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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정 May 07. 2022

따뜻한 차와 함께 나에게만 집중하기

[special]  맥파이앤타이거 신사티룸 방문기

 '차(tea)'를 좋아한다. 그 종류나 맛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주로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좋고, 씁쓸하거나 시큼하지 않은 맛이 나는 것이 좋다. 대개는 구수하거나 향이 오래가는 차를 선호하며, 홍차에 우유를 섞은 밀크티도 좋아한다.


 우연히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이라는 책을 접했다.

"차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차를 마시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었고, 나를 책의 저자가 운영하는 티 룸까지 이끌었다.





 예약을 하고 방문한 티룸. 입구의 흰 천을 지나니 어둑어둑하지만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 나타났다. 자리에 앉으니 조용함 속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 다른 일행들의 조금은 상기된 메뉴를 고르는 목소리까지 그 공간 안에서 들리는 소리와 분위기에 괜스레 긴장한 채 집중하게 되었다.


 웰컴티로 주신 시원한 '운남 백차' 한잔으로 긴장감을 내려놓고 같이 간 동생의 추천으로 고른 나의 차는 '2014 포랑산 보이숙차'.

'비 온 뒤 숲을 거니는듯한 우디함에 묵직한 바디감을 느껴보세요.' 라는 차의 설명을 거듭 읽으며 어떤 향, 어떤 맛일지 떠올려보고 있으니 티 소믈리에 분께서 내 앞에 차를 내리는 다기를 꾸려 오셨고, 천천히 차를 내려주셨다.


왼쪽부터 차를 우리는 '개완', 우려낸 차를 담아두는 '숙우', 차를 따라 마시는 '찻잔'


 뜨거운 물로 개완을 데운 뒤 물을 버리고, 그 안에 마른 찻잎을 넣어 잠시 흔든 다음 맡아보라고 주셨는데, 오, 정말 물기를 잔뜩 머금은 나무 향, 혹은 안개 낀 숲에서 한 움큼 뜯은 듯한 풀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찜질방에서 맡아본 듯한 향도 은근하게 나는 듯한!


 지금까지 차를 마실 때에는 한 컵 가득 받은 뜨거운 물에 냅다 티백을 담그기만 했는데, 차를 마시기 전 따뜻한 습기를 머금은 찻잎의 향을 맡아보니 차가 가진 향을 더 깊이,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듯했다. 신기한 건, 우려낸 차를 마시면 찻잎의 향만 맡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다. 향은 한 층 부드러워지고, 구수함이 올라와 따뜻하게 내 몸을 덥혀주는 기분.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아쉽다.


  곧이어 나온 차와 어울리는 정갈한 다섯 가지의 계절의 플레이트와 함께 차를 마실 때 즈음에는 처음의 긴장은 어디 가고 일행과 차의 향과 맛, 분위기를 나누며 이 공간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마신 '보이숙차'는 찻잎을 쌓아두고 온도와 습도를 높여 미생물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발효시킨 차로, 보이차 중에서도 발효도가 높아 묵직하고 포근한 느낌이 있다고 하니 내가 차를 마시면서 느꼈던 편안함도 여기서 오는 것 같았다. 겨울에, 혹은 비 오는 날 또다시 생각날 것 같은 차라고 해야 하나! 추운 걸 그렇게도 싫어하는 나인데도, 차를 마시면서는 '겨울이었다면 더 좋았겠다...' 생각했을 만큼 어느새 이 공간에 푹 빠져들었다.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차를 마시는 시간을 '하루의 속도를 나에게 맞추는 영점 조절의 시간', '공백을 만드는 시간' 으로 표현했는데, 너무나도 와닿았던 표현이었다.

평소 출근하자마자 차를 마실 때가 많은데, 나에게 잠이 덜 깬 채 사람들 틈에 끼여 정신없이 도착한 회사에서 한 숨 돌리며 마시는 따뜻한 차는, 끌려오듯이 혹은 떠밀리듯이 시작한 아침을 어떻게든 잘 버텨 보겠다는 나의 아침으로 가져오는 중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차를 준비하고 내리고 우리고 마시는 모든 과정이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했다.' 라는 말처럼 차를 마시는 시간에는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나의 모든 감각을 충분히 느끼고 집중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마른 찻잎부터 젖은 찻잎까지 그 향을 깊이 들이마시고, 충분히 우러난 차의 맛을 보고, 따뜻하게 온 몸으로 퍼지는 온기를 느끼다 보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들이 잠시 끊어지고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하게 되는 기분이었다.


 갈수록 화려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점점 피하게 되던 조금은 지쳐 있던 나에게 티룸에서의 90분의 시간은 그동안의 소진되었던 에너지를 충전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차를 마실 때처럼 모든 순간 나에게 조금 더 집중하면서 지내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티룸을 나섰다. 다음에는 꼭 퇴근길에 방문해서 직접 내려주시는 잭살 밀크티를 마셔봐야지.


차를 마시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찻자리의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려오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날의  마음은 어떤 상태인지 기억해두세요.
나를 돌보는 방법이 되어줄 거예요.
- '우리가 매일 차를 마신다면'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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