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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영 Oct 21. 2024

못 하지만 좋아해요. 운동.

못 하는데 왜 좋아할까?

살면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운동을 좋아한다.

보통 잘하는 것에 흥미를 보이고 좋아하게 되는 편인데 운동만은 엄청난 예외다. 너~무 못하지만 좋아한다.


움직임이 한없이 느리고 근육 하나 없을 것 같은 몰랑몰랑한 몸으로 운동을 한다. 해파리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뭐든 못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데 운동은 왜 재밌을까?

운동은 애매한 재능으로 나를 희망고문하지 않는다. 내 위치는 '못함'의 대륙 끄트머리라 '잘함'에 아무 기대가 없다. '잘함'에서 성취와 즐거움을 느끼는 대부분의 경우와 달리 운동은 정말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운동할 때는 온전히 몰입한다. 자세를 신경 쓴다. 순간을 버틴다. 머리를 비운다.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나를 속이지 않고 되는 만큼만 여유롭게 행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는다. 운동을 좋아한다. 삶에서 운동은 소중한 존재이다.


해파리 인간의 첫 번째 운동은 호흡이다.

태초에 호흡이 있었다.

사람들이 숨쉬기도 운동이라며 장난치기도 하지만 호흡은 인간이 처음으로 행하는 운동이다. 운동이라는 단어가 '몸의 움직임'이라는 의미이고 아주 광범위한 개념인 만큼 호흡은 운동이며, 신체 움직임의 근원이다.


항상 호흡을 한다. 힘들 때는 깊이 있게 한다.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을 바라본다. 명상을 한다.

숨이 턱 막힐 때마다 심호흡을 해 본다. 호흡에 집중하려 하면 갑자기 평생 하던 숨쉬기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떠오르는 생각은 멀리서 관조한다. 열심히 생각에서 도망치고 멀어지며 스스로 거리를 자아낸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움직이기도 싫을 때는, 들이쉬고 내쉬기만 한다. 그럴 때가 있다. 잠들기 전 머리가 너무 복잡할 때, 회사에서 너무 바빠서 상기된 얕은 숨을 가쁘게 몰아쉴 때, 좋은 이와 다퉈서 날이 선 말을 뱉어내려고 하기 직전에. 그때 잠시 멈춰 서서 숨을 쉰다.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나의 숨결에 집중하고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고 온전히 나를 볼 때 마음은 한결 편안해진다. 막힌 숨을 풀어내고 조금씩 더 움직인다. 


샤워할 때 물이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삶이 버거울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게 부담스러우며 계속 잠만 자고 싶은 그런 때. 어쩌다 눈을 뜨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호흡을 시작했다. 가이드 음성을 따라 들이쉬고 내쉬고. 숫자에 맞춰보기도 하고 코 끝의 감각에 신경을 집중해 보기도 하고. 현재에 머물러 있음을 잊지 않으며 원거리에서 나를 지켜보고. 무시무시하게 덮쳐오는 생각들을 흘려보내려 애쓰며. 태어날 때의 호흡은 단숨에 나를 살게 했지만 이때의 호흡은 천천히 나를 살려냈다. 


가볍든, 무겁든 조금이라도 마음이 내려앉는다면 그럴 땐 자기 보존 운동인 호흡을 하자. 

나를 지켰고 앞으로도 지켜낼 호흡을 시작으로 운동 일대기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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