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범준을 비롯한 가족들이 식당에 갔다. 범준은 평소 침착하고 맛있게 밥을 잘 먹는 편인데 그날따라 먹는 둥 마는 둥 식사 자리가 심란했다. 범준의 부모가 애를 먹고 있길래 내가 한 마디 던졌다.
"범준아 너는 그동안 밥을 잘 먹어서 이렇게 쑥쑥 자랐잖아. 너 밥 제대로 안 먹으면 00처럼 다시 아기가 될 수도 있어."
(00은 범준 친구의 동생이며 생후 6개월 된 아기다. 범준의 묘사에 따르면 00은 "매일 누워서 우유를 먹고 똥을 싸. 그리고 똥 냄새가 지독해.")
00처럼 다시 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범준이는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하는, 세 돌도 안된 유아에게 아기 비하를 한 것 같아 문득 미안해졌다.
범준과 나는 만날 때마다 의식처럼 손 씻기 놀이를 한다. 놀이라고 해봤자 그냥 세면대에 물을 받아놓고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물을 첨벙대고 비누를 굴리며 노는 것인데, 범준이가 필요 이상으로 자주 물을 갈길래 내가 말했다.
"범준아 우리가 물을 낭비하면 동물들이 마실 물이 없어져. 특히 아프리카에 있는 동물들이 목이 마르고 물고기들이 수영을 못하게 될 수도 있어. 물을 아껴야 돼."
아프리카 동물을 좋아하는 범준이에게 효과가 직방이었는데, 문제는 그 이후로 범준이 손을 씻을 때마다 동물들을 걱정한다는 거다. 코끼리가 물을 못 먹으면 어쩌지? 하마가 수영을 못하면 어쩌지? 이 정도면 동물들이 먹을 물이 남았겠지? 등등. 나 편하자고 유아에게 과장된 말로 지나친 우려를 심어준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영향력에 비해 너무 말을 마구 던지는 건지, 작은 고민에 빠져 있던 밤. 평소와 달리 꽤 늦은 시간에 범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범준이 잠들기 전 갑자기 베비에게 할 말이 있으니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반신욕을 하다가 젖은 손으로 전화를 받은 내가 물었다.
"범준, 이 밤에 무슨 일이야?"
범준은 외쳤다.
"베비~펄~럭펄~럭펄럭펄~럭!"
무슨 뜻이냐고 물어도 웃기만 했다.
펄럭펄럭펄럭펄럭. 쓸데없이 고민만 많은 내게, 매사 너무 진지할 것 없다고 말하는 너만의 메시지일수도 있겠다. 펄럭펄럭펄럭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