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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윤의 해피레터 Oct 29. 2022

스무 번째 레터 : 사람마다 마음의  눈은 다르니까요

2022-10-23 발송 레터 


우리 반에 늘 선생님을 위하는 말을 해주는 햇살이가 있다. 그 아이의 말을 들으면 햇살이가 평소에 얼마나 속이 깊고 남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느 날 햇살이가 읽어야 하는 책 제목이 <내 눈에 콩깍지>였다. <내 눈에 콩깍지>는 주인공 남자아이가 반의 여자아이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한 남자아이가 사랑에 빠지며 설레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는 여러 감정을 겪게 되는 귀여운 이야기였다.


나는 햇살이에게 책 <내 눈에 콩깍지>를 간단히 소개해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햇살이는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


그러자 날아오는 대답.


"최근에 고백했다가 차였는데요.."


나와 햇살이는 잠시 숙연해졌지만, 그것도 잠시뿐 눈이 마주치고는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햇살이는 자신이 고백했다가 차인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까지 거리낌 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카톡 내용을 보니 '친구로 지내자'는 답장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대화가 없었다. 그걸 보고 내가 차인 것도 아닌데 괜히 내가 서운해졌다. 아니 우리 햇살이가 뭐가 어때서!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사려 깊은 햇살인데, 이런 아이가 흔하지 않은데! 그래서 나는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이 친구가 보는 눈이 없었네~ 우리 햇살이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햇살이가 내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보는 눈 있는데요?"


늘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햇살인데,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해서 내심 놀랐다. 햇살이가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표정에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마다 마음의 눈은 다른 거잖아요."


그 말을 듣고 잠시 놀라서 멍하니 서 있었다. '선생님인 내가 오히려 햇살이에게 배우는구나'하고 가장 강렬히 느낀 순간이 아닐까 싶다. 햇살이의 말을 곱씹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치... 사람마다 마음의 눈은 다르지."


그날 집에 가면서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안 좋게 끊어졌던 사람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절연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착한 친구들로부터 한 번씩은 듣는 말이 있었다. '해윤이랑 끊기다니 그 사람이 손해지!'하고. 그러면 나도 그 애정 어린 위로에 웃으면서 '그럼, 그 사람이 복을 찼지!'라고 뻔뻔스럽게 답하곤 했다.


하지만 사실은 나도 안다. 인간관계에서 나 하나 없어져도 다들 알아서 잘살고 있을 것이라는 걸.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내가 보지 못한 그 사람의 좋은 면모를 누군가가 발견해주고, 내가 줄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받으며 잘 지낼 것이다. 햇살이의 말대로 마음의 눈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런데 나는 가끔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수업을 진행하는데 고학년 햇살이가 낮은 레벨의 책을 읽고 있었다. 내 욕심으로는 고학년 햇살이가 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읽어서 레벨 업을 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날따라 햇살이가 책을 읽기를 싫어했다. 과학책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봤을 때는 햇살이 나이라면 거뜬하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얇은 책이었다. 그래서 내가 햇살이를 어르고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걱정마 햇살아! 하나도 안 어려워. 진짜 하나도 안 어려운 책이야."


그러자 햇살이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한테는 이 책이 쉬울 수 있는데요. 저한테는 어려워요."


그 말을 듣자 할 말이 없어져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너한테는’ 어려운 게 문제인 건데. 내 입장에서는 안 어렵다고 하면서 억지로 읽히려 강요하고 있었구나.


지금은 우리 학원을 그만뒀지만 내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한 햇살이가 있다. 중학생 햇살이는 우리 학원에 다니기 싫어해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햇살이에게 아무리 전화하고 문자를 해도 오지 않았다. 그걸 아시면서도 어머님께서 매달 꼬박꼬박 결제해주시니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햇살이는 학교 수업 때도 뒤에 앉아 엎드려 핸드폰을 한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도 햇살이를 포기해 잘 제지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중학생 햇살이가 더더욱 마음에 쓰였다.


