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1
19세기와, 20세기 사이를 정확히 반으로 가로지르던 1900년, 캔자스주의 한 평범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한 편의 동화가 발표됩니다. 난로가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즉석으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가족들의 권유에 힘입어 몇 달 뒤 한 권의 동화책으로 출간되는데요, 초판만 무려 2만 부를 넘게 찍어내며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서게 됩니다. 1956년 저작권이 소멸되기까지 오리지널 책이 미국에서만 무려 오백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하니, 이쯤 되면 미국의 국민동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백 년 가까이 비평가들과 사서들로부터 도덕적이지 못한 이야기라며 끊임없이 질타를 받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주인공들은 어느새 미국인들에게 가족의 일원인 양 친숙해졌고, 작품에 기술된 몇몇 표현들은 생활에서 즐겨 쓰는 관용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작품에서 제시한 도덕적 기준과 삶에 대한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미국인들을 이어주는 정신적인 가교 역할을 하고 있죠.
‘오즈의 마법사’는 탄탄한 스토리와 판타지 세상의 섬세한 묘사, 그리고 거침없는 전개로 백 년 넘게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아온 매력 넘치는 작품입니다. 비록 책으로 읽은 사람이 많이 않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 뮤지컬 같은 파생 작품 덕분에 원작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마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워낙 떡밥이 많은 작품이다 보니 한 편만으론 ‘오즈의 마법사’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 원작보다 유명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 작품에 얽힌 통화정책에 대한 이야기까지 총 3편으로 나눠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캔자스(State of Kansas) 주, 외딴 농가에 도로시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핸리 아저씨와 엠 아줌마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지만, 황량한 초원에서 도로시의 유일한 친구는 강아지 토토뿐이었습니다. 거대한 회오리가 불어 닥친 어느 날, 미쳐 지하 대피실로 숨지 못한 도로시와 토토는 머물고 있던 집과 함께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높은 곳까지 떠오른 집은 폭풍우를 뚫고 한참이나 더 날아가서야 지면으로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도로시는 떨리는 마음으로 문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세상이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어디선가 키가 작은 먼치킨들이 나타나더니 자신들을 괴롭혀 온 나쁜 마녀를 처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도로시는 자신이 타고 온 집에 동쪽마녀가 깔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당황해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디선가 나타난 북쪽의 착한 마녀는 죽은 마녀가 신고 있던 은 구두를 도로시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도로시는 북쪽마녀에게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물었고, 마녀는 해답 대신 마법사 오즈를 만나보라고 권해줍니다. 그렇게 착한 북쪽마녀의 입맞춤을 받은 도로시는 노란 벽돌 길을 따라 오즈가 살고 있는 에메랄드 시티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행길에서 도로시는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밭 한가운데서 까마귀를 쫒던 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겁이 많은 사자는 모두 자신을 결핍을 채우기 위해 도로시를 따라 에메랄드 원정대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러나 희망도 잠시, 이들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뾰족한 바위가 깔린 계곡을 지나는가 하면 무섭게 생긴 괴물에게 쫓기기도 하고, 양귀비 꽃밭 길에서 잠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지혜와 용기를 모아 문제를 해결해하며 나름의 팀워크로 무사히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합니다.
누구나 쉽게 만나주지 않는 오즈는, 도로시의 이야기를 듣고는 일행을 만나주기로 합니다. 오즈는 큰 머리나 아름다운 여인, 이상한 괴물과 불타는 공으로 나타나 서쪽 나라의 나쁜 마녀를 죽이고 돌아오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일행은 즉시 나쁜 마녀가 살고 있는 서쪽 윙키의 나라로 향했습니다. 나쁜 마녀는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일행을 격파하기 위해 늑대와 까마귀 그리고 벌떼를 차례로 보내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팀워크로 고비를 잘 넘깁니다. 서쪽에 거의 다다르자 마녀는 날개 달린 원숭이를 소환해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을 못 쓰게 만들고 사자를 묶어 가두어 버렸습니다. 도로시 또한 생포되어 서쪽 마녀에게 잡혀오게 되죠.
