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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FNE May 05. 2020

Loss

개인적이고 자전적인 감상으로



L 손실.


순간순간 착실히 잃어가는 이 시간을 종종 세어본다. 그 시간을 잃어가면서 인간은 어떤 것을 얻을까.

살다 보면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대학 입학식 날 가족들과 상경하여 기숙사에 짐을 들여놓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모두 고향집으로 떠난 후 혼자 기숙사 방에 누워 보낸 첫날밤의 기억,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다는 감정. 날은 쌀쌀했고 닭장 같은 창이 나있는 기숙사 방에 누워 천장에 빨랫줄을 걸고 바라보았다. 라디에이터 김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든 밤. 어떤 것이 없어졌다고 자각한 기억,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겪어보지 못한 서늘한 외로움. 선선함 그 자체였다. 어떠한 연결점도 없는 곳에서 고독에 올라탄 발은 현생에 닿지 않았다.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떠나왔고 끊임없이 떠나고 싶어 했다.



처음 접한 밴드 음악.


밴드 연주를 실제로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같은 학년 친구들이 밴드부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몇몇 친구들 중에 엑스재팬 노래를 흥얼거리는 친구와 어디선가에서 온 전학생이 주도했다. 엑스재팬 좋아한다는 친구는 중3 때 같은 반이었는데 언젠가 그 당시에는 교실에 있던 큰 TV로 엑스재팬의 라이브를 반에 상영한 적이 있었어서 그걸 보고 그들의 복장이 특이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관악부가 유명해서 그 경력으로 대학도 잘 가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밴드부는 대학 진학을 위한 경력이 되지도 않았다.(사실 밴드부에 정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약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축제 때로, 학교 운동장 옆 큰 체육관 앞에서 그들의 첫 공연을 보았다. 야외에서 엑스재팬의 곡과 다른 여러 것들을 커버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숙하고 불완전하며, 엉망인 상태였다. 곡을 다 외우지 못해서 타브 악보와 가사를 보면서 연주하다가 바람이 크게 불어서 악보들이 전부 날아갔다. 종이들이 꽤 잘 날아가서 재미있어하며 웃었다.



곡을 처음 쓰고 기타를 치게 된.


곡을 작곡한 건 군입대를 하고 나서 기타로 써본 것이 처음이었다. 기본 코드로 이루어진 ‘fisherman’이라는 통기타 곡이었다. 잔잔한 코드에 멜로디를 붙이는 것이 좋았다. 어딘가에 적혀있기는 할 텐데 어떻게 연주하는지는 잊어버렸다. 몇 곡을 더 썼다. ‘빈방’ 그리고 ‘밤의 고속도로’, ‘흔들린다’라는 가사가 있는 곡들이다. 그런 곡들은 이후에 밴드 동아리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서 몇 번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본 적 있다.(대학 때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을 했었다.) 밴드 활동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큰 에너지를 들였지만 추진력과 구체성이 부족했고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그것에서 오는 좌절과 소모감이 컸다. 노래를 부르는 것이 버거워졌다. 입 밖으로 나오는 가사들이 흩어져버리는 것만 같았다. 노래를 하지 않게 되었다.


2012년 정도에 학교 근처의 빈티지 숍 사장님에게 일렉기타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블루스 기반의 플레이를 익혔다. 기본 코드만 칠 줄 알다가 처음으로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기뻤다. 헨드릭스나 클랩튼, 게리 무어, 비비 킹을 처음 들었다. 한동안 블루스를 좋아했다. 하지만 당시는 전역 후 복학하는 3학년이었고, 대학생활 이외의 삶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연주와 음악은 막연히 좋아하는 정도였고 무엇보다 못했다. 잘하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정했으며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반감이 들었다. 삶과 내면의 괴리로 우울감이 심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내면이 불안하고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 어떻게 해야 정신을 유지하고 좋아하는 밴드 음악을 잃어버리지 않을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머릿속의 음악 형태를 구체화하는 것에 몰두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정체성 있는 기타 연주를 하고 싶었다.



음악과 정체성과 Loss.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됸쥬(DyoN Joo) 에게서 싱글 세션 제안을 받았다. ‘그냥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와 ‘풍화’라는 곡이었다. 당시엔 자신감이 부족해 작업을 의뢰한 이유를 알 순 없었지만 의뢰인의 커리어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임했다. 이전의 작업들에선 즉흥적이며 직감적으로 연주하는 비중이 컸다면, 이번에는 의뢰인의 음악적 심상을 깊이 탐구하려 노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연주도 정리가 되었다.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을 선호하는지, 내 연주는 영향받은 음악들과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지와 같은 고루한 고민들의 답을 나름대로 찾았다. 이즈음 toe나 tricot을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라이브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고 공연을 보러 갔다. 이들은 라이브 하면서 비명을 지르거나 엎어지거나 했다. 뒤틀린 탄성 같았다. 그들은 연주하며 매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뻐하는 듯했다. 멋졌다. 어떤 것이 연주 현장에서 폭발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음악과 그들이 보여주려는 것들을 내내 곱씹었다. 더 이상은 보컬을 하지 않았으므로 구체적 음성언어로 내뱉지 않고 의미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다. 인간에 대해 고찰할수록 각자는 분리되어있으며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여기게 되었고, ‘각각의 자아를 이해하려는 것’과 ‘결국은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움’으로 인한 좌절감이 더욱 연주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스쳐온 많은 사람들과 현실에서의 경험들, 그에 대한 개인적 고찰이 Loss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Loss는 로직으로 데모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써둔 시 loss2를 가사로 붙인 곡이다. 시의 전문은 이러하다.


——————


loss2

지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밤을 새버린 새벽엔
포장이 닳아버린 지우개와
잡고 있던 손가락이 뜨겁다
지금까지 나를 구성한 요소들이 무엇이었나
까만 것들이 가득한 흰 종이에 글씨가 없네
지우다 보니 나도 없네
있어도 어떤 모양인지 알 길이 없어

애초에 난 없었나 싶을 정도
여러 인간들이 자신의 부분을 나눠주었다
손가락을 주고 발가락도 주고
눈도 입도 내 것이 아닌 거 같아
코는 누가 준 것 눈썹은 또 누가...

——————


마무리.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나 자신이어서 나 자신밖에 알지 못했고 타인의 마음은 알 수 없었다. loss2의 화자는 언제나 사라지고 싶어 했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존재하고 싶어 했다. 모두가 그렇듯이 20대 중반엔 중요한 결정을 내릴 일이 많았다. 그 과정 중에 많은 것들을 내려두고 왔던 것 같다. 안 밖의 번거로운 것들을 잘라내고 살아남기 위해 이동해왔다. 그럼에도 결핍된 부분들에 자신의 것들을 나눠준 것은 떠난 곳에서 스쳐간 인간들이었다. 곡의 테마가 되는 장면은 어느 가을날에 가족과 외식을 했던 좋은 기억이다. 그 장면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아르페지오와 멜로디를 연주했다. 곡에 담긴 심상은 시 ‘loss2’의 것이다. 각자의 손실을 생각하며 들어주었으면 하고 다시 한번 바란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음악적으로 동료들과 교류하며 최선을 다해 코토바를 꾸려가고 있지만, 사실 가끔 음악을 매우 증오한다.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어찌 음악은 이리도 개인적일까 그리고 인간적일까. 가끔은 어떤 개인들을 부러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있는 생 그 자체로 빛이 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살아남으려 애쓴다. 개인적으론 영원히 살기를 희망한다.



——————

덧붙여서 여러 가지로 함께하고 있는 동료들과 코토바의 음악을 들어주시는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다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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