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3
유튜브나 각종 검색엔진을 통해 오즈의 마법사를 검색하면 쉼 없이 따라오는 주제어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마저 생소한 ‘금본위제도’라는 단어인데요, 오즈의 마법사가 1800년대 말 당시 금본위제도를 비판하고 금은본위제도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한 대부분의 인터넷 창작물들은 이것이 마치 확고부동한 사실인 듯 이야기를 전합니다. 저자인 라이먼 프랭크 바움은 금은본위제로를 실현하고자하는 희망을 담아 이 이야기를 발표한 걸까요? 이런 주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떡밥을 회수하기 위해 잠시 1800년대 말 미국으로 가보겠습니다.
19세기말 전 유럽에 걸쳐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 무렵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항에 도착한 이민자수가 줄잡아 20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다양한 나라와 인종의 사람들이 미국을 향에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남부를 중심으로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심했고, 인디언과의 전쟁도 그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몰려드는 이민자들 덕분에 도시화와 공업화가 가속화 되었고, 유럽에 비해 높은 임금을 찾아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은 엄청난 강도의 노동을 견디면 비위생적인 빈민가에서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농민의 삶은 더 암담했습니다. 연이은 가뭄과 디플레이션 때문에 소작농은 농토를 버리고 떠났고, 덩달아 지주들도 함께 몰락하는 등 처참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도로시의 집이 있던 미국 정중앙에 위치한 캔사스지방은 1880년대 후반 4년 만에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농경지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곳이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처럼 제국주의가 꿈틀거리면서 수 만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댓가로 미국은 필리핀이나 쿠바, 하와이, 파나마 등을 전략적 거점지로 취하게 됩니다.
시대상은 이정도로 정리하고요, ‘금본위제도’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프랭크바움이 작가로 활동하던 1800년대 말 미국에선 통화제도로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 화폐의 가치가 하락해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게 됩니다. 인플레이션의 상투를 잡지 못하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화폐가 폐지가 되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음을 잘 알고 있었던 미 정부는 그에 대한 예방책으로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 만큼만 화폐를 찍어낼 수 있게 제도화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금본위제도입니다. 금본위제도 덕분에 인플레이션은 막아냈지만 당시 미국의 경제발전속도에 비해 금 생산량이 부족하다보니 경제가 원하는 만큼 화폐를 찍어낼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1880년부터 1896년 사이 물가가 20%대로 떨어지는 등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게 됩니다. 지금과 달리 경제구조가 단순했던 당시, 디플레이션이 오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 파는 농업인 이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큰 익을 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임대업을 하는 자본가들이였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땅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는 소작농에게 이자를 받고 땅을 빌려줍니다. 이자로 한 달에 20만원을 받았다고 쳐보죠. 농민은 50만 원쯤 이익을 내서 임대료 20만원을 지불하고, 나머지 30만원으로 쌀 3가마니를 삽니다. 더불어 자본가는 임대료를 받아 쌀 2가마니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농산물가격이 반값이 되면서 농민들이 얻는 이익은 25만원으로 떨어지게 되고 임대료를 지불하고 나니 쌀 한가마니를 겨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20만원의 임대료를 받은 자본가는 물가가 하락한 덕분에 같은 임대수익으로 4가마의 쌀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막장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금에 대한 보완재로 은을 함께 화폐발행의 담보로 사용하자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금은본위 또는 복본위라고 불리던 제도입니다. 요컨대 금만을 화폐로 인정하면 통화량이 적어지고 경기가 위축되니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은도 같이 쓰자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의회 안팎에서 금본위제와 금ㆍ은본위제를 주장하는 미국 정당들은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북동부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Jr) 공화당 후보와 자본가 계층은 금본위제를 지지했고, 인민당 출신의 민주당 후보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과 남서부의 농민 노동자 계층은 금ㆍ은 본위제를 지지했습니다. 결국 1896년 대통령선거에서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공화당이 이기게 되고, 매킨리는 제 25대 대통령이 됩니다. 남서부의 농민들은 낙심했지만, 금본위제도는 굳건히 자리를 지켜냅니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경제상황이 ‘오즈의 마법사’와 무슨 상관이 있었을까요?