마녀는 구두를 빼앗기 위해 도로시에게 부엌일을 시키며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마녀가 구두를 빼앗으려 하자 화가 난 도로시가 마녀에게 물을 끼얹었고, 물에 닿은 마녀는 갈색 물로 녹아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도로시는 일행을 구출하고, 황금 모자 마술로 날개 달린 원숭이를 불러 에메랄드 시로 돌아갔습니다. 도로시 일행이 에메랄드 시에 도착하자 오즈는 그들을 피하지만, 토토가 오즈 앞에 쳐진 장막을 당기면서 진짜 정체를 들키게 됩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사실 오마하 출신으로 복화술을 익힌 서커스단의 기구 여행가였는데, 젊었을 때 기구를 탔다가 실수로 바람에 날려 오즈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오즈의 시민들을 속여 가며 마법사 행세를 해왔던 것이었습니다.
지난 여정을 통해 허수아비는 원래 지혜로웠고, 양철 나무꾼은 원래 마음이 따뜻했으며, 사자는 원래 용감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오즈의 마법사는 허수아비에겐 실타래와 바늘이 뒤엉켜있는 왕겨 주머니를, 양철 나무꾼에겐 톱밥으로 가득 찬 하트 모양을, 겁쟁이 사자에게는 녹색 물약을 줌으로써 셋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믿게 됩니다. 도로시는 오즈와 함께 캔자스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바느질을 하면 열기구를 만들었지만, 출발하는 날 토토를 찾느라 열기구를 놓치고 맙니다. 결국 오즈 혼자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죠. 낙심하던 도로시는 초록 수염 병사에게 남쪽에 글린다(Glinda)라는 착한 마녀를 찾아가라는 조언을 듣게 되고, 에메랄드 시의 왕으로 추대된 허수아비를 비롯한 일행과 함께 남쪽 마녀를 찾아 또 한 번 길을 떠납니다. 도중에 요술 나무의 숲과 도자기 인형들의 나라를 지고, 덤불숲 속 동물들을 만나는데, 사자는 거미를 처치해 주고 숲 속의 왕으로 추대됩니다. 긴 목을 뻗어 머리로 통행자를 공격하는 망치머리 사람들의 언덕에 다다랐을 때, 도로시는 황금 모자 마술로 날개 달린 원숭이들을 불러내 무사히 남쪽 쿼들링(Quadling) 들의 나라에 도착하게 됩니다. 남쪽 나라에서 만난 친절한 마녀 글린다는 은 구두의 뒷굽을 세 번만 울리면 원하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려 주었고, 도로시는 토토와 함께 무사히 캔자스로 돌아갑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환상의 세계로의 무대 변환, 동료 획득, 모험, 집으로라는 기존의 모험동화의 클리셰를 비교적 잘 따르고 있는 작품입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50년 전에 먼저 등장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선 ‘눈의 여왕(The Snow Queen-안데르센)에서 이웃집 동생을 찾아 험지로 나선 게르다(Gerda)의 모험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지금까지 등장했던 여느 주인공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결핍을 앓고 있는 동료들을 모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려 위기를 극복하고, 앞에 놓인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점을 모색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상한 방 안에 갇히자 홍수가 날 정도로 통곡했던 앨리스와 달리 도로시는 하늘로 날아가는 집안에서 잠을 청했고, 나쁜 마녀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등 적극적이고 대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제 해결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금껏 동화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절대 힘이 나타나 평소 착하게 살았으니 내가 도와 주마하는 식으로 절대자에 의해 문제가 회피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도로시는 보다 적극적이고 대담한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갑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최초의 여성리더라는 점에서 ‘오즈의 마법사’는 아동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여성리더가 뭐 대단한 소재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던 그 시절엔 이 작은 소녀의 여정은 놀랍고도 충격적인 스토리였습니다. 동화책 출판 당시 시카고의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여성을 강한 리더로 묘사했다는 이유를 들며 아이들에게 부도덕하고 사악한 영향을 준다며 금서로 묶어버렸습니다. 1957년에도 디트로이트 공공도서관(Detroit Public Library)에서도 역시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관내 비치가 금지되기도 했죠.
