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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Feb 21. 2022

메타버스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김대식 <메타버스 사피엔스> 서평과 단상

작년에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하는 과학 저술가 수업을 들었습니다. 출판업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재미있는 한탄을 들었습니다. '전공자들은 제 전공만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리학 교수님은 물리 이야기만 쓰고, 생물학 작가는 생물학 이야기만 쓰니 다른 분야의 독자를 끌어오지 못하고, 독자들도 작가에게 예상한 지식만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과학 전공자는 논문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참고 문헌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못해 양심에 어긋납니다. '2008년에 이루어진 연구'를 '21세기 이루어진 연구'라고 뭉뚱그릴지언정, 다채로운 글을 읽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입니다.



그에 비하면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의 김대식 교수는 당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용기있는(?) 분입니다. 뇌과학자라고 하더라도 '메타버스'를 논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메타버스 사피엔스>는 이런 저자가 메타버스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 뇌의 원리와 기계의 계산 방식을 쉽게 풀어쓴 책입니다. 

출처: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홈페이지


문제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는 세상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점에 있습니다. 현재 VR 기술로는 완벽한 가상 현실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저자도 말하지만, 지금 '메타버스'라고 나온 다양한 플랫폼은 미래의 가상 현실 세계나 과거 MMORPG 게임의 열화판입니다. 그러다보니 책에서도 메타버스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메타버스와 관련한 재미있는 토막 지식을 내놓는 정도입니다. 자체로도 재미는 있었지만 변죽만 울리는 느낌이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Z세대에게는 메타버스가 현실이라고 했지만, 책에는 Z세대의 목소리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점도 아쉬웠습니다. 현상을 밖에서 팔짱끼고 평하는 듯 했습니다. 전에 읽었던 경향신문의 제페토 취재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자주 들어본) 마인크래프트도 아닌 것이 세상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메타버스가 궁금해서 책을 든 기존 세대 입장에서는 현대의 메타버스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VR은 2019년에 나온 오큘러스 퀘스트를 친구에게 빌려서 갖고 놀아보았지만 사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 온라인 게임은 꽤 많이 했는데도요.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며 매일 아침 인사 문자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또래에 비해서는 게임을 많이 할텐데, 메타버스와는 아무 상관 없는 1인용 콘솔 게임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게임들은 VR 기기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실감나고, 세상을 온라인으로 넓히지 않아도 더없이 흥미진진합니다.


(뜬금없는 광고 링크. 다같이 호포웨 합시다!)


왜 더 이상 온라인 게임을 하지 않는지, 학창 시절과 지금의 차이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무법지대에서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기본적인 예의도 없는 사람을 많이 겪었고, 받을 필요가 없었던 상처를 받았습니다. 반면, 코로나 직전까지 저는 TRPG나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트위터에서 모르는 사람을 모아 대면으로 놀곤 했습니다. 똑같이 모르는 사람이라도 얼굴을 보고 노는 편이 나았습니다. 아무리 예의 없는 사람이라도 눈 앞 사람에게 대놓고 쌍욕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비대면으로 TRPG나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지만 거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면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기는 상호작용이었던 듯합니다.   


메타버스의 가장 큰 목적은 현실의 도피처이며 대안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현실이든 가상 현실이든 똑같이 사람입니다. 비대면 환경에서 비언어적 소통이 막혀서 생기는 문제는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할 것입니다. 표정도, 손짓도 VR로 재현할 날이 올테니까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와 태도의 문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남을 겁니다. 사람을 전부 인공지능으로 바꾼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가짜 메타버스에 접속하느니 1인칭 콘솔 게임을 하고 말지요. 게다가 훌륭한 1인칭 콘솔 게임에는 메타버스에는 없는 작가가 직접 만든 서사가 있으니까요. 





#동아시아 #김대식 #메타버스사피엔스 #동아시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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