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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Feb 26. 2023

따뜻하고 여유 넘치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지나치는 일상을 재밌는 작품으로 :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관람기

  올해 처음으로 다녀온, 전시장을 들어가면서부터 나설 때까지 피식피식 웃음을 자아내던 전시를 소개한다. '장 줄리앙'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으나 대표 작품들을 보는 순간 어딘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세계적인 브랜드와 콜라보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 중인 유명 그래픽 아티스트이기 때문!


  그의 작품은 보는 순간 평범한 일상에 담아낸 재치에 감탄하고, 기발한 표현에 웃음 짓게 되었다. 평소 전시를   ' 작품은 무엇을 표현한 걸까,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던 걸까, 나는  작품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고 있나'    없이 생각하고 나름의 의미와 해석을 찾기 위해 애썼다면, 이번 전시는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작가의 따뜻함과 위트를 함께 느꼈다.



  첫 섹션 '100권의 스케치북&드로잉'에서는 작가가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즉흥적인 드로잉과 스케치로 남겼던 여러 순간과 기억들을 모아두었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기차에서 담은 앞 좌석 승객의 모습, 길거리에 앉아있는 사람, 가족과의 일상, 거실이나 풍경 등 특정 공간의 모습 등 그 내용도, 대상도 다양했다.


 

  작은 공책에 슥슥 그리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담아낸 그림들을 보며 작가는 정말 행복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는 일상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간직하고 꺼내볼  있는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스케치북 곳곳 그림과 함께 적힌 깨알 같은 글씨는 그가 단순히 일상의 모습뿐만 아니라  상황과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담고자   같았고, 마치 움직이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일상을 그림으로 기록하겠다며 작은 노트를 샀으나 원하는 모습을 그려낼 능력이 부족해 접어둔 기억을 떠올리며 그의 능력과 꾸준함, 그림 밖에까지 느껴지는 여유로움에 감탄했던 공간. 이번 전시를 위해 직접 방문해 그렸다는 벽면의 그림까지 이곳에 방문했을  줄리앙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르게 했던 섹션이었다.



  다음 '드로잉' 섹션에서 공간을 둘러싼 3개의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작가의 드로잉 초안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정리되지 않은 선으로 입체감 없이 그려진 700점이 넘는 드로잉에 담긴 작가의 아이디어를 보고 있으면, 대체 이러한 끊임없는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색이 입혀진 작품이 전시된 공간으로 이동하면 작가의 아이디어는 한층 생동감을 얻어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하철에서 머리를 대고 잠든 사람들 사이에 끼여있는 사람, 강아지에게 산책을 '당하는' 주인, 나만 따라 하지 못하는 요가 수업의 한 장면 등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담아낸 개성 있는 작품들은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색감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전시장 곳곳에는 장 줄리앙의 작품과 콜라보한 잡지, 그림책, 포스터, 입체 오브젝트로 제작한 굿즈가 가득했고, 하나 같이 개성 넘치면서도 오브젝의 목적과 용도에 너무나 잘 녹아들었다. 장 줄리앙이 ‘모든 종류의 상징, 기호 등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로 누구나 즐겁게 작품을 대할 수 있도록 유머러스하게 작품을 그려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에 아마도 언어, 문화, 세대를 뛰어넘어 이런 다양한 작업이 가능했을 터! 실제로 그의 전시장에서는 보통의 전시장에서와는 달리 작품을 가리키며 엄마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핸드폰을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엄마아빠와 함께 전시를 '즐기는' 아이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그 밖에 영상과 설치작업 등 그의 다양한 시도의 과정과 결과를 담은 작품, 마지막 세션으로 전시된 앞선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작가의 회화 작품까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장 줄리앙의 다채로운 매력을 꾹꾹 눌러 담은 전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그의 회화 작품 속 평화로운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고요함이 마음에 쏙 들었던 공간. 언젠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급하게 쫓기는 기분이 들 때 다시 찾고 싶은 그림이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문득 '나도 장 줄리앙 같은 사람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만 보아도 얼마나 따뜻하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인지 느껴질 만큼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모두가 지나치는 작은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즐거움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사람. 너무 멋있고 부럽다.

  매일 아침 미어터지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출근해 하루종일 회의와 업무로 범벅된 시간을 보내고 지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에 여유와 즐거움을 어디서 찾나 싶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장 줄리앙이 담아낸 일상의 즐거운 순간들은 나 역시 한 번쯤 마주하고 느꼈던 순간들이다. 그저 그 순간을 느끼고 만끽할 여유가 없었을 뿐. 여유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행복해지듯이, 장 줄리앙이라는 사람과 세 시간 여를 함께하고 그 즐거운 기운을 받고 돌아온 듯한 시간. 올 해는 나도 일상에 숨은 여유를 찾고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잡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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