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캬닥이 Oct 21. 2022

시도를 넘나드는 자전거 출근

자전거 출퇴근을 다시 시작했다. 거리는 25km. 탄천을 지나 한강으로 가는 길이다. 출근을 한다고 업무를 못할 만큼 힘든 길은 아니지만, 아직은 왕복하기 먼 거리라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번갈아 다닌다. 자전거로 출근을 한 날은 지하철로 퇴근하고, 지하철로 출근한 날은 자전거로 오는 식이다.


9-10월 자출퇴 기록


원래도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대학원생 때는 업힐로 소문난 학교에 자전거로 다녔다. 등교길은 13분, 하교길은 7분 걸렸다. 졸업 후 회사에 가고서도 비올 때 빼고는 자전거를 탔다. 등교길보다 거리가 네 배 늘었고 터널도 생겼지만 출퇴근길 전략을 잘 짜면 다닐 만했다. 그러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오며 자전거를 포기했다. 이사 오고 며칠 지나 자전거 출퇴근을 시도했지만, 중간에 새끼 고라니를 만난 것 외에는 지루하고 힘들었다. 결국 차를 샀다. 회사와 가까운 주차장에 월주차도 끊었다. 힘겹게 운전을 익힌 후에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중 덜 막히는 길을 타며 회사를 오갔다. 


올해는 추석이 빨랐다. 고향 내려가는 김에 일주일 휴가를 냈다. 9월 말에는 장기 출장도 있었다. 한달 중 절반 가까이 출근하지 않으니 매달 내는 월주차비가 아깝게 느껴졌다. 이번 달만 불편하게 다니자고 생각하고 주차를 끊지 않았다. 마침 9월이었다. 1년 중 자전거 타기 제일 좋은 달이었다.


세상 일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추석도 출장도 끝났는데 월주차 신청 버튼이 눌리지 않았다. 매진이었다. 주차장 정책이 바뀌며 월주차 티오가 줄어든 것 같았다. 회사 근처에 차 댈 곳이 사라졌다. 자전거 출퇴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점은 9-10월 자전거를 타며 자전거 출퇴근이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고라니도 한 번 더 보았다.




자전거 출근에는 좋은 점이 많다. 운전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설령 내 바로 앞에 따릉이 두 대가 갈지자로 병렬주행을 하더라도 퇴근길 강변북로에서 느끼는 답답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자전거길은 밀리지 않는다! 나보다 빠른 사람은 멀찍이 사라지고, 나보다 느린 사람은 추월하면 된다. 추월이 무서울 때도 있다. 그러나 반대편 길을 살피며 내 앞을 막는 자전거를 조심스럽게 돌아가는 일은 막히는 길에서 차선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덜 긴장된다. 


환상적인 루트 덕분에 한강의 낮밤을 감상할 수 있다. 운전할 때는 한강을 보고싶어도 보기 어려웠다. 불안한 건 둘째치고 차도가 넓어 옆이 보이지도 않았다. 자전거를 탈 때는 얼마든지 고개를 돌려 강을 볼 수 있다. 전방 주시는 동일하지만 속도가 느리니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한강에 해가 지면 하늘이 푸른색에서 녹색을 지나 붉게 변한다. 잠수교 분수는 조명을 받으며 둥글게 내린다. 매일 다니는 퇴근길에 일부러 데이트를 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돈을 덜 쓴다. 운전하던 시절, 기름값 계산을 해보니 하루에 만 원씩 쓰고 있었다. 유가가 치솟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 계산해도 6-7천원은 될 것이다. 한 달에 나가는 월주차료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저런 따지면 자전거로 하루에 만오천 원은 절약이 된다. 


무엇보다 자전거는 운동이다. 하루 24시간 중 두 시간이 출퇴근 때문에 사라지는 건 원통하지만 그 시간이 자전거를 타느라 사라졌다면 아쉬울 것이 없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니 라이딩 실력이 늘었는지 확인하기도 쉽다 (안 는다).