낯선 환경에 떨어진 마법은커녕 힘 조자 없는 어린 소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한 도로시의 모습은 이민 러시가 한창이던 개척시대의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미국 사람들은 도로시를 가리켜 영국 앨리스에 대한 대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판타지 세계를 다루는 한, 어느 동화에든 세계관은 있기 마련입니다.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니 당연한 이치겠지요. 현대 동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예를 들면, 판타지 세상은 물론 역사와 인종, 등장인물의 능력과 한계까지 매우 자세하게 설계가 되어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 년 전 동화 속 세상은 그렇게 섬세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피터팬처럼 끝없이 환상의 세상을 연출한다거나, 인어공주에 나오는 물속 세상처럼 한곳에 집중에서 세상을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즈의 마법사는 제대로 이해하려면 지도가 필요할 만큼 영토와 부족, 통치자에 이르기까지 세계관이 잘 적립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여러 후속 편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지요. 여러분, 혹시 ‘오즈의 마법사’가 몇 편까지 나온 줄 아십니까? 한번 맞춰보세요. 2편? 아니면 3편?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고요? 시리즈는 원작자인 프랭크 바움이 쓴 14권과 이후 자손들이 주축이 된 협의회를 통해 공식 스토리로 인정받은 작품을 포함하여 무려 40편이 달합니다. 이렇게 40편을 The Famous Forty라고 명명하고 있는데요, 13편부터는 바움이 죽은 후에 출간이 시작됩니다.
디트로이트에서 금서로 지정되던 1957년 그해에 13세 소년에 의해 국제 오즈의 마법사 클럽(The International Wizard of Oz Club) 결성되었습니다. 클럽은 일 년에 3회 <바움 버글>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오즈를 주제로 하는 학회를 지원하는 등 학술적 연구와 대중적 인기가 유지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국제 오즈 마법사 클럽(The International Wizard of Oz Club; http://ozclub.org)에서 각종 행사와 창작활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Lyman Frank Baum, 1856년 5월 15일 ~ 1919년 5월 6일)
오즈의 아버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1856년,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정유사업을 하던 아버지 아래서 형제들과 함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바움은 일찍이 가족신문을 만드는 등 글쓰기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10대 때 육군사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한 것 말고는 비교적 평온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그는 청년이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바움은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처지가 되고 맙니다. 재능이 많았던 그는 극작가, 잡지 편집장, 신문기자, 배우, 도자기 외판원, 잡화상 운영, 닭 양육법 개발, 진열 전문가 등 실로 다양한 직업을 전전 근근 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마흔한 살이 되던 해에 ‘산문으로 읽는 마더 구스(Mother goose in prose)’라는 첫 번째 아동 산문집을 발표하고, 연이어 ‘파더 구스(father goose)’라는 책을 발간하는데, 두 번째 책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바움은 어쩌다가 갑자기 동화작가의 길을 가게 된 걸까요? 그가 아동문학가를 평생직업로 삼은 데는 장모인 마틸다의 조슬린 게이지(Mathilda Joselyn Gage)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녀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권 운동가였는데 사위인 바움에게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로 써 보라고 조언하고 또 아낌없이 응원해주었습니다. 주인공 도로시나 2편 환상의 나라 오즈(The Marvelous Land of Oz)부터 등장하는 성 정체성이 바뀐 오즈마(Ozma) 공주, 에메랄드 시를 정복하기 위해 소녀 반란군들을 이끌고 진군해오던 진저 장군 등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에 곳곳에서 보여주는 페미니즘적 요소는 장모의 영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시리즈 곳곳에 반전의 메시지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육군사관학교 학생 당시 느꼈던 폭력과 강압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바움은 '오즈' 시리즈 외에도 동화, 시, 풍자극, 공상과학 소설에 이르기까지 아동문학과 성인문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집필했으나 그의 독자들은 오직 ‘오즈’ 시리즈만을 원했습니다. 바움은 ‘오즈의 마법사’가 출간된 지 십사 년째 되던 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팬레터를 외면하지 못하고 결국 ‘환상의 나라 오즈’라는 새로운 오즈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는 죽는 날까지 오즈 시리즈에 전념하였습니다.