오랜만에 햇살이가 온 날, 나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햇살이를 위해 책을 고심해서 골랐다. 내가 고른 책은 <꽃할머니>였다. 역사적 메시지도 전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햇살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해주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꽃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꽃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화책. 꽃할머니가 정신을 놓아버리셨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꽃할머니를 정성껏 돌봐주신 이웃 주민이 있었다. 잃어버린 언니가 생각난다며 극진히 꽃할머니를 보살펴준 이웃 동생 덕에, 꽃할머니가 정신을 되찾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햇살이에게 위안부의 역사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생존자들의 증언, 그리고 우리가 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를 수업하며 짚어주었다. 그리고 수업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햇살이에게 내가 그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웃 주민이 꽃할머니를 정성과 사랑으로 치유해주는 장면을 펼쳐놓고 햇살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 재난이 찾아올지라도, 다른 한 사람이라도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고. 그리고 수업을 완전히 마무리할 때쯤, 교실을 나가려는 햇살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햇살아 그거 알아? 나는 내 학생은 절대 포기 안 해.“


그런 뒤 학원 문밖까지 햇살이를 따라 나가 배웅하면서 ‘햇살아 좋은 책 뽑아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다음에도 꼭꼭 와야 한다~!’ 그렇게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수업을 한 뒤 몇 번은 햇살이가 학원에 나왔다. 나도 햇살이의 수업을 준비하며 책을 고를 때는, 이 책을 통해서는 햇살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더욱 신중히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햇살이는 어찌어찌 학원에 나와 의자에는 잘 앉았어도 조는 일이 많았다.


내가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을 열변을 토하던 날이 있었다. 한참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다가 옆을 돌아보니 햇살이가 졸고 있었다. 그걸 보고 약간은 민망해졌다.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이 메시지를 햇살이가 알았으면 해서 열심히 말을 해도, 햇살이에게는 그게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내가 햇살이에게 물었다.


"햇살아 뭘 하고 오길래 여기서 이렇게 졸아?"


그날그날에 따라 햇살이의 대답이 달라졌다. 오늘은 태권도를 열심히 하고 와서. 어떤 날은 헬스를 하고 와서. 언제는 농구 시합을 하고 오느라. 그걸 듣고 햇살이는 운동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그때 알게 되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햇살이에게는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서 책에 집중해야 하는 게 고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드문드문 오던 햇살이는 다시 학원에 아예 안 오기 시작했다. 나는 발길을 끊은 햇살이에게 열심히 연락했다.

집요한 나의 연락.. 이렇게 보니 좀 무섭다^ㅂ^;


햇살이가 날 차단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답장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연락해도 햇살이는 학원에 안 오는데, 어머님은 여전히 학원비를 매달 꼬박꼬박 결제하셨다. 그 사이에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동파인 햇살이에게는 여기에 오는 게 시간 낭비일지도 몰라. 어머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한 생각이 슬며시 마음에 떠오르면서 망설이게 되는 거였다.


'하지만 햇살이한테 나는 널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고민할 때 우연히 한 웹툰을 보게 되었다. 네이버 금요웹툰 <도무지, 그 애는>이라는 웹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도무지가 혁이를 도와주고픈 마음에 조언을 해주는데, 기분이 상한 혁이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 대화를 듣고 있던 사장 언니가 도무지 앞에 앉아서 이런 충고를 해준다.



이 장면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햇살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꼭 책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내가 모르는 햇살이만의 세상에서, 햇살이도 착실하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장하고 있을 텐데.


내가 햇살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햇살이는 농구를 통해 팀워크로 배울 것이고, 내가 알려주고 싶었던 자신을 찾아가는 법을 햇살이는 하고 싶은 태권도를 하며 익힐 것이고, 내가 가르쳐 주고 싶었던 끈기와 노력으로 성취하는 기쁨을 햇살이는 헬스를 통해 이미 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든 후부터 나는 햇살이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멈추고 원장님께 상의를 드렸다.


