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3,4학년이 되면 친구가 가장 큰 화두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꾸준히 썼는데 가끔 들춰보면 이렇게까지 친구들 얘기밖에 없다고? 놀란다. 이래서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을 때다’라고 말하나보다 싶었다. 걱정이라고는 친구 문제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바꿔 말하면 이 시기엔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란 얘기다. 쟤가 왜 저런 말을 했을까? 왜 내 앞에서 귓속말을 했지?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 연락하는 건 아닐까? 등등 걱정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염려의 크기도 상당해서 매사에 예민해지기 시작하는 시기. 우리 아이들도 그런 때가 왔다. 초등 3,4학년의 여자아이. 어쩌면 가장 힘든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학원을 마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소망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분명 배고파 죽을뻔했다고 했는데 젓가락질도 시원찮다. ”소망아, 왜그래? 무슨 일있었어?“ 아이는 힘없이 고개를 젓는다. ”얼굴이 안좋은데... 뭔가...속상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하니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차에서 얘기할게“ 한다. ”공공장소에서 울면 안되니까...“하면서. 아니, 얼굴이 그렇게 잿빛이 될 정도로 속상한데 공공장소니, 남의 식당이니 챙길 것이 뭐람...얘는 이런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니 속이 터졌다. ”소망아, 너가 뭐 식당 떠나갈 듯 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엄마랑 얘기하는 건데 뭐 어때. 괜찮아“ 하니 역시 친구 문제였다.
가끔 아이들이 좋다는 책을 읽다 어두운 그림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속으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왜 좋아할까? 어두움에 편안함을 느끼나? 혹시 외로운 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하다 이내 그만둔다. 직접 물어봐야지. 『내 이름은 큰 웅덩이 검은하늘 긴 그림자』 라는 책도 그랬다. 제목에 그림자가 들어가고 표지는 어두운 잿빛의 책이었는데 어째서 이 책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이름도 가족도 없는 아이가 달빛 그림자 마을로 찾아가는 노래로 시작된다. 달빛 그림자 마을을 찾는 아이에게 어느 친절한 아저씨는 그곳에 이름을 먹고 사는 괴물이 있으니 가지 말라 한다. 아이는 처음부터 이름과 가족이 없고, 심장이 아파서 달빛 그림자 마을에 가지 않더라도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괴물을 만난다.
”작은 아이야, 너는 참 이상하구나. 내 이름을 물어본 건 네가 처음이야. 나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허둥지둥 도망을 치지. 내 이름에는 관심도 없지. 이름 따위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빼앗아 먹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름이 없어서 줄 수가 없어요. 대신 내가 아저씨 이름을 불러 줄 게요. 괴물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이름을 묻는 괴물은 정말 이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냥 잡아먹어도 될 텐데 굳이 이름을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리 무섭게 몸을 부풀려도 괴물의 품 안이 따뜻하다 하고, 개암보다 아저씨가 더 좋다고 고백하는 아이 앞에서 괴물은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리고 달빛처럼 환한 빛을 가진 작은 씨앗이 되어 아이의 심장과 이름이 되어준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괴물과 아이.
나의 역할을 스스로 찾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부여한 역할대로 살 수밖에 없다. 긴 그림자가 이름을 먹는 괴물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았듯이 말이다. 괴물과 아이는 그런 순간에 만났지만, 이름을 묻고 스스로 서로를 발견한 덕에 존재 자체로 힘이 될 수 있었다. 소망이는 타인에게 도움을 줄 때 기뻐하고 다시 그 행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가진 모든 것을 상대에게 주고도 사라지지 않는, 도리어 더 강렬하게 존재하는 큰 웅덩이 검은 하늘 긴 그림자 이야기는 소망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소망이는 말했다.
”아이는 처음부터 이름도,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없었잖아. 괴물은 이름도 있고 아프지도 않았지만 외롭기는 아이와 똑같았어. 아이는 괴물의 외로움을 발견한 거야. 비슷한 사람끼리는 마음을 알 수 있잖아. 그러니까 친구가 되기 위해 이름을 물었던 거지..“
나는 혼자여도 특별히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외로움을 즐기기도 했다. 국민학생 시절이었던 어린 나이에도 어디서 본 건 있었는지 책 앞장에 작가가 된 듯 외롭지만 괜찮다는 둥, 나는 원래 이런 시간을 즐긴다는 둥 끄적여 둔 말이 많았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혼자 책을 읽거나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는데 소망이는 나와 달랐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했고 동생을 그렇게 챙기고 좋아하면서도 친구와 있으면 동생의 존재를 까맣게 잊을 정도로 친구를 좋아했다.