(William Wallace Denslow, 1856년 5월 5일 ~ 1915년 5월 27일)
바움의 첫 번째 작품인 ‘마더 구즈’의 속편 격인 ‘파더 구즈’부터 삽화가로 참여한 덴 슬로는 매력 넘치는 삽화로 독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멋진 삽화에 힘입은 ‘파더 구즈’는 초판 오천 칠백 부가 순식간에 팔려나갈 정도로 ‘마더 구즈’에 비해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이에 서로의 필요성에 공감한 바움과 덴 슬로는 이듬해 차기작인 오즈의 마법사로 다시 뭉치게 되었고, 이 한 편의 작품으로 덴 슬로는 세계 최고의 동화 일러스트레이터로 우뚝 서게 됩니다. 덴 슬로의 삽화는 이후 이어진 뮤지컬과 영화는 물론 여타 파생 작품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백 년 넘은 지금까지도 팬시용품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환상의 팀은 아쉽게도 1편으로 해체의 길로 들어섭니다. 이유는 저작권 분쟁 때문이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 1편이 성공을 거두자 바움은 자신의 공연 경험을 살려 뮤지컬을 기획하게 됩니다. 미국 전 지역에서 수 백 번의 공연을 거치며 큰 인기를 끌자 덴 슬로가 슬쩍 숟가락을 꺼내 듭니다. 바움에게 뮤지컬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한 것인데요, 근거는 자신의 삽화를 기반으로 무대와 의상이 디자인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 둘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덴 슬로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둘이 의기투합하던 시기, 여러 직업을 전전긍긍하던 바움과 달리 덴 슬로는 이미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미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뉴욕의 쿠퍼 인스티튜트(The Cooper Institute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nd Art)와 국립 디자인 학교(The National Academy of Design)에서 실력을 쌓은 뒤 미 대륙 곳곳에서 신문 일러스트레이터, 캐리커처 만화가, 연극 및 광고 포스터 디자이너 무대의상 디자이너 등으로 디자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즈의 마법사 성공 이후 그의 기행이 시작됩니다. ‘오즈의 마법사’로 큰돈을 벌게 된 덴 슬로는 그 돈으로 버뮤다 해안에 작은 섬을 매입합니다. 그리곤 그 섬 안에서 스스로를 “덴 슬로 왕 1세”라고 명명했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오즈 시리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덴 슬로는 혼자 글까지도 직접 써서 몇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그러나 글재주가 부족했던 그는 펴내는 책마다 비평가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며, 독자들에게도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습니다. 시대를 대표하던 삽화가 덴 슬로는 1915년 알코올 중독으로 전 재산을 잃고 세간인들의 무관심 속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 오늘은 미국의 자존심이자, 최초의 소녀 리더를 탄생시켰던 불세출의 동화 ‘오즈의 마법사’와 첫 만남을 가져보았습니다. 이제 슬슬 수술실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너무 서운해 하진 마세요. 앞으로도 오즈의 마법사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으니까요. 다음 시간엔 소설보다 더 유명한 영화인 MGM의 대표작인 ‘오즈의 마법사’를 비롯해 지난 100년 동안 오즈가 대중문화사에 뿌린 다양한 서브컬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