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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d] 조직에도 회복과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드의 HR 커피챗 시리즈

by iid 이드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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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괜찮은 건 아니다


심리 상담에서는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슬픔에 잠기라는 뜻이 아니라, 상실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 경험이 남긴 흔적을 정리할 시간을 주라는 의미다. 사람은 감정의 여운을 무시한 채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언젠가 더 큰 파도로 그 감정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건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은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의 집단이다. 그 안에는 감정이 쌓이고, 관계가 얽히며,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는 이 감정의 회복 단계를 건너뛴다. ‘성과’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덮고, 그 자리에 목표와 지표만 남긴다. “이제 끝났으니 다시 달려보자”라는 말이 리더에게는 결의처럼 들리지만, 구성원에게는 “그 일은 아무 일도 아니었나”라는 냉소로 들리기도 한다.


이 부분은 대표에 대한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커피챗 자리에서 대표님들이 자주 하는 질문에 대한 현실적인 답변이다. “왜 인력 조정 이후 채용이 잘 안 되죠?”, “다시 사람을 뽑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조직에도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내부 감정의 회복 없이 채용을 재개하면, 시장과 후보자들은 그 공백을 감지한다. 애도의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부 리소스를 줄이고 외부 서치펌을 써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가진다. “얼마 전까지 감축을 했던 회사가 지금은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과거의 사실을 덮거나 왜곡할 수도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오히려 신뢰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인력 효율화나 구조조정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감정적 후속 파장까지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복원력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이 위기를 넘기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선 단순히 사람을 남겨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감정의 복원력, 다시 말해 ‘정서적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애도의 시간이다. 누군가 떠나고, 한 챕터가 닫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시간.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조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애도를 생략한 회복은 결국 위기를 반복하게 만든다.




구조조정 이후의 진짜 위기


지난 2년간 글로벌 시장은 거대한 인력조정의 파도를 겪었다. 테크, 콘텐츠, 유통, F&B, 제조 등 산업을 가리지 않고 감축의 뉴스가 이어졌고, 국내 스타트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희망퇴직’이라는 포장 아래의 선택적 이별부터 매출 악화로 인한 급격한 구조조정까지, 형태는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누군가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그 공백을 마주했다. 문제는 위기 자체보다 그 이후의 조직 태도다. 많은 기업들이 위기가 지나면 “이제 괜찮다”는 듯 다시 성장 전략을 내놓는다. 투자 유치가 되거나 현금 흐름이 조금 안정되면 곧바로 채용 공고를 내고 조직을 확장한다. 하지만 감정의 회복이 없는 조직은, 겉으로만 멀쩡해 보일 뿐 내부의 신뢰는 텅 비어 있다.


① 내부 구성원에게 생기는 세 가지 후유증


✅ 첫째, 감정의 단절과 신뢰 붕괴.

구조조정 이후의 조직은 겉으론 평온을 되찾은 듯 보이지만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남은 구성원들은 일상으로 복귀한 척하지만,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 깔려 있다. “이번에도 누가 또 나갈까?”라는 질문은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모두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누군가의 책상이 비워진 자리를 매일 지나치면서 그 공백이 상징처럼 남는다. 업무 메시지의 말투는 짧아지고, 회의의 분위기는 조심스러워진다. 누구도 직접 말하지 않지만 ‘회사’라는 공동체에 대한 심리적 소속감이 조금씩 약해진다.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을 한다.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보다 최소한의 협업만 하거나,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굳이 손을 들지 않는다. 리더가 “이제 안정됐다”고 말해도 그 언어는 신뢰를 회복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구성원들은 속으로 “이번에도 그렇게 말했었지”라고 되뇌며 거리감을 둔다. 이렇게 감정의 단절이 생기면 회사가 아무리 “우리는 다시 성장할 것이다”라고 외쳐도 그 말은 더 이상 에너지가 되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이유’가 사라진 조직은 겉으론 작동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균열이 자라난다.


✅ 둘째, 성과 피로와 동기 저하.

인력 감축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남은 사람들이 더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하지만 그 열심은 헌신이 아니라 생존의 방어 반응이다. “내가 이번에도 버텨야 한다”는 심리로 돌아가는 일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때의 노력은 의지라기보다 두려움의 산물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성과가 잠시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회복이 아니라 ‘아드레날린’이다. 피로가 누적되면 구성원은 감정적으로 탈진하고, 자기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성과 압박은 오히려 동기를 갉아먹는다. 아무리 인센티브 제도를 세밀하게 바꾸고 KPI를 조정해도, 감정의 회복이 없는 조직은 작동하지 않는다. 감정이 따라오지 않는 성과는 불안정한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금세 사그라든다. 게다가 조직이 빠르게 “다시 성장해야 한다”고 외칠수록 구성원은 역설적으로 더 피로해진다. 위기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시기에 ‘열정’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냉소를 부른다. “우린 아직도 슬픔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왜 또 달리라고 하는 걸까?” 이런 감정이 쌓이면 조직은 목표를 세워도 에너지가 모이지 않는다.


✅ 셋째, 리더의 심리적 탈진.