미 대륙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캔자스에 살고 있던 도로시는 전형적인 미국인을 상징합니다. 오즈로 데려간 회오리바람은 금은본위제를 요구하는 목소리이며, 캔자스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은구두는 금은본위제도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등장하는 캐릭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집에 깔려죽은 동쪽마녀는 동부의 사업가와 은행가이고, 허수아비는 서부의 농민, 양철나무꾼은 노동자, 그리고 겁쟁이 사자는 인민당 출신 민주당의 후보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입니다. 도로시 일행은 노란 벽돌길을 따라 에메랄드시티로가 사기꾼인 위대한 마법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금본위제로를 따라 워싱턴으로 가봤자 결국 매킨리대통령을 만날 뿐이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에메랄드 시티가 온통 초록색인 이유는 당시 화폐로 통용되던 그린백(Green Back)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고, 제목인 OZ는 Ounce의 약자로 금의 부피를 재는 단위입니다.
뭔가 딱딱 잘 맞아떨어지는 이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요?
과연 바움은 ‘오즈의 마법사’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은유한 것일까요?
“오늘날에는 교육이 이미 도덕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요즘 아이들은 동화에서 재미만을 추구할 뿐, 불쾌한 일은 접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즈의 마법사』는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오늘날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만 쓴 글이다. 이 책이 경이와 기쁨은 고스란히 두고 고통과 악몽만을 없애 버린 현대적 동화가 되기를 바란다.”
L. Frank Baum
- 1900년 오즈의 마법사 초판 서문 -
1900년 오즈의 마법사가 첫 출간된 후 60여년 동안 한 번도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저 용기있는 소녀의 신나고 짜릿한 모험동화였을 뿐이죠. 그러다 1964년 미국의 교사였던 헨리 리틀필드(Henry Littlefield)는 논문을 통해 오즈의 마법사에 숨겨진 정치경제학적 의미가 있다며 떡밥을 던졌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신한 비유정도에 지나지 않았는데, 1990년 러거스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인 휴 록오프(Hugh Rockoff)가 발표한 <통화 알레고리로 본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 as a Monetary Allegory)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되면서 앞서 리틀필드의 해석을 한층 심화시키면서 학계에 널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치 다빈치코드인양 오즈의 마법사 하면 따라붙는 연관어로 굳혀갔습니다.
음모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즈가 도로시 친구들에게 건넨 선물에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허수아비에게 준 졸업장에 빗대어 농민에게는 교육을, 양철나무꾼에게 준 시계에 빗대어 노동자에겐 휴식을, 사자에게 준 훈장에 빗대어선 정치가들에겐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바움은 진짜 자신이 생각하는 통화에 대한 정치적 선전을 목적으로 이 동화를 지필한 것일까요? 오즈의 마법사는 정치선동의 찌라시였을까요?
음모론 중에게 가장 말도 안 되는 설은 오즈가 도로시 친구들에게 준 선물에 담긴 의미입니다. 이게 왜 가장 웃긴 헛소리냐면요, 원작소설에선 오즈의 선물이 아예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선 졸업장과 시계, 그리고 훈장을 주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원작에선 실타래와 하트모양의 봉제품, 그리고 물약을 주죠. 원작은 펼쳐보지도 않고 영화만 보고 얼버무려 만들어내다보니 이런 웃지못할 음모론이 생겨난 것입니다. 끝끝내 음모론이라고 우기겠다면, 원작자인 프랭크바움의 음모가 아니라 바움이 죽은지 20년 후에 영화화 한 빅터블래밍 감독의 음모라해야 맞겠죠.
두 번 째, OZ가 금을 재는 단위인 Ounce의 약자라는 주장입니다.
