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나의 장점을 말하거나 쓰는 경우가 있다면 '낙천적,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라고 작성하던 때가 있었다. 나는 내가 밝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저 밝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것을 동경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따금 갑자기 밀려오는 우울을 어쩌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고 그럴 때면 내 우울의 끝이 짧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런대로 잘 넘기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우울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이전 직장에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료가 내게 '우리는 다 좀 기본적으로 우울이 있는 사람이라...'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내가 그런가? 아닌데 나 밝은 사람인데?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자꾸 그 말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이내 나의 기저에 우울이 깔려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이따금 찾아오는 그 우울이 보통의 사람들에겐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내게 또 우울이 찾아와도 별스럽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받아들이니 오히려 조금은 편해지기도했다.
얼마 전 별안간 밀려오는 우울을 어쩌지 못한 채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믿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가만히 앉아 뜨개를 하기도 하고 책을 몇 장 들추기도 하다가 그래도 계속되는 우울감에 노트북을 켜 내 블로그에 무의미한 배설을 했다.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블로그에 불특정 다수를 향해 떠들어대니 우울이 씻겨내려 것 같으니 나에게 우울은 기록성(?)이라고 해야 할까. 대부분 이유 없는 우울은 없지만 이유를 가타부타 늘어놓기는 늘 싫다. 우울의 이유를 나열하다 보면 어쩌지 더 우울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우울감이 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나의 우울은 짧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했지만 한 번씩 이렇게 세게 올 때면 이 빈도수가 잦아질까 지레 겁이 나기도 한다. 우울할 때마다 블로그를 찾고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배설하듯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다. 그러고 나면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찾은 내 스스로의 정화법인듯하다. 나에게 정말로 우울은 기록성인가 보다.
어디선가 우울 말고 우웅이라고 하라는 짤을 본 게 기억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에게 '우울 말고 우웅해!'라고 한다면 장난하나 싶어 이마빡을 한 대 딱 때리고 싶겠지만 혼자 생각하며 스스로를 환기시키기엔 썩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탓을 찾자면 한도 끝도 없이 또 땅굴을 파고파고 파고 들어가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으니 그만 우울 말고 우웅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