리더는 구조조정의 최전선에 있다. 결정의 책임을 지고 떠나는 사람을 설득하며 남은 팀원을 다독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리더의 감정 회복을 챙기지 않는다. 리더는 회사와 팀 사이에서 끊임없이 감정의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괜찮다”고 말해야 하고 “이제 새출발이야”라고 다독여야 한다. 그러나 본인도 상처받고 지쳐 있으며 회복할 시간이 없다. 그 피로는 눈빛과 말투, 팀 분위기에 그대로 드러난다. 리더가 소진된 상태에서 목표를 밀어붙이면 팀은 방향을 잃는다. 구성원들은 “리더도 힘들어 보이는데, 이게 진짜 회복일까?”라는 불안을 느낀다. 결국 리더의 정서가 조직의 정서를 결정한다. HR이 해야 할 일은 제도 설계만이 아니다. 이 시기의 리더를 위한 감정 회복 설계가 필요하다. 그들이 회복하지 못하면 조직은 결코 회복하지 못한다.



② 외부 채용·브랜딩 관점에서의 세 가지 이슈


✅ 첫째, 조직 신뢰도 하락.

외부 인재의 입장에서 보면 불과 몇 달 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회사가 다시 채용 공고를 내는 것은 혼란스럽다. “얼마 전까지 위기였다면서 지금은 괜찮다고?” 이 의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시장의 냉정한 반응이다. 회사가 내부적으로 어떤 회복 과정을 거쳤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문제는 채용공고가 아니라 ‘맥락’이다. 조직이 어떤 이유로 위기를 겪었고, 어떤 학습을 통해 다음 단계를 준비했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외부 인재는 그 회사를 “단기적 반응형 조직”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런 평판은 채용 전환율보다 훨씬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오퍼는 전달할 수 있지만, “이 회사에 인생의 한 단계를 걸겠다”는 결심을 얻기 어렵다.


✅ 둘째, 브랜드 스토리의 불일치.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 후에도 여전히 “사람 중심”, “성장 중심”, “심리적 안전” 같은 언어를 쓴다. 하지만 구성원과 시장은 기억한다. 얼마 전 사라진 이름들, 정리된 부서, 공지 속 차가운 문장들. 브랜드 메시지와 실제 경험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조직의 스토리는 설득력을 잃는다. “말은 따뜻한데, 행동은 차갑다”는 평판은 한 번 굳어지면 바꾸기 어렵다. 브랜딩은 문구로 회복되지 않는다.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의 온도가 돌아올 때까지 말 대신 ‘침묵과 일관성’이 필요하다. 조직이 ‘사람 중심’을 말하고 싶다면 먼저 그 말을 스스로 믿을 수 있는 환경을 복구해야 한다. 감정을 무시한 성장은 오래가지 않는다. 시장은 ‘말의 온도’가 아니라 ‘태도의 지속성’을 기억한다.


✅셋째, 시장 내 평판의 냉각.

애도의 기간 없이 빠르게 확장에 들어가는 조직은 시장에서 ‘불안한 회사’로 분류된다. “저 회사는 위기 때마다 쉽게 사람을 자른다”는 인식은 단기간에 지워지지 않는다. 더 나쁜 것은 이 평판이 단순히 채용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트너사는 거래를 주저하고, 투자자는 ‘조직의 회복탄력성’을 의심한다. 기업의 평판은 위기 자체보다 그 이후의 태도로 결정된다. 구성원의 감정을 수습하지 못한 조직은 외부에서도 감정적으로 ‘안정감 없는 회사’로 비친다. 회복의 흔적이 없는 회복은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HR이 이 단계를 경영진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브랜드의 신뢰는 숫자가 아닌 정서에서 무너진다.




미안하지 않아도, 기다릴 줄은 알아야 한다


애도의 기간은 미안함을 보여주는 의식이 아니다. HR의 언어로 바꾸면, 조직이 감정적으로 복원될 시간을 확보하는 절차다. 이건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경영 시스템의 회복 과정이다. 많은 조직이 이 단계를 ‘쓸데없는 감상’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간이 다음 성장을 위한 조직의 이너 리셋(inner reset) 기능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어야 전략이 작동하고, 신뢰가 회복되어야 성과가 움직인다. 애도의 시간은 비합리적 휴식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합리적 인터벌이다.


대표 입장에서는 이 시간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이제 정리됐는데 왜 분위기가 여전히 가라앉아 있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바로 그 조용한 시기가 회복의 신호다. 조직은 소리 없이 회복한다. 그때 무리하게 목표를 밀어붙이거나 ‘동기부여’라는 이름으로 속도를 높이면, 내부의 신뢰는 완전히 마를 수 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드라이브는 엔진오일이 빠진 채로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같다. 애도의 시간은 조직을 멈추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다시 달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정비 구간이다. ‘지금 쉬는 게 나중의 속도를 만든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때, 조직은 비로소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HR의 역할은 제도와 규칙을 관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조직이 사람으로 구성된 유기체라면, HR은 그 자율신경계를 관리하는 존재다. 제도의 설계가 아니라 감정의 순환을 설계해야 한다. 조직의 애도는 슬픔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돌아갈 통로를 여는 일이다. 감정을 무시한 조직은 결국 시스템도 흔들린다. 회복에는 기술보다 시간이, 설득보다 존중이, 속도보다 온도가 필요하다. 조직이 한 번 무너졌던 기억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그 회사의 다음 챕터를 결정한다. 애도의 시간은 사치가 아니라, 조직이 다시 숨을 쉬기 위한 최소한의 휴식이자 전략적 회복 구간이다. 회복을 서두르지 않는 용기, 그것이 건강한 조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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