바움은 집에서 네 명의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한 편의 이야기를 즉흥으로 지어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는 이렇게 태어납니다. 프랭크바움의 첫째 아들인 프랭크 2세의 주장에 따르면 아버지가 이상한나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한 명의 자녀가 이상한 나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서랍장에 붙은 표식을 보고 OZ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프랭크 2세는 1898년 5월 7일의 일이라고 날짜까지 특정했는데요, 이는 마닐라에서 듀이 장군이 승리(필리핀을 두고 스페인과 벌인 전쟁)가 헤드라인으로 다루어진 신문이 방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족들에 말에 따르면 리틀필드가 온스의 단위라고 주장한 OZ는 실은 A부터 N, O부터 Z로 나뉜 서랍장의 색인을 보고 즉흥으로 만들어낸 것이죠.
세 번째 바움의 이념적 성향이 인본주의 보다는 보수에 가까웠다는 점입니다.
바움은 저명한 여성운동가인 장모 조슬린 게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에게 처음으로 문학작품을 써보라는 권유를 해준 이가 장모였고, 장년에 이르러 많은 기고문에서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적 면모를 보여줄 정도로 장모와 지적 친밀도가 높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분야에까지 진보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농민과 노동자의 고초를 대변하기위해 오즈의 마법사를 집필했다면 분명 그전에 인본주의 정신이 관찰되어야할 텐데, 아쉽게도 삶의 괘적을 추적해 보면 그러한 정신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십 번 직업을 바꿔가며 평생을 부와 명예를 쫒으며 살아온 사람이죠. 게다가 칼럼에서 운디드 니의 학살 사건(1890)을 지지하는 등 오히려 반 인본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저널리스스트로 활동한 내역을 종합해보면 정치적이 성향도 민주당이나 인민당보다 공화당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프런티어>의 편집장으로서 은화 자유주조를 반대했고, 오즈를 집필하기 3년 전인 1896년 <타임즈-헤럴드>에 맥킨니와 금본위제를 지지하는 시를 실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들인 해리바움은 아버지에 대해 저널리스트로서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이었지만, 대개는 공화당을 선호했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증거는 그의 동화 속에 있습니다.
바움은 수 십 편의 동화책을 지필하면서 한 번도 잔인한 소재를 다룬 다거나 ‘이렇게 살면 큰 벌 받게 될 거야.’는 식의 도덕적인 압력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바움은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교훈동화를 무척이나 경멸했습니다. 그의 동화는 순수했으며, 어린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린이 팬들로 부터 하루에 수십 통의 편지를 받았지만, 시간이 걸릴 지언 정 한 번도 답장을 외면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임종직전까지 답장을 썼으며, 그 증거로 지금도 많은 수의 그의 답장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지개 너머 저 편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곳이 이런 생명체들이 살고 저런 자연환경이 펼쳐져있을 거야. 라고 말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러나 ‘무지개 너머 저 편엔 분명 자본가들이 득실대는 워싱턴이 있어야 하고, 그곳엔 사기꾼들만 가득해야해. 그것이 작가의 뜻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잘 못 된 것입니다.
동화해부학에서는 동화가 가지고 있는 숨은 이야기, 동화의 배경이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동화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동화 한편을 매우 잘게 부쉈다고 재조립하기를 반복하지만, 우리에겐 한 가지 철학이 있습니다. 작가가 전하고자했던, 있는 그대로를 흐림 없는 눈으로 먼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동화가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화를 특정한 잣대로 규정짓는 것, 그리고 마치 그것이 사실이고 진리이양 주장하는 것도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겠죠.
지금까지 작품해설에서부터 서브컬쳐 그리고 경제학 떡밥까지 오즈의 마법사에 대해 입체적으로 해부를 해보았습니다. 비록 오즈 시리즈는 이번 편으로 마치지만, 오즈가 100년 넘게 사랑받아왔듯, 저희 동화해부학에서도 앞으로 도로시와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즈는 고전동화에 대한 전복이며, 그 후에 나온 수많은 동화들의 롤 모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