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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Oct 29. 2022

열아홉번째 레터 : 마음의 크기는 무한이라서

2022-10-16 발송 레터 


친구를 카페에서 만나서 퇴사 소식을 들었다. 친구가 퇴사하기까지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문제였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람은 왜 직장 동료를 그렇게까지 대해야 했을까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가 자신이 퇴사하기로 한 이후에도 두 명이 또 연달아 퇴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장 동료들이 그렇게 떠나면 남아 있는 그분한테도 손해일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일의 능력과 인성은 별개의 것 같지만 사실 연결되어있는 것 같다. SNS에서 이런 말을 봤다. '성격은 싸가지 없는데 직장에서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 말이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 날카로운 말로 일터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고, 스트레스를 줘서 일에 오롯이 집중 못 하게 하고, 숙련된 사람을 떠나게 하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일하고 있는 학원에서 다른 동료 선생님들과 나의 관계를 떠올려 봤다. 카피바라 선생님은 학원에 1시간 30분 걸려서 오신다. 그러다 보니 나와 함께 야간반을 맡게 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사정을 알기에 더 많은 학생이 있는 야간반을 내가 자진해서 맡았다. 선생님이 막차를 놓치시면 안 되니 내가 남아서 야간반 뒷정리나 잔업을 했다. 나는 카피바라 선생님보다 체력이 좋았고, 집도 더 가까우니까 그게 굳이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카피바라 선생님께서도 내가 곤란해하는 상황이 생길 때 자진해서 도와주셨다. 높은 레벨의 친구가 독서 퀴즈 재시험이 나왔는데 내가 아직 그 책을 읽지 못했을 때였다.(*재시험은 선생님이 학생을 도와줘야 한다) 그때 당시 나는 일한 시간이 짧았기에, 높은 레벨의 두꺼운 책은 아직 다 읽을 수 없었다. 동료 선생님께서 그 시험의 문제와 답지를 미리 나에게 공유해주셨다. 그건 정말 여기서 가장 오래 일하셨던 선생님만이 주실 수 있는 도움이었다.


집이 상대적으로 가까운 내가 카피바라 선생님의 야간반 업무를 도와드리고, 나보다 오래 일하셔서 책을 많이 읽으신 선생님이 나에게 독서 퀴즈에 대한 도움을 주셨다. 그 경험을 통해 SNS에서 말했듯이 왜 독불장군인 사람이 애초에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건지 깨달았다.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모든 방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언젠가 연약해지는 순간이 오고,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온다. 그런데 상대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 도움을 쉬이 누가 주고 싶어 할까.


친구는 자신을 퇴사하게 만든 직장 동료가 행동의 값을 치르면 좋겠다고 말했다. 타인에 대해 잘 말을 얹는 편이 아닌 친구임을 알기에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었다. 친구와 헤어지기 전, 친구에게 확신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못된 사람 분명 앞으로 잘 안될 거야. 잘 될 수가 없어. 왜냐하면 누구나 힘든 시기를 갑작스럽게 마주칠 때가 있잖아? 아무리 강한 사람도 혼자서는 힘든 상황을 빠져나오기 힘들어. 사람이 힘든 시기를 맞이할 때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 다정한 사람들이 있어야 빠져나올 수 있더라고. 그런데 그렇게 못된 사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남아 있을 리 없거든."


내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전달받은 마음의 힘으로 난관을 헤쳐 나갔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밤, 벤치에 앉아서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고민이 되는 일이 있어서 친구 앞에서 말을 하다 울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때문에 눈물이 터졌다. 괴로운 심정을 친구에게 한참 털어놓다가, 친구의 표정을 보고 나는 잠시 말을 더듬었다.


“네, 네가 왜 울어?”


내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진 것이다. 말없이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해서 꽤 놀랐다. 웃긴 건 친구도 황당해했다는 것이다. 친구도 ‘나 왜 울지?’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찍어냈다. 자신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면서. 자신의 일도 아닌 일로 울어주는 친구 덕에 내 눈물이 그쳤다. 서로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깔깔 웃다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원래라면 친구와 헤어지면서 마음이 무거웠을 텐데, 집에 가는 길에 신기하게도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후련했다.


‘그래. 나한테는 나 대신 울어주는 친구도 있는데. 내가 해결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나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고민의 무게가 덜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돌아가 내가 고민했던 문제를 마주했다. 과하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일이 잘 풀렸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주중에는 고민 때문에 속을 썩이면서도, 주말에는 약속에 나가 신나게 논 사진들을 SNS에 부지런히 올리며 생각했다. 겉으로만 보기엔 내가 얼마나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일까. 당시 내 고민이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은 소수의 가까운 지인들뿐이었다. 나는 내 비극을 가까이 와서 알아주는 지인들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그때 배웠다. 내가 행복하고 기쁜 순간을 공유한 인스타 스토리를 3초 정도 봐주는 건 쉽다. 하지만 어두운 밤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요청한 사람을 위해 밖으로 나와 옆에 있어 줘야 하는 무게는 그와 다르다.