사람을 바꾸고 싶어 하는 건 욕심과 오만이라는 것, 나는 그 욕심을 아빠께 그동안 참 많이도 부렸다. 해피레터를 연재하면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해피레터 메일 발송을 끝낸 어느 날, 그날따라 나는 내가 스스로 글을 잘 쓴 것 같아 뿌듯한 기분에 취해있었다. 흐뭇한 기분을 안고서 소파에 앉아있다가 옆에 있던 아빠께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빠는 내가 해피레터를 연재하시는 건 아시지만, 내 글을 찾아 읽어보지는 않으셨다. 나는 다짜고짜 아빠께 들어보라며 내가 나름 잘 썼다고 생각하는 대목을 읽어드렸다. 그 대목을 다 들으시고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해윤아, 네 글에는 철학적 사유가 부족하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내용만 담긴 일기는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깊이 있는 메시지가 들어 있어야지.”


그 말을 어렸을 때 들었으면, 속상해하거나 아빠께 화를 냈을 것이다. ‘좀 칭찬해주면 어디가 덧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그치, 이렇게 반응하셔야 우리 아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약 아빠께서 칭찬을 해주셨으면 그건 그거대로 놀랄 일이었을 거다. 우리 아빠는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이성적인 충고가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감정적인 공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 어릴 때는 아빠한테 서운한 티를 많이 냈다. 힘든 일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이성적인 해결 방법만 늘어놓는 아빠를 ‘양철 로봇’이라고 부르며 화를 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아빠를 차츰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자식을 낳아서 그 아이가 나에게 고민 상담을 했는데, 나한테 ‘엄마는 너무 감정적이야. 공감은 그만하고 도움이 되는 해결책 좀 말해달란 말이야!’라고 말하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의 고민을 한마디씩 들을 때마다 ‘아이고 힘들었겠다’ ‘많이 속상했겠다’ 추임새처럼 공감의 표현을 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요구할지라도, 나는 나를 바꾸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할’ 것이다.


해피레터의 일부를 읽어드린 이후로 아빠는 나에게 철학적 메시지가 있는 글들을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이렇게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딸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싶으셨구나’ 생각했다. 계속 잔소리를 하시는 아빠께 어떤 날엔 짜증을 내기도 했는데, 이 톡을 받은 날은 피식 웃고 말았다.


이 톡을 본 순간 ‘이게 양철 로봇 아빠만의 사랑 방법이겠구나’ 생각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칭찬의 방식은 아니지만, 딸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랑이 아닐 리 없다. 이런 아빠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려는 욕심을 차츰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마음의 눈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하면서 말이다.


나한테는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들이 있다. 나이 터울도 많은데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셔서 어릴 때부터 내가 많이 돌봐야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언니가 아니라 엄마의 마음으로 동생들을 대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내가 봤을 때 비합리적인 목표와 방법으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땐 더 현명하고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니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래서 동생한테 심한 말을 해버렸다. 그 말을 듣고서도 동생은 차분하게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난 일단 이제 더 이상 애기가 아니야. 그리고 사람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른 거야. 언니의 기준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을 보며,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빠에게 속상해하고 화를 내던 어릴 때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동생인 리리에게 내가 아빠한테 받았던 똑같은 상처를 준 것을 깨달았다. 리리에게 사과하며 이렇게 말했다.


“리리야, 일곱 살 어린 네가 나보다 더 성숙하다. 나한테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 다른 거라고 알려줘서 고마워.”


<해윤의 해피레터>는 내가 무엇을 하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에서 쓰기 시작한 레터였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 생각을 함께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내 생각과 고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메일 발송을 시작했다.


마음의 눈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들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 다르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아서 잘 찾아갈 거라고 믿는다. 나의 레터의 가치관과 방법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레터는 영영 메일함에서 열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도 전혀 와닿지 않는 지루한 글자들의 연속으로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조금은 행복해졌다면, 누군가는 내 글을 읽고 공감했다면 그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마음의 눈들 사이에서 우리가 서로를 바라봤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다채로운 마음의 눈들이 있는 세상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나한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더 많은 타인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눈들을 늘려가고 싶다. 욕심과 오만함은 접어두고.


문자에 답장을 해주지 않던 햇살이지만 가끔 수업 전에 전화를 해주기도 했다. 수업에는 여전히 오지는 않았지만, 전화로 자신이 왜 못 올 수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친구들과 노느라, 축구 시합이 있는 날이라서, 태권도에서 대련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근육통 때문에... 미통보로 결석을 일삼던 햇살이었는데, 이렇게 전화라도 미리 해주니 고마웠다.


