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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밍블 Mar 13. 2022

표현하는 마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내이름은 루시바턴, 일의 기쁨과 슬픔

P의 편지를 일하는 중간에 보았어. 아마 다른 순간에 보았다면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하게 살피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건 이런 의미가 아니고, 아. 이게 또 다르네? 하면서 결코 접해지지 않는 생각의 거리를 조정하기 위해 혼자 애를 썼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내가 많이 지친 순간에, 너무 화가 나는 타이밍에 P의 글을 보자 이상하고 당황스럽게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거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애쓰던 찰나에 갑자기 친구 얼굴을 본 느낌이랄까? 월급이라는 보상이 있으니 나는 그 쓸모만큼 하겠다,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주문을 계속 외던 중에, 그러니까 속상하고 화나는 순간도 적당히 참고 나만의 최선을 투입하고 있는 중에 너는 지금 어때? 네 마음이 어때?라는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던 거야. 우리는 지금 어쩌면 참 쓸모없는 알아감을 하는 중이야. 여태 이런 것 없이도 서로 잘 살아왔는데 굳이 서로 다름을 확인하는 편지를 나눌 이유가 뭐야? 책을 내고자 하는 '기획'도 아니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특별한 시도도 아니잖아. 그저 연결감을 놓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잘 맞는 매체와 도구를 통해 약간의 '노력'을 하며 '기쁨'을 얻는 거잖아.  

    

요즘 나의 즐거움인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다 또 명대사를 발견했어. 물론 이 하나가 아니었지만, 이 편지의 흐름에 맞게 하나만 말하자면 희도와 유림이 오해를 풀며 마음이 말랑해진 유림이 엄마랑 통화하는 장면에서 "마음이 빚을 갚을 수도 있더라고."라고 말해. 사실 그전에 유림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엄마가 핸드폰을 사 오자 화를 내고 엄마는 돈 얘기 말고 마음을 봐주면 안 되는 거냐고 했거든. 나는 이 장면이 너무너무 슬퍼서 일렁일렁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어쩔 줄 몰랐는데 유림은 차갑게 말했지. 마음은 빚을 갚아주지 않는다고. 그런데 마음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희도를 통해 유림이 깨닫는 거야.     


그래. 나는 우리의 편지가, 서로의 마음을 전할 뿐인 이 쓸데없는 편지가, 힘든 어느 날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거야. 그저 월급을 받으니 버티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잊지 않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게 하는 힘 말이야.       


너는 누구에게 가장 단호해? 많은 딸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엄마에게 가장 단호했어. 무뚝뚝하기도 하지만 선긋기를 잘하기도 했고. 엄마는 다른 사람의 노력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는데 나는 그 점이 가장 싫었어. 엄마에겐 모든 것이 당연하니까 내 노력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굳이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지. 물론 내가 누리는 많은 것을 엄마에게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엄마는 그것 또한 당연하게 여겼어. 그래, 자식이 부모를 위해 애쓰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말이라도 따뜻하게, 겉치레라도 오가는 무엇이 엄마는 전혀 없고 모든 것이 너무 당연했어. 내가 동생을 위해 신혼여행을 예약하는 것도, 동생의 종잣돈을 마련해주기 위해 우리가 계약하고 싶었던 좋은 매물을 동생 명의로 먼저 내어주는 것도.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이거라고.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한 건 다른 것이었다. 내가 원한 건 엄마가 내 삶에 대해 물어봐주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말하고 싶었다. 바보같이. 『내 이름은 루시 바턴 』     


엄마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겠지. 너무 고마웠겠지. 그런데 표현하지는 않더라고. 너도 알다시피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나눠주고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 큰 의미를 느끼며 감사하는 사람이야. 더군다나 내 동생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고 기쁜 일이지. 하지만 내가 지금 어떻게 사는 중에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누군가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최소한 그때의 내 마음이 어떤지를 가까운 사람이 물어봐 주기를 바랐던 거야. 내가 베푼 선의의 크기에 대한 궁금증 말고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말이야. 요즘 일하느라 힘든데 너도 쉬고 싶겠다, 너희는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니? 그저 물어봐주기를 바랐던 거지. 엄마는 늘 그렇지 뭐. 나라면 그러지 않을텐데 라는 생각을 끝없이 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단편, 잘살겠습니다의 ‘나’의 대사가 떠올랐어.

    

"나라면 내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는 사적인 인간이라는 거, 최대한 떠올리지 못하게 할 텐데. 매일 오 분씩 지각하지 않을 텐데. 어차피 오 분 동안 일을 더 하거나 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라면 그냥 오분 일찍 일어날 텐데. 나라면 머리를 좀 짧게 자를 텐데. 『일의 기쁨과 슬픔 』 p25     


잘살겠습니다의 ‘나’는 빛나 언니의 모든 것이 못마땅해. 내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빛나언니는 정말 다른 사람인 거지. 나는 이야기의 ‘나’에 완전히 몰입해 빛나 언니가 싫었어. 센스도 눈치도 없으면서 펀드매니저와 결혼해 세상 물정은 계속해서 모를 빛나 언니가 점점 얄밉기까지 했지. 그래서 ‘나’가 빛나 언니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세상’,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 원이 더 비싸니 새우가 더 많은 거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 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 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 바쳐야 한다는 ‘가르침’에 박수를 쳤어. 빛나 언니 정신 차려! 소리치는 마음으로 말이야.      


어쩌면 나는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늘 세상을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지 몰라. 이 답답한 사람들아. 내가 딸이니, 누나이니 망정이지. 언제 세상을 알고 제 몫을 하고 살래? 하고 말이야. 그런데 P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다시 읽은 ‘잘 살겠습니다’는 이전과는 좀 달랐어. 늘 먼저 말하고 행동하는 ‘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늦게 반응하는 빛나 언니의 표현하지 못한 마음, ‘나’에게 닿지 않는 무엇을 희미하게 생각해 보게 되는 거야. 그러자 ‘나’의 시선으로 쓰인 ‘잘 살겠습니다’가 아닌 빛나 언니의 시선으로 쓰인 ‘잘 살겠습니다’를 떠올려보고 싶어 졌어. 내가 알지 못한 수많은 ‘빛나 언니‘들의 표현하지 못한 생각과 마음들 말이야. 마음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유림처럼, 이 편지가 오늘을 의미 있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나의 그날처럼 다른 의미로 펼쳐질 이야기들을 상상해보고 싶어 졌어. 분명 우리가 이 책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네가 빛나 언니를 좋아했던지 싫어했던지가 기억이 안 나네. 다시 한번 얘기해줄 수 있을까? 비 오는 날 편지를 쓰는 기분 참 좋다. 그럼 또 어느 날 반갑게 도착하는 편지를 기다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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