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스타트업 낭만은 죽었다 ①편
[Edited by iid the HRer]
※ 내가 쓰는 글들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지극히 개인적 의견이니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시리즈물을 기획하며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전에 작성했던 비슷한 성격의 글제목에 감수성을 좀 더 가미해 제목을 '2024년 스타트업 낭만은 죽었다'로 정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해하지 않도록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면 스타트업의 현실에 대해 (이드의 관점이지만) 부정적이고 우울하게 쓴다고 해서 절대 스타트업은 절대 오면 안 돼요!!라는 글이 아님을 강조한다. 단지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스타트업이 마냥 낭만적이고 희망적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대학생 후배분들의 커리어 상담을 종종 할 일이 발생한다. 나도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어느덧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내가 졸업할 당시엔 으레 컨설팅펌, 금융사(IB), 대기업 정도가 주요한 루트이며 가끔 글로벌 IT 기업이 있었다. 그 당시 스타트업은 정말 학부시절부터 그래 저 사람을 저럴 줄 알았다는 굉장히 드문 창업가의 험난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 시기 창업 회사들을 떠오르면 쿠팡 (2010년), VCNC (2011년), 메쉬 (2013년), 토스 (2015년) 등이 있었다.
그 후 불과 2~3년 사이 분위기는 꽤 바뀌었다. 당시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던 것과 별개로 채용 규모 자체는 과거와 달리 보수적으로 된 기존 업계와 달리, 국내에서도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으로 등극하고 또 젊은 나이에 큰 부를 얻는 사례들이 나타났다. 그 결과 학생들도 취업보다도 창업이나 스타트업에 입사하는 옵션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경력을 위한 인턴 경험들도 이제는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이 더 많이 보이고 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특히 한국에서 일부 선입견과 오해가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대학을 중퇴하거나 막 졸업한 이들이 새로운 아이템과 기술을 가지고 창업을 한다. 과거 빌게이츠 때부터 최근 다양한 IT회사의 파운더까지 미국에서는 수많은 케이스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구분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마츄어리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아무리 창업자가 기업 경험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기업 활동과 실제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매우 프로페셔널해져야만 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다.
• 투자를 받든 안 받든 고객에게 돈을 제대로 벌든 안 벌든 돈과 엮인 활동은 자산서업이 아니고선 명확하고 또 클리어해야 한다. 그 말은 단순히 비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다. 돈을 번다는 / 기업을 성장하겠다는 단순하면서 뚜렷한 목표가 당연하게 전제되어야 하며 그것에 대해 심플하게 회사 경영활동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 수많은 전략에 대한 시행착오와 전략수정은 단순히 대표가 아마추어라서 그리고 스타트업이라서가 되면 안 된다. 적어도 능력이 부족할지언정 나름의 데이터와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그래야지만 그 전략을 수정할 때 수정할 포인트와 개선점을 알 수 있다.
• 과거 모두가 아니라는 길을 굳이 걸어가서 신화를 만든 경영자들의 에피소드가 있다. 그 에피소드들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무조건 0% 확률의 길이 아니고 낮은 확률의 길이었을 뿐이다. 각 옵션에는 각각의 장단점과 기대효과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을 여러 가정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치화는 가능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을 100% 반영하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전략적 가치를 택하는 것이다. 정말 누가 봐도 망할 것 같고 하면 안 되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없다.
• 시장과 고객에 대해서도 비록 기존에 없고 새로 개척하는 영역일지라도 인류 역사가 수천 년이며 쌓인 데이터가 엄청나다. 과거 데이터와 IT 기술이 부족할 때는 대표의 인사이트가 정말 아주 희박하게 시장을 꿰뚫는 적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매우 매우 드물다. 심지어 그 시대의 대표가 가진 인사이트는 지금처럼 편리한 기술로 인해 주어진 정보 없이 정말 자신의 인사이트였기에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이 정보의 홍수 속에 넘쳐나 있기에 아이러니하게 사실 자신만의 오리지날리티가 없어졌다. 그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도리어 그럼에도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게 되면 결국 조금 더 시장/고객을 서칭 한 이에게 쉽게 지게 된다. 세계적인 시장 조사 기관이나 컨설팅 펌들도 이제 스타트업을 포함한 기업/시장에 대한 리서치를 한다.
• 이전 글들에서도 말했지만 특히 미국에서 회사를 창업할 경우 아이템 (프로덕트, 비즈니스모델 모두 포함)은 창업자 공유의 오리지날리티로 인정하여 성장에도 유지되지만 초기부터 전문가를 투입하거나 바뀌는 영역들이 있다. HR, Finance, Legal이다. Finance와 Legal은 워낙 전문 영역이라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HR은 의외일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회사의 컬처나 인재상 등은 당연히 대표의 의사결정 영역이지만 의외로 채용/평가/보상/조직 구성 등은 전문 영역이다. 90% 정도의 표준화된 영역에 10%의 개별화된 영역을 넣는다. 가끔 반대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보편성은 생각보다 무섭다.
지금 유니콘이 된 한국 스타트업들조차 완전 전 세계적으로 오리지널로 아이템을 창업한 회사는 드물다. 미국에서 뜨고 있거나 성공한 아이템을 한국형으로 변환한 것들이 많다. 물론 그 시장을 한국 내에서 찾고 또 그 아이템을 한국에 도입하는 속도와 노력은 당연히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우수 인력과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이 맘만 먹으면 외부 트렌드를 조사하고 인력을 투입하고 자본력으로 장악하는 게 어려웠을까 생각한다.