자전거 출퇴근의 나쁜 점도 있다. 회사에서 입을 옷과 운동복을 따로 챙겨야 한다. 자전거로 출근할 때는 근무복을 챙기고, 퇴근하는 날은 운동복을 가방에 넣어서 출근한다. 가방을 매고 타니 무겁지 않아도 불편하다. 게다가 운동복 챙길 때면 필요한 물품을 꼭 하나씩 빼먹는다. 물통을 안 챙겨서 편의점에서 생수를 산 적도 있다. 뚜껑을 돌려 여니 불편한 건 둘째치고 물통 케이지에 넣어지지도 않았다. 패드바지를 챙기지 않아 엉덩이를 통통 튀기며 돌아온 적도 있었다. 


자전거를 매일 타며 크고 작은 소비가 늘었다. 매일 오래 타다보니 예전에는 넘어갔던 작은 불편함이 피로를 늘렸다. 꼬리뼈가 아파서 안장을 바꾸었고, 운동량을 확인하고 싶어 심박계를 샀다. 동계 준비로 기모 저지와 빕은 물론 핸들을 덮는 바미트와 신발을 덮는 슈커버까지 구매했다. 물건을 살 때마다 지불의 고통을 느낀다. 자전거 물품은 반영구적이니 한 번 사면 계속 쓰고, 계산을 해보면 두 달 월주차료보다 적게 나갔는데도 아깝다. 마음속 회계 장부에 자전거는 취미 카테고리에 있고 차는 교통 카테고리에 있는지, 언제든 포기할지도 모를 자출퇴에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그래도 전 안장(아래)에서 새 안장(위)로 바꾸니 안장통이 사라졌다!


사소하지만 팟캐스트를 못 듣는 것도 아쉽다. 운전길에는 항상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자전거로 다니면서 진도가 멈추었다. 핸드폰 스피커로 팟캐스트를 켜보았지만 바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출퇴근이 늘며 음악은 듣게 되었다. 이어폰을 직접 귀에 꽂으면 위험하니 이어폰에 달린 고리를 안경 다리에 걸어서 듣는다. 결국 골전도 이어폰을 사서 배송을 기다리는 중이다. 자전거 출퇴근이 부른 또 다른 소비다.




어제는 운전을 안 한지 너무 오래되어 차로 회사를 갔다. 자전거를 탈 때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티맵은 평소 가던 강변북로 대신 올림픽대로를 타라고 지시했다. 미심쩍어하며 올림픽대로로 들어가니 네비의 길이 시뻘개지며 당장 다음 다리를 타고 강변북로로 건너가라고 했다. 티맵의 안내를 두세 번 무시한 끝에 운전을 마쳤다. 주차장에는 일주차료를 냈다. 주차장은 한산했다. 빙글빙글 돌지 않고 주차할 수 있었다. 이렇게 텅텅 비었는데 왜 월주차가 매진이지?


업무가 끝나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퇴근했지만 당연하게도 길은 막혔다. 차선을 바꿀 때마다 비상등을 켜며 뒤차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하는 운전이라 감이 죽어 있었다. 급정거도 많이 했고 잘못 든 차선에서 급하게 길을 바꾸기도 여러 번이었다. 팟캐스트를 들은 건 좋았지만, 하루에 세 편 넘게 들을 줄은 몰랐다. 집에 와서 출퇴근 소요 시간을 확인했다. 예전에 하던 운전보다 유난히 오래 걸린 것도 아니었다. 자전거가 아니면 회사에 갈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이제는 자출퇴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자전거 출퇴근에 제일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자출퇴가 운동이 된다고 썼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출퇴는 운동이 아니게 되어야 지속 가능해진다. 요새 내 루틴은 월수금은 헬스 후 유산소 운동 겸 퇴근, 화목은 전날 운동의 액티브 리커버리(?)다. 아직은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다리가 지쳐서, 좀 살살 타기로 했다. 매일 왕복하기는 아직 멀었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매일 주차료를 내면서 막히는 길을 운전해야 한다. 천천히 체력을 늘려서 내년에는 비가오든 눈이오든 자전거를 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 체육관을 만드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