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FNE May 03. 2022

결실 結實

왜 삶은 지속되는가

 



결실 結實


 죽음은 어제쯤 찾아올까. 언제나 안부를 궁금해하며 지낸다. 죽음은 도처에 있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 각자와 개천의 물고기들, 봄의 시작을 알릴 꽃망울도 죽음을 간직하고 틔울 준비를 한다. 죽음의 공통점은 모두 살아있는 것 안에 담겨있다는 점이다. 마치 살아있는 것들이 세상에 나올 때 신께서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넣어준 듯하다. 세상으로 가는 길에 당이 떨어지면 먹으라고 쥐어준 죽음을 만지작거리고 꺼내보기도 한다. 그러다 때가 되면 그것을 까서 먹는 것 아닐까, 오늘도 그때를 기다린다.

죽음. 지금인가요? 여기서 하는 건가요?


-


올해의 4월은 아침저녁으로 홍제천을 걷고 있다. 최근 10년간 태양빛은 해가 다르게 눈부셔지고 있는 듯하다.  군사의 수가 중요했던 중세의 어느 전쟁에서 공중에서 쏟아지는 화살의 세례를 매일 받고 있는 듯, 시간이 다르게 화력이 증가했던 활과 화살의 전성기처럼 태양은 멀리서 단단한 시위를 당긴다. 하지만 괜찮다. 볕이 쏟아지는 아침저녁의 홍제천은 매우 아름다우니까. 특히 4월 이른 아침의 홍제천은 잘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야생성을 띄고 있다. 개천 곳곳의 흙 둔덕에서 자라난 새로운 풀들과 적당히 비치는 물속의 물고기들, 청둥오리, 학 종류의 다양한 조류들의 서식지이다. 마치 판타지 기반 게임에서 나오는 순수한 자연 풍경의 일부분으로 보일 정도로 인간 연합과 드루이드, 트롤 등이 공존하는 어떠한 장면 같다. 긴 입사각入射角을 가진 빛의 화살은 다양한 생명과 물질들에 몸을 들이받고 그 파장이 되어 두 눈에 도달한다. 빛에 비친 이 세계를 인식하고 측정할 수 있음은 매우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 아침에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며 산책로를 걸었다. 빛이 비추어 얼굴이 따갑다.







언어의 열매가 맺히는 여름이 온다.

 「 cotoba - 4pricøt (아프리콧)」  

1st Full Album


cotoba에서 4pricøt으로,

씨앗 한 알에서 살구 다발로 열리기까지


01


서울이라는 이 섬은, 어항 속에 떠 있었다.


너와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말言에 눈이 멀었다. 우리들을 위한 잔을 부딪힌다. 긴 시간을 마셨고 심장은 축배로 가득 찼다. 봄의 가지와 꽃들이 네가 되며 자라날 때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한 언어의 잎사귀 하나하나에 매달려 시간을 세었다.


나무 아래 죽음을 찾아 솟아오른 검은 우물, 달빛으로 심장을 씻어내고 부는 바람으로 갈증을 채우던 밤. 깊게 숙인 가지들 사이로 본 적 없는 흰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검은 물이 출렁인다. 멈춘 섬이 흔들린다. 우리는 그 섬 위를 날고 있다. 새 위에 앉아 우물 안의 서울을 지켜본다.


이것이 자유!

결코 있어본 적 없는 하지만 손에 쥐고 있던.

꽃과 나뭇잎으로 충분하다.

저녁의 빛과 목소리를 받아들이기엔,


이젠 손 안의 자유와 함께하세요.

작은 살구꽃이 쥐어준 씁쓸한 자유의 열매,

말의 결실 結實.

아프리콧.


아프리콧 케이크






아프리콧이 오기까지


강한 음악적 요소가 말의 언어 안에 있다. - 비트겐슈타인


EP [ 언어의 형태 ] , 싱글 [ Loss ] 2019


cotoba는 언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이는 언어 그 자체이며 에너지를 가진다. 강한 음악적 요소가 말의 언어 안에 있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cotoba의 [ 언어의 형태 ]는 ‘말의 언어’ 형태를 띠지 않았다. ‘구조적 언어’였다.


첫 EP [언어의 형태]로 세상에 등장했다. [구두언어]를 최대한 자제하고, 구조적으로 설계한 악곡이었다. 또한 각각 다른 언어의 형태를 가진 4곡은 외부 세상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였다.


뒤이은 첫 싱글 [Loss]에서 ‘상실’을 주제로 하여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잃어버린 것에 관한 노랫말과 감정적인 화성의 구성이 특징이다. [Loss]는 cotoba의 언어가 안전히 발아하여, 줄기를 세울 준비를 마쳤다.



