선 명절이든, 언젠가 누군가는 치르게 될 내 장례이든 필요한 게 많지 않을 것 같다. 대전에서도 대구에서도 기름진 명절 음식을 잔뜩 먹었지만 사실 가장 맛있었던 건 연휴 첫날에 집에서 조용히 먹은 팬케이크였다. 이젠 나도 어떻게 어울리고 떠날지에 대해 정리를 해둘 나이가 된 것 같다. 어쨌든 여행을 취소한 건 잘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