내가 힘들 때 내 힘든 걸 속 편히 말할 사람들이 없다는 상상만 해도 무섭다. 그런데 평소에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으로 행동한 사람에겐 진정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지 않을까. 자신의 희극만 멀리서 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을 상상해봤다. 나의 비극을 기꺼이 들어줄 이가 없을 그 사람은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나는 그게 현실적인 권선징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많이 원하는 “사이다 썰”이나 “참교육 썰”만큼의 권선징악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서 끝내 ‘좋은 사람들’이 승리할 거라고 믿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재난 같은 일이 닥쳐와도 주변의 도움과 지지를 통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좋은 사람들은 연약하고 바보 같아 보일지라도,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강하다고 믿고 있다. 누군가는 내 이런 생각을 보고 순진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엄청나게 능력이 있는 친구이거나, 부자인 친구가 있어도 그들이 친구인 나에게 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의 크기는 무한이라서. 마음은 어떤 한계 없이 자신이 주고자 결정한 만큼 퍼서 줄 수 있다. 그게 가능하려면 그 사람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내 주변 친구들은 다정하고 좋은 사람들이라, 나에게 물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마음들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나에게 엄청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내가 받은 것을 내가 애정하는 이들에게 한계 없이 쏟아주려고 한다. 내가 받았던 그 마음들이 애초에 숫자로 환원되고 그걸로 가치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서. 말 그대로 무한이었어서.


내 친구들 중에 특히나 생활력이 강하고 똑순이인 쁘이와 지로를 만난 날이었다. 쁘이와 지로는 나에게 해피레터를 잘 읽고 있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쁘이는 해피레터를 읽다 보면 가끔 내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어떤 걱정이 들어?”

“해윤이 이렇게 맑고 순진해서 사기당할까봐…….”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안 터질 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내가 걱정된다며 함께 웃었다. 쁘이는 평소 똑 부러지는 지로를 가리키며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해윤아, 네가 갑자기 큰돈을 벌 일이 생겼다. 막 큰돈이 들어올 것 같다! 그럴 때 지로한테 먼저 검사를 받아. 그러면 괜찮을 거야.”


농담처럼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은 내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곤란한 일에 처할까 봐 걱정해주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도 내가 어리버리해서 걱정되지만, 이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내 악재를 미리 막아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지로는 내 해피 레터를 읽고 이렇게 말해줬다.


“나는 네 글을 읽으면서 좀 신기했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사실 나는 네가 처한 상황에 내가 처하면 나는 너와 반대로 행동할 것 같은 일도 있었어.”


그 말을 듣고 ‘내 가치관이 신기하다고 느낄 수도 있구나’ 새삼 생각했다. 내 행동이 신기하다고 느끼면서도, 지로는 시즌1부터 지금까지 내 모든 해피레터를 다 읽어주었다. 지로는 언제나 100%의 메일 열람 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나의 가치관을 듣고 싶어서 시간을 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귀한 일인지 안다.


전의 나는 뭐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를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을 답답해하고, 경멸하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상처받았을 때는 이럴 때였다. 나는 꽃과 케이크를 줬는데 칼로 보답하는 악의를 마주칠 때였다. 처음에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나한테 케이크를 주고 꽃을 주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지,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지? 나는 설령 그 사람이 별로라고 해도, 나에게 주는 그 마음 자체는 정말 고마울 것 같은데.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 내가 꽃을 주면 꽃을 돌려받고 내가 케이크를 주면 케이크를 돌려받는 그런 삶을 산 거였다. 그동안 내가 상처받을 어떤 걱정도 없이 누군가를 맘껏 사랑하고 애정 표현할 수 있었던 건, 그걸 받아주는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가능한 거였다. 하지만 세상은 소중한 마음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마음을 짓밟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했다. 

꽃을 건넸는데도 보답으로 칼을 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지하자 내 주변 지인들이 더없이 귀하게 느껴졌다. 내 지인들은 비유하자면,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발로 차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 작은 눈사람을 아껴줄 줄 아는 사람들이랄까. 그런 이들이라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다. 내가 마음을 건네면, 그것과 같은 마음을 아니 가끔은 더 이상으로 큰마음의 크기를 돌려받곤 했으니까.


이 친구들이 내 곁에 있어 줄 거라서, 혹시나 내가 어떤 구덩이에 빠지게 되더라도 나는 망가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서 나는 내가 돌아와야 할 곳은 안다. 내 지인들뿐 아니라 해피 레터 구독자님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줄 것을 안다. 그래서 해피 레터를 통해 감사 인사를 건네고 싶다. 누군가에게 분명 무한한 마음을 전해줄 당신께, 감사하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그 마음을 받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고.


카피바라 선생님과 야간반을 마치고 함께 퇴근하는 길이었다. 서로 이 학원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공식 구인 글을 보고 지원한 나와 달리, 카피바라 선생님은 이력서를 보신 원장님께 직접 연락이 온 케이스였다. 카피바라 선생님은 나처럼 당연히 여기에 지원해서 오셨을 거라 생각해서 놀랐다. 그때 당시 카피바라 선생님은 학원 업무의 양 때문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자의로 여기로 온 게 아닌 카피바라 선생님께 측은한 눈빛을 보내게 되었다. 내 눈빛의 속뜻을 알아차리셨는지 카피바라 쌤이 이렇게 말해줬다.


“그래도 여기서 해윤쌤을 만났으니까 괜찮아요”


그 말을 듣고 충격 어린 감동을 받았다. 학원 일에 지치셨던 카피바라 선생님이셨는데. 나를 만났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씀해주시다니. 힘든 일터가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에 행운인 장소로 바뀔 수가 있구나. 마음은,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이제 어떤 자리에 가도 '해윤이 너를 만나서 정말 행운이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행동하려고 한다. 그런 행운은 애초에 내가 먼저 받았기에 줄 수 있는 거니까.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무한한 마음으로 차곡차곡 쌓아 만들어준 모습인 걸 알아서. 그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지도록 하고 싶어서.





Q. 

무한한 마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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