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느낀 피로감과 깊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 결국 애정을 듬뿍 담아 보내 준 편지 잘 읽었어. ^^ 우리의 다름에 나는 서운해하는 반면, 넌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고 생각했는데초조하고 어려웠던 시간을 보냈다니 조금 놀랐어. 사실은 너와 나의 다름에 대해서, 난 잘 인지하지 못했어. 가끔 네가 다름을 암시하거나 선을 그을 때 이게 다른 건가? 무엇이 다르지? 그런 생각을 하다 말았지. 그래 하다 말았어. 뭔가 다른 건가 보다 했어. ^^ 아이코 배야. 나는 의외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거든.
언제였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냐는 질문이었나? 나는 친구를 만나거나 작은 스트레스는 소비를 통해 푼다고 했는데 너는 잠을 자는 편이고 소비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어. 잠깐 머쓱했는데 소비만이 나의 해결책은 아니었기에 괜찮았어.
p12. 돈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쓴다는 거다. 그건 남에게나 나에게나 마찬가지다.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상투적 표현은 싫지만, 돈지랄은 '가난한 내 기분을 돌보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내 몸뚱이의 쾌적함과 내 마음의 충족감. 이 두 가지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내가 나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영영 모를 수도 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신예희
나는 이 책을 보고 정말 깔깔 웃었거든? 진짜 최고라고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이 있는지 막 물어보고 다녔지. 같이 웃고 싶어서 말이야. 넌 임팩트가 없는 책이라고 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셀러를 넌 하나도 모르니 이 책이 임팩트가 없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같은 책만 좋아하고 그 이외의 것은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사이라면 금방 싫증이 났을지도. 그럼에도 함께 깔깔 댈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아쉬워. 소비에 대한 진중한 문장을 찾아냈음에도 '몸뚱이의 쾌적함'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무장해제, 호탕하게 웃게 되는 이 흐름이 나는 너무 재밌거든! 하지만 그 뒤에 얼마나 귀한 얘기가 나오니~ 몸뚱이의 쾌적함과 마음의 충족감은 내가 나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 말이야. 소비가 그냥 단지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니까? 나와 깊은 대화의 결과라고.^^
이건 어때?
아마 이 책의 이야기라면 너도 공감할 거야. 신기율 작가님의 『운을 만드는 집 』에 '정서적 화장실'이라고 나와. 알지? 슬픔과 분노를 해소할 나만의 공간을 만들라는 이야기였는데 이어서 그 기운의 유통기한을 늘리고 싶다면 공간 에너지를 충전하라고 하잖아. 나는 이 이야기를 보고, 바로 이거지!라고 외쳤어. 정서적 화장실을 만드는 것은 대단하지 않아도 좋아. 그럴듯한 서재가 아니어도 좋고, 아늑한 소파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야. 대신 이렇게 저렇게 나만의 자리를 마련한 이후엔 반드시 나만의 느낌을 살려야 하지 않겠어? 이후 지겨울 즈음에 공간 에너지 충전은 또 어떻게 하겠니? 뭔가를 더 채워 넣으라는 거잖아. 이런 게 다 소비 아니겠어? 자리를 마련하면서 예쁜 패브릭 스티커로 나만의 영역을 표시하거나 디퓨저를 사서(걸리적거리는 게 싫은 나 같은 사람은 룸 스프레이를) 내가 앉아 있는 공간에 향기로 내 공간이다 뿜 뿜! 경계를 지을 수 있지. 그리고 그 공간에 가만 앉아 혼자 향기를 킁킁대는 거야. 혹시... 햇살이 비추는 공간에 가만있어도 좋은걸? 할 거라면.... 너희 집의 조명 역할을 하는 적당한 햇살은 하늘하늘 시폰 커튼 덕을 톡톡히 보고 있고, 너희 집에 갔을 때 나는 향기를 분명히 맡았다고 말해주겠어. 디퓨저가 있었다고^^ 어쨌든 열심히 돈을 버는 만큼 나를 위한 소비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 꼬박꼬박 저축하고 투자하듯이 나에 대한 저축과 투자를 따박따박하고 싶어. 이건 내가 돈을 벌고 안 벌고의 문제가 아니라 집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 나를 위한 정당한 소비라는 생각.
다만, 소비의 크기에 대해서 또는 그것이 행복과 어떻게 연결되느냐를 논하자면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어. 때문에 나는 어떤 이가 소비를 통해 행복을 찾는다 해도 상황마다 다를 거라는 생각을 해. 소비에만 마음을 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자신만의 플랜 B가 아닐까 하는 생각. 내가 종종 떠올리는 행복한 날들이 있어. 대학시절 공강 시간에 캠퍼스 나무벤치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며 바람을 느끼던 날, 복직을 앞에 두고 다시는 이런 무위의 시간은 없겠지 하며 침대에 가만 누워만 있던 날 말이야. 물론 지금도 그런 순간은 있지. 하지만 매일 누릴 수 없기에 플랜 B를 가동하는 거야. 원하는 벤치에서 오래 나무만 바라볼 수 없으니 나무가 그려진 패브릭 포스터를 산다거나, 회사 가는 길이 즐겁도록 출근 아이템들을 사는 자잘한 기쁨들(소비들) 말이야. 물론 플랜 B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개 예민하고 걱정 많고 불안도가 높은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고. ^^ 그러니 나포함 그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삶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니? 어쩐지 소비에 대한 긴 변명이 된 것 같지만...^^
우리 아이의 10살 인생 책이 있는데 말이야~ 바로 요시타케 신스케의『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제목만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책이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 소비에 마음을 둘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소비로 인한 상처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 아주 작은 소비로 큰 행복을 얻은 사람의 이야기, 소확행과 경제적 효용 등등.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아울러 보려는 시도를 해보아.
내가 생각하는 우아함은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의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지극히 사치스럽고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한없이 궁상맞아 보이는 종류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p12
『우아한 가난의 시대』김지선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려 애쓰는 삶을 살 거야.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과도한 애씀처럼 보이고 때로는 결핍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먼저 그 적극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모두 애쓰고 있다고 믿는 마음이 분명 먼저일 거야. ^^
ps. 네 인생에서 가장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절이라는 요즘, 책을 흥청망청 사는 기쁨 다음으로 즐거운 소비는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