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화천과 양구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소 성격이 다른 지역이다. 우선 두 지역은 파로호라는 공통된 요소를 지녔으나, 화천군청 앞에 붕어섬이 있다면 양구군청 앞에는 한반도섬과 꽃섬이 있다. 붕어섬은 춘천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났으며 울창한 산림으로 덮여 있고 축구장, 족구장, 수변산책로 등이 있는 전형적인 친환경 휴양지이지만, 편의점이나 식당이 없어 잠시 쉬어가기에 알맞은 장소라 하겠다. 반면 한반도섬의 경우 한반도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들어낸 섬이다. 인근에 섬의 모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짚라인 코스 및 수상 레저 선착장, 카페가 있어 본격적인 복합휴양지라 할 수 있다. 또한 한반도섬은 본디 습지 위에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늘이 거의 없어 강한 햇볕을 막기 위한 무료 양산 대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꽃섬도 그렇고, 두 섬 모두 인공적으로 예쁘게 가꾸어놓은 흔적이 역력하다.
화천과 양구가 비교되는 부분은 또 있다. 화천에 조경철 천문대가 있다면, 양구에는 국토정중앙천문대가 있다. 거듭되는 말이지만 DMZ 권역 전역은 밤하늘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 천문 관측을 사랑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다. 전자가 고도가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고 큰 망원경을 보유하고 있어 보다 전문적인 분위기가 풍긴다면, 후자는 군청에서 가까워 접근이 쉽고 캠핑장을 갖추어 친근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국토정중앙천문대는 이러한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군민들을 대상으로 한 아기자기한 행사를 자주 연다. 여름방학 캠프, 명절 관측행사, 반려견 동반관측 등 국토정중앙천문대에서 주관하는 크고 작은 행사들을 보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양구가 한반도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해당 지점에 휘모리 조형물과 ‘국토정중앙점(배꼽점)’이 있는 까닭으로, 인근의 천문대 역시 그 명칭답게 국토정중앙면 국토정중앙로에 위치해 있고 매년 가을마다 양구에서는 국토정중앙 배꼽축제가 열린다.
천문대 구경까지 마쳤으면 조금 외곽으로 떠나보자. 대다수의 관광객이 양구군청에 가까운 박수근미술관만 슥 보고 지나치지만, 개인적으로 거기서 자동차로 약 30분을 더 달려 백자박물관까지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가는 길이 꼬불꼬불 험한 편이긴 하나 이곳은 양구 여행에서 빼놓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장소다. 양구는 백자의 원료가 되는 백토의 산지로서 조선 후기 백자 생산을 담당하던 사옹원에 백토를 공급하였고,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수입천과 풍부한 땔감은 고려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양구 요업 발달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양구에 남은 가마터만 무려 40여 기에 이른다고 하며, 이에 2006년 백자박물관이 건립되었고 뒤이어 세워진 도자역사문화실은 2022년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역사도 깊은데 박물관 건물도 아름답고, 그 안에 소장된 유물들도 가치 있으며, 현대 도예 작가들이 다양한 주제로 협업 전시까지 펼치고 있으니 양구를 방문했다면 이곳을 안 가볼 이유가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양구백자박물관은 양구 DMZ 권역의 출발점이다. 근방에 있는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있어 50여 년간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으나, 2003년부터 예약한 이들에 한해 생태관광지로서 개방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열목어, 개느삼을 비롯해 금강초롱, 흰비로용담, 날개하늘 나리, 해오라비 난초, 끈끈이 주걱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해발 1,300m의 대암산 정상 부분에 있는 남한 유일의 고층습원인 ‘용늪’은 수천년의 생태계 변화를 간직하고 있다. 용늪은 현재 자연 생태계보호의 중요성으로 인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두타연 뿐 아니라 바로 옆 동네인 펀치볼도 민통선 안에 존재한다. 화천은 산지가 많아 버섯, 더덕, 도라지 등의 특산물이 주로 나온다면 양구의 특산물은 단연 곰취를 필두로 한 각종 나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펀치볼에서 나오는 시래기는 아예 ‘펀치볼 시래기’라는 브랜드를 달고 출하되며, 일반 무가 아닌 시래기 전용 무를 재배하여 대대적으로 시래기를 생산하고 있다.
펀치볼은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400∼500m의 고지대에 발달한 분지이다. 군청 기준으로 북동쪽 약 22km 지점인데, 한국 전쟁 당시 그 주변의 지형이 마치 화채(punch) 그릇(bowl) 같다고 미군들이 펀치볼이라 부른 게 현재까지 지명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펀치볼의 모양은 남북 방향으로 길쭉하며 남쪽으로 좁아진 접시와 같다. 이같은 특수한 지형의 원인을 운석과의 충돌 때문이라고 보기도 하나, 아직 분지에서 운석의 파편이 발견되지 않았고 토양이 주변에 비하여 무르다는 까닭으로 차별침식이 원인이라는 설이 더 신뢰를 얻고 있다. 즉 풍화작용에 강한 고지대의 토양보다 저지대의 토양이 훨씬 빨리 침식되어 지금과 같은 지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해안면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위치한 면이며,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대신 현재까지도 곳곳에 지뢰 푯말이 세워져 있어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펀치볼의 북서쪽에는 1990년 3월 3일 발견된 제4땅굴이 자리잡고 있다. 공사로 인해 2024년 9월 30일까지 임시 휴관 상태인데, 휴관 전에는 다른 땅굴과 달리 제4땅굴만큼은 협궤 전동차에 탑승해 비교적 편안히 관람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최전방 가칠봉 능선에 위치한 을지전망대는 금강산 비로봉 외 내금강의 4개 봉우리를 전망할 수 있는 안보교육장으로서, 제4땅굴과 함께 해안면 복지회관 옆 양구통일관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출입하는 곳이었다. 특이하게도 을지전망대는 198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이 육군 제1862부대를 방문한 뒤 1억 2,500만 원을 부대에 기탁하여 건립한 전망대이다. 해발 1,049m에 있어 자동차를 타고 거의 가칠봉 정상까지 올라가야 전망대를 만날 수 있다.
본래 제4땅굴 휴관이 2023년 12월 31일까지였지만 현재 연장된 상태라, 9월 30일이 지나도 계속 휴관 상태일까봐 아쉽기 그지없다. 판문점도 여기도 부디 예전처럼 다시 여행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다음 목적지인 인제를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