EP [ 날씨의 이름 ], 싱글 [ 오랑제뜨 ] 2020


cotoba는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에 안착하였다. [ 날씨의 이름 ]에서 정교한 구조의 악곡을 유지하면서도, 뻗어나가려는 직진성을 겸비한 음악의 진(陣)을 구축하였다. cotoba의 언어는 이 앨범에서 보통의 인간의 여름에 대하여 고심하였다. 지옥 같은 여름의 낮 아래에서도 인간은 숨을 쉬며, 또한 살아간다. 각각의 삶의 동기는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견디고 있음’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음악들을 듣는 이들에게 그들의 여름을 지낼 수 있을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들이 이 음반에 담겼다.


이은 싱글 [ 오랑제뜨 ]는 [ 날씨의 이름 ]처럼 보통 인간을 향한 관심과 애정 어린 시선을 이어간다. 영어에는 “삶이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는 말이 있다. 레몬은 영어에서 삶의 고난, 불행을 암시하기도 하는데 이를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들라는 말은 ‘전화위복으로 삼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오랑제뜨 ]는 이 발상을 전환하여, ‘삶이 달콤한 오렌지이자 행운이라면, 이를 더 달콤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를 주제로 하였다. 감정적 멜로디의 보컬과 따스한 질감의 악기 사운드를 담았고, 후반부의 기타 연주는 삶 자체에 뜨겁게 마주하는 이들을 위한 멜로디이다.



EP [ 세상은 곧 끝나니까 ]


cotoba는 보통 인간들의 삶을 넘어서서, 모든 존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전체로 시선을 옮기게 되었다. 인간으로 인해 바짝 다가온 ‘기후위기’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밝지만은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와 울적함이 담겨있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자리를 지키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도 품어본다. 생(生)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그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의 안녕을 기도한다.






02


봄의 유서 - 자유


죽고 싶다고 쓴 페이지를 모아

책으로 엮어내면 언젠간 살고 싶어 질까.

삶의 지면은 하루하루 죽음이 된다. 인두로 눌러쓴 죽음에 대한 욕망,

그것은 반대편을 겨눈 총구의 방아쇠가 된다.

많이 눌러 담으면 더 높이, 더 멀리, 더 넓게 날겠지? 모형비행기의 고무줄을 담으며 누군가 말했다.

이제 날린다! 지휘자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카운트를 세고 3,2,1!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나는,

방아쇠는 화약을 때리고, 빵!


불꽃이 튀기고 탄환은 끝을 알 수 없는 총구 속을 돌고 돈다. 그 시간은 영원하다.

멀리 출구가 보여, 하지만 가까워지진 않을 것 같아, 하는 사이 이미 공중이었다.

그렇게 튀어 오른 수많은 얼굴들이 보인다. 인사를 나누고 싶지만 모두가 그러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바람이 분다. 아직은 차갑다.


(그래 이젠 됐어.)

정말로 된 걸까 이걸로.

알 수 없지만 된 것 같다. 이걸로 괜찮을 것 같다.

빛이 비치어 얼굴이 따갑다.


-


03


키리에


백 년이 되지 않는 삶의 무게를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세상에 떨어진 순간 온전히 나였음을

세상에 눈을 뜬 순간 온전히 혼자임을


Ta Hee

Ta Hee

다 이 - 루었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쓰는 것은 닿고픈 마음들인 것에 대하여

마음들인 것에 대하여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한 프로필 사진 by 김규형 @keembalance / instagram /  다프네, 됸쥬, 민서, 세이 (좌에서 우로)






전언


안녕하세요 cotoba입니다. 저희가  정규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11 트랙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재작업한 기존 EP 타이틀곡들과 인기 싱글트랙, 그리고 신곡들을 함께 실었습니다. 3장의 EP 수록곡과 싱글트랙은 각각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시점으로 재구성하여 수록하였습니다.


cotoba는 단단한 씨앗으로 나타나 싹을 틔웠습니다. 세상의 언어를 배우고 서로 교류하며 줄기를 뻗어 올렸습니다. 감사히도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그로 인해 꽃 피울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발매하는 정규앨범은 세상에서 받은 사랑으로 맺는 열매와 같습니다. 그 열매는 살구 같다고 생각했어요. 새콤달콤하고 화사한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열매이지요. 제목은 [ 4pricøt ]이고, 아프리콧이라 읽습니다.


씨앗인 [ cotoba ]에서 세상과 여러분의 사랑을 받아 살구의 다발들을 수확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 씨앗들은 새로운 cotoba이며 세상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싹이 날 것입니다. 이 살구 씨앗이 여러분들의 삶에 다시 싹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고생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하게 되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2022. 4. 29

cotoba 드림



[Credit]


 


cotoba


Dafne / guitar, producer

DyoN Joo / vocal, guitar

euPhemia / bass

Marker / drum


 


All songs played by cotoba

Masterd by Kang 강승희

at Sonic Korea Seoul Forest


artwork by 이슬 @leesul.art / instagram



작가의 이전글 계산된 자유와 인간의 손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