엄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누군지 알아?
햇살이랑 신주희.
아. 햇살이는 알고 주희는 어떤 친구더라?
나한테 제일 처음 친구하자는 쪽지를 준 애야. 나는 늘 먼저 친구하자 말하는 편인데 쪽지를 받으니 너무 좋았어. 그래서 나는 누가 전학 오면 친구하자는 편지를 써주기 시작했어. 내가 느낀 기쁨을 전해주고 싶어서. 따뜻하면서도 코끝이 시큰했다. 친구를 좋아하니 먼저 손 내미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외로웠기에 용기를 낸 것이었다.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길 기다리는 시간이 외로워서 먼저 손 내미는 것을 선택하는 소망이였다. 게다가 친구와 다툼이 생기거나 누군가 이간질해 사이가 멀어져도 사건의 주동자를 미워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 터진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자신의 앞에서 귓속말을 하고 친한 친구들을 빼앗아 가는 기분이 들어 속상했단다. ”소망아, 그냥 무시해. 걔는 늘 그래왔잖아. 네가 그런 애가 아니란 건 친구들이 다 알고.“ ”무시할 수가 없어“ ”친구들은 뭐래? 걔가 정말 너 욕을 한대?“ ”그런 걸 물어보면 친구들도 곤란하잖아. 내가 또 그 친구들을 이간질하게 되는 걸까봐 물어볼 수가 없어“
아이들이 친구 문제로 힘들어할 때, 눈물을 보일 때가 가장 힘들다. 왕따가 될까 봐, 학교폭력에 휘말릴까 걱정해서가 아니다. 나 같으면 당장에 내 앞에서 귓속말을 하는 친구에게 따져 물을텐데, 너는 늘 나를 따라하면서 왜 자꾸 내가 하는 모든 것에 딴지를 거냐고 화를 낼텐데, 소망이는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내가 오해하는 거일 수도 있다고. 그냥 내 마음이 그런 건데 엄마한테 말하니까 속이 좀 시원하다고 하고 만다.
그렇게 참아내고 견디는 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해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데 아이들은 늘 나보다 나은 선택을 한다. 참았다가 기다렸다가 화해를 한다. 난 어릴 때 친구를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곤 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민적도 누군가의 손을 잡은 적도 없다.
”소망아, 다음엔 참지 말고 걔한테 가서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냐고 막 따져. 한판 붙으란 말이야. 학교에서 부모님 모시고 오라하면 엄마가 갈거니까. 걱정말고 너 하고싶은대로 해“ 라고 말하는 이기적인 엄마다. 참는 아이를 보며 이러다 상처가 깊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정말로 혼자가 되면 어떻게 하나 믿음이 없는 엄마이기도 하다.
”비슷한 사람끼리는 마음을 알 수 있잖아. 그러니까 친구가 되기 위해 이름을 물었던 거지..“
내 역할은 아이들이 이렇게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소망이의 말을 떠올린다. 강하고 잘난 사람만이 리더가 되는 게 아니라 두렵기 때문에, 약한 사람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너도 나처럼 힘들었구나.. 이 한마디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음을 알기에 앞으로 소망이가 더 많은 사람들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으로, 부디 상처가 아닌 경험으로 자리잡길 기도할 뿐이다.
새 친구에게 매번 쪽지를 쓰는 아이의 마음이 사실 나는 아직도 짠하다. 가만히 있어도 친구들이 몰리는 그런 아이가 됐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하지만 쪽지 쓰는 아이의 움직임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나는 여태 먼저 친구하자 용기내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원래 무심한 사람인 척 하지 않고 내 쪽지가 구겨져 버려질지라도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학년이 바뀔 때, 새로운 학원에 갈 때, 전학을 갈 때 등,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늘 걱정이 됐다. 사실은 나 역시 발령이 날 때,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될 때,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두렵다. 그럴 때 소망이의 경험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우리 모두 두렵지만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