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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rian Pia Feb 01. 2022

이 험지에 왜 오셨어요?

도서관장의 업무 일지

  2017년 1월 2일, 첫 출근한 날이다. 

  나는 직장을 옮겨 출근한 첫날이지만,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한해 근무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오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무식이 있다고 했다. 안갈 수도 없고...할 수 없이 혼자 행사장으로 향했다. 본 행사 후에는 시장님과 부시장님들, 25개 구청장님들 그리고 시 간부들의 리셉션이 있었다. 아는 사람도 없이 리셉션까지 참석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던 차에 자치구에서 함께 근무하였던 과학관 관장을 만났다. 고립무원에서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다음 일정은 문화본부장 주재 오찬. 아는 사람이라고는 본부장 한 분인 어색한 자리에 참석하였다. 잔뜩 긴장한 탓에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그런 내게 본부의 과장님들이나 주무팀장은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들의 태도에 살짝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자리에 제대로 앉아보지도 못하고 오후가 되었다. 이렇게 정신이 없는 날이라니. 

 직원들이 모여있다고 해서 2층으로 내려가 상견례를 하였다. 수십 명의 직원들은 나 한 사람만을 바라보았다. 새로 온 관장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날 나는 직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이 도서관 운영을 책임질 사람입니다. 자치구 공공도서관 관장으로 근무하면서, 광역 대표도서관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것은 우리 도서관이 정책을 담당하고 있고 자치구 도서관과 지원.협력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자치구 공공도서관은 지역사회와 밀착한 독서, 정보기관이자 지역공동체가 가능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기에 현재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자치구마다 다른 수탁 주체, 조직 그리고 비정규직이 많은 인적 구성은 구조적으로 도서관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개선할 힘도 없습니다..  저는 '불쌍한' 구립도서관을 위해서 광역대표도서관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자치구 공공도서관 상황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기 위해서 관장 공모에 도전하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그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분과 함께 잘 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한 이야기를 당시 직원들이 얼마나 이해했을까 싶다.  이 이야기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십몇 년 간 공공도서관 서비스의 최접점인 구립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겪고, 보고 느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어느 날, 나는 자치구 공공도서관 관장 모집 공고문을 보고 겁도 없이 지원하였다.  다니던 직장을 IMF 사태로 그만둔 후, 대학에 강의를 나가며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었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었던 터라 앞뒤 생각도 없이 지원하였는데, 덜컥 합격을 한 것이다. 

 공공도서관에서 일해 본 경험 없이 관리자가 된 나는 부지런히 공부하고 다른 공공도서관을 벤치마킹하며, 지역주민과 상호 발전하는 이상적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었다. 더욱이 내가 운영하는 도서관은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난 딸을 기념하기 위해 기부로 건립된 도서관이었기에 그 의미를 되살리며 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생겼다. 그 도서관은 자치구 지방공기업인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마다 경영평가를 받아야 했다. 조직은 도서관팀이고 관장은 팀장으로 불렸으며(후에 부서 명칭을 도서관으로 복구하였다), 얼마 되지 않는 예산을 절감해야 하며 프로그램으로 수익도 올려야 했다.  내가 알던 공공도서관의 공공성, 공개성, 무료성의 원칙을 고수하며 도서관을 운영하기에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던 것이다. 

  타 자치구에도 공공도서관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많은 자치구에서 벤치마킹을 왔지만, 우리보다 더 열악한 인원과 예산, 권한없는 낮은 직급의 관장 등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는 조직구조가 만들어졌다. 자치구 위탁도서관의 규모, 조직, 인적구조는 점점 왜곡되어 갔다. 몇몇 관장들과 모이면 각자 하소연하며 신세타령이나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래서는 공공도서관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도서관협회를 다니면서 위탁도서관 실태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모두 거절당했다. 그건 서울특별시의 일이라는 것이다. 2012년 광역대표도서관이 개관하였을 때,  비로소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막 걸음마를 뗀 광역대표도서관은 제 앞가림하기도 바빴다. 

  도서관장 모집 공고를 보고, 많은 날 고민하다가 응모하였다. 광역대표도서관에서 할일이 많겠지만,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후 늦게 인사과장 사무실에 인사차 방문하였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인사과장의 질문, "이 험지에는 왜 오셨어요?" 나는 당황했다. "네, 험지라고요?" 그리고는 서로 웃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퇴근을 하는 길에도  인사과장의 이 질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퇴임하는 그날까지도 '험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개방형 관장이 걸어가야 할 고독한 길,  그날 인사과장이 표현한 '험지'를 깨닫는 데 시간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출근 첫 날, 세종대로 ****에서의 하루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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