햇살이가 학원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한 통화가 기억에 남는다. 오랫동안 또 연락도 없이 결석을 하다가, 오랜만에 햇살이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결석 사유를 말하는 전화였다.


“농구 시합이 있어서 학원 못 갈 것 같아요.”


햇살이 주변이 시끌벅적하고, 햇살이의 목소리가 약간은 들떠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독서 수업 시간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 햇살이었는데. 이 농구 시합이 햇살이에게 중요하겠지. 나는 일부러 씩씩하고 힘차게 말했다.


“농구 시합? 그러면 가야지. 거기서 무조건 이기고 와야지. 햇살아 너 해윤 쌤 제자인데 무조건 이기고 와야 한다! 누구 제자인데!”


햇살이가 약간은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비록 나는 햇살이가 즐길 수 있는 수업의 선생님이 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응원이라도 전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뻤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통화한 뒤로는, 햇살이가 학원을 끊게 되어 지금까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햇살이를 떠올릴 때 수업 시간에 무기력하게 핸드폰을 한다는 햇살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는다. 신나게 농구장을 누비며 승리를 자신의 팀으로 가져올 햇살이를 상상한다.


그 아이만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바란다.





Q.

당신만의 행복해지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제가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 )






<글에는 빠졌지만 꼭 넣고 싶은 비하인드>


자신은 비록 차였지만, 사람마다 마음의 눈은 다르다고 의젓하게 말해준 햇살이가 뒤이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애인 있으세요?"


그 말을 듣고 나 역시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그 당시 헤어진지 몇 달 안 되었던 시점) 나도 햇살이에게 동병상련이라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ㅎ... 아니 햇살아 나도 최근에 헤어졌어."


그러자 그렇게 성숙한 모습을 보이던 햇살이가 갑자기 주먹으로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그러고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해..햇살아 방금 사람마다 마음의 눈은 다른 거라고 하지 않았니?'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중이었다. 햇살이가 그 다음으로 해준 말에 나는 허리가 넘어가도록 웃어댔다. 


"선생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어른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내가 알던 모습의 햇살이로 돌아와 있었다.  올해 겨울에 있었던 일인데 나는 이 날을 떠올리면 지금까지도 웃는다.*^^*





<시즌2 종료 인삿말>


안녕하세요. 소중한 독자님들! :D

20편 레터로 <해윤의 해피레터> 시즌2가 종료 되었습니다.*^^*(와아~ 짝짝짝)

시즌2의 주제는 '타인'과 '인간 관계'라고 시즌1 종료 특별편에서 예고드린 적 있었는데요. 


시즌 2는 (타인에게)

'오지랖은 어떻게 부려야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11편 : 오지랖에 대하여)

'함께 성장해야 하고' (12편 : 오후 3시 30분 반 아이들)

'지금 나와 함께해주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13편 : 만날 인연은 만난다)

'정확한 언어로 소통해야 하고' (14편 : 난 몰랐어, 언어가 이리 다채로운지)

'영원할 순간에 함께 하고 싶고' (15편 : 영원할 순간을 만들어야 할 이유)

'받은 사랑을 현재에서 나눠야 하며' (16편 : 받은 사랑을 내가 돌려주는 방식)

'다정한 말을 아끼지 않고' (17편 : 다정한 말들과 복닥복닥 모여있자)

'나와 다른 상황의 이와 연대하고 허용해주고' (18편 : 햇살이들에게 미안해질 때)

'마음의 크기는 무한이라는 걸 믿기' (19편 : 마음의 크기는 무한이라서)의 과정을 거쳐

'사람마다 마음의 눈은 다르니까요' (20편 레터)라고 독자님들께 답을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제 이야기들을 귀한 시간 내주셔서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잘 쉬고 시즌 3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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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윤의 해피레터는 매주 일요일 밤 9시에 이메일로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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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3 시작 날짜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하겠습니다. 인스타에도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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