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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Jul 20. 2022

내가 몰랐던 세계의 한 쪽

자와할랄 네루, <세계사 편력> 1권 감상평

<세계사 편력>은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가 영국 식민지 시기 감옥에 갇힌 시절 딸에게 쓴 편지를 묶은 책이다. 13살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야 했던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곁에서 할 수 없는 대신 딸에게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기로 한다. 서간문에서 기대하는 형식은 아니다. 답장이 없어 일기에 가깝다. 딸에게 역사를 알려준다는 본래 목적보다 네루 본인의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2004년 출간한 개정판은 총 세 권으로 되어 있다. 


네루는 성실했다. 3년 만에 두꺼운 책 세 권 어치의 역사를 정리했다. 큰 사건이 없는 이상 하루에 한 편씩은 꼬박꼬박 썼다. 편지 한 편에 두 세 국가를 묶을 때도 있었고 천 년이 넘는 시간을 압축하기도 한다. 각 편지는 짧다. 그러나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하루종일 책을 공부하고 생각을 정리했을 것이다. 


<세계사 편력>은 3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아직은 1권만 읽었다. 1권은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 유적(기원전 2500년)에서 시작해 건륭제가 영국에 편지를 보냈다(1792년)는 내용으로 끝난다. 1권이 다루는 역사만 4000년이 넘지만, 2, 3권은 합쳐봐야 100여년의 이야기만 담고 있을 것이다. 네루가 편지를 쓴 시점이 1930년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제일 중요한 시기는 현재이다. 네루가 딸에게 세계사 편지를 쓴 이유도 1930년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 지식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지어진 모헨조다로 


네루의 <세계사 편력>은 다른 세계사 책들과는 다르다. 네루의 주관이 강하다. 역사적 사건만을 나열하는 대신 사건이나 인물이 왜 중요한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설명한다. 딸에게 쓰는 편지이기에 가능한 형식이다. 네루의 독특한 관점은 역사의 주체를 문명으로 보는 것이다. 문명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함께 이루는 것이다. 모든 문명은 언젠가 쇠하므로,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외침보다는 내부의 약점이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에 주목하지만, 문명의 정수는 사회와 문화에 있다.


한 사람이 한정된 자료만 가지고 세계의 모든 역사를 훑으니 오류도 많다. 한반도에 대한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처럼 큰 역사에 대해서도 틀린 부분이 종종 보인다. 자잘한 오류가 있더라도 역사를 종합하는 네루의 관점과 사상은 무시할 것이 아니다. 1930년대까지는 사실이었지만 2020년대에 들어 인정할 수 없는 내용도 존재한다. 네루도 2020년대까지의 미래를 알았더라면 편지에 쓴 관점을 수정했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아는 채 네루의 관점을 감상하는 것은 <세계사 편력>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두 번째는 이 책이 인도를 중심으로 역사를 다루는 점이다. 내가 알던 '세계사'는 중국과 유럽이 세상을 이끄는 모양새였다. <세계사 편력>을 읽으며 인도의 역사를 처음 접했다. 인도에서 탄생한 종교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지금껏 인도 아대륙의 역사를 아무것도 몰랐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알던 지식 수준에서 인도는 항상 객체에 있었다. 알렉산더 대제가 정복할 목표였고, 유럽이 쓰는 향료의 원산지였다. 현대에는 신비주의에 가득찬 해외여행의 끝판왕이었다. 인도나 인도인이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었다. 이제서야 인도를 주체로 한 역사를 읽었다. 이 땅에는 무수한 국가가 있었으며 성군과 폭군이 번갈아 나타났다. 동남아의 역사를 모른다는 사실도 함께 알았다. 책에 따르면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모두 남인도의 식민지로 시작한다.

 

세계사에 대해 어느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중국 왕조를 외울 수 있고, 현대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영국 때문이라고 할 때 어렴풋이 인과관계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읽으며 내가 알던 역사가 얼마나 지엽적이었는지 깨달았다. 지구 중앙을 백지로 둔 채로 세상을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세계사 편력>에서는 인도도 세계사의 일부일 뿐이다. 인도에 대해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처음 읽는 인도사> 책을 빌려 함께 읽었다. <세계사 편력>보다는 딱딱하고 '교과서 같지만', 지도와 사진이 많아 이해하기 편했다. 인도 글자를 흉내낸 제목이 재밌다. 힌두어나 벵골어 특유의 상단 가로선은 한글의 '삐침'이나 로마자의 세리프처럼 있던 획이 발전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커버 출처: https://www.toppr.com/guides/speech-for-students/speech-about-jawaharlal-nehru/


위키피디아 Mohenjo-daro: https://en.wikipedia.org/wiki/Mohenjo-d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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