한국 경제의 특이성 중에 하나는 재벌이다. Jaebul은 오너중심의 일본 기업 구조에서 파생되었지만 한국 색깔로 발전하여 고유명사가 되었다. 미국의 제일 무서운 반독점법과는 사뭇 다른 (정치권 영향도 커지만) 서민 경제에 대한 보호 여론이 한국에는 매우 강하다. 기존 스타트업 시장/아이템에 대해 대기업들은 어쩌면 알고 있음에도 눈치가 보이거나 혹은 투입대비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시장성이 낮다고 판단한 이유 중에는 대기업 의사결정 구조가 매우 무겁고 복잡함에 따라 그 시간과 리소스를 투입하게 되면 결국 기존 사업/시장대비 매력도가 낮다고 봤다.
스타트업과 관련하여 대기업이 간과했던 점은 기업가치 측면에서 시장/P&L 외에 고객/데이터가 가지는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이다. 분명 손익과 회사 규모에 비해서는 너무도 작은 스타트업이 기업 가치 측면에서는 대기업을 능가하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단순히 거품 낀 숫자로 치부하기에는 실제 그 기업가치에 기반한 자본력으로 다른 회사를 인수합병이 가능하다는 점이 현실로 다가온 무서움이다.
• 직방 : 삼성 SDS의 홈 IOT 사업 인수
• 런드리고 : 아워홈의 크린누리 사업 인수
• 토스 : LG U+의 PG사업부 인수
경제가 어려워지고 대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시장에서 더 이상 그런 여유로움은 사라졌다. 직접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고, 스타트업과의 JV로 진출하기도 하고, CVC를 통한 간접 투자형태로 진출하기도 하고, CIC 형태의 스타트업 육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성역처럼 지켜졌던 스타트업판은 이제 미국처럼 명확한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점령되었다. 미국은 시장경제 논리와 별개로 창업/도전으로 인한 기업 선순환 구조 & 사이즈가 다른 금융시장 사이즈가 또 한축이라고 판단한다. 명확한 시장경제 논리란 가장 심플하게 ROI (Return on Investment)이다. 리턴의 사이즈와 시기가 다를 뿐 사실 모든 자본 투자에는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한번 가정을 해보도록 하자.
• 명확한 시장/아이템이 있다는 전제하에 기성기업 출신들의 각 영역 전문가들로 투입되어 4년 만에 약 200%의 수익을 볼 수 있는 경우(PE)와 아직 시장/아이템도 모르겠지만 열정 넘치는 창업가들이 있어 8년 후에 2000% 이상의 수익을 보게 한다. 이게 기존 PE와 구분되는 VC의 모험을 감수한 투자논리이다.
※ 물론 이드도 더 정확하게 risk요인을 감안한 수익률 모델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이드는 HRer이다. 이 계산에 에너지를 더 쓰지 않음은 이해해 다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과거와 같이 2000% 이상의 수익을 보게 만드는 과한 밸류에이션도 유효하지 않고 그런 정도의 기회들도 많지 않다. 또 어느 정도 한국 스타트업 시장의 사이클이 약 2번 정도 돌았기에 기성기업 출신들의 각 영역 전문가들이 아닌 (단순 창업자 멤버가 아닌 실제 능력 기반의) 단위의 유니콘을 경험한 시니어 급 전문가들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VC들에서 우수인재 pool을 직접 관리해서 포트폴리오사에 지원해 주는 형태도 이와 유사하다 볼 수 있다. 이드는 개인적으로 직접 자본의 파워로 경영진을 교체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간접적인 형태로 스타트업 영역에서도 프로페셔널함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과거 스타트업 위인전을 보고 마냥 열정과 패기만으로 창업하고 성공할 수 있겠다는 시대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한다. '거의'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도 성공 케이스는 있지만 이제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 스타트업 위인전 : 이드가 만든 용어로, 위인들은 성공 이후 자서전과 같이 칭송을 위해서만 에피소드와 결과위주 내용을 쓴다. 그런데 실제 그것대로 하면 절대 똑같이 성공하기 힘들다. 그것이 위인전이다. 스타트업 스타 창업자들도 그런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유명해지다 보니 많은 후대 창업자들이 그와 같이 가고 싶어 하지만 절대 그대로 하면 성공은커녕 욕먹기 쉽다.
이제는 좋은 아이템이 있더라도 비즈니스 측면에서 고민을 더 치밀하게 해야 한다. 비즈니스 측면이란 것은 단순히 수익성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 측면이 아니라 실제 기업형태로 운영할 수 있을지 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까지 포함한다. 기업 사이즈까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빨리 그 아이템을 매각하는 것도 좋은 비즈니스일 것이다.
어느 아이템/시장이더라도 경쟁이 최근에는 매우 빠르고 치열해진다. 그리고 도리어 2차 경쟁자들은 최초 시장 진입자보다 더 전문적인 인력들과 튼튼한 자본력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진입장벽을 뚜렷이 가지기 위해서는 정말 뛰어난 원천기술/연구력이나 자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앞에서 아마추어리즘으로 표방한 젊은 창업 문화에서는 가지기 힘들다. 그렇다면 단순히 빠른 시장 진입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장을 기대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그 부분은 하나의 성공을 위한 요인일 뿐 그 뒤의 실제 성공을 위한 프로페셔널한 접근과 고민이 필요하다. 더 이상 모두가 가려는 길을 거부하고 이 세상 나만의 유일한 길을 가려하면 안 된다.
그래서 최초 커리어는 도리어 전문성을 배울 수 있는 대기업이나 프로페셔널 펌 등을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타트업에서만 나의 전문성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 과거에는 그래도 회사가 커짐에 따라 스스로 배우고 학습하게 여유 있게 기다려줬다면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런 여유가 없다. 매일매일이 경쟁의 전선이다.
To be continued with '2024년 스타트업의 낭만은 죽었다 ② : 희미해진 한방 exit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