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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캬닥이 Nov 21. 2022

2022 손기정평화마라톤 하프마라톤 후기

21km 동안 만난 사람과 통증, 21km를 달리기 위한 훈련과 불안

‘손기정평화마라톤’에 참가했다. 처음으로 하프마라톤을 뛰었다. 두 시간 십삼 분. ‘걷지 않고 완주한다’가 목표에 넘치는 결과다. 10월 9일 서울달리기 10km 기록인 한 시간 일 분에서 크게 쳐지지도 않았다.


손기정평화마라톤은 1936년 베를린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를 기리는 정통 마라톤 행사다. 출발과 도착 지점이 잠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라 경기를 뛰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프 코스는 구리암사대교 남단에서 반환점을 돌고 잠실 주경기장으로 돌아오는 구성이었다. 자전거 도로를 코스로 써서 반대편에서 오는 선수들을 잘 볼 수 있었다.


2022년 손기정평화마라톤 하프마라톤 코스. 몇 번이나 봤는데도 2차 반환점이 있는지 몰랐다.


반환점을 4km 앞두고 달리고 있는데 반환점을 지난 풀 마라톤 선두주자가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10km 코스를 다 돌고서 하프 코스의 절반을 먼저 달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체형부터 달랐다. 헐렁한 싱글렛에 팔근육이 도드라졌다. 근력운동으로 얻을 법한 우락부락한 근육이 아니었다. 달리기로 팔 근육을 얼마나 키울 수 있겠냐마는, 지방이 모조리 깎여나간 탓에 어깨와 팔의 경계가 선명했다. 반바지를 입은 다리도 길쭉길쭉했다. 그 길쭉한 팔다리로 휘적휘적 아무도 없는 거리를 누구보다 빠르게 치고 나갔다. 서서히 하프와 풀 주자가 섞이기 시작했다. 구별하기는 쉬웠다. 20km 먼저 뛰고 온 풀 마라톤 주자들이 하프 마라톤 주자를 순식간에 제치고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10월에 뛰었던 서울달리기 때는 7km부터 지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 마라톤은 10km 근방 반환점을 돌 때까지 지치지 않았다. 하프마라톤에 임하는 몸이 20km 기준으로 긴장한 것 같았다. 반환점을 돌자 급격히 힘들어졌다. 1-2km마다 표지판에 달려온 거리를 표시해 두었는데, 10km 이후부터는 표지판과 표지판 사이의 1km가 점점 길게 느껴졌다. 거리 표지판은 친절하게도 킬로 수에 100m를 더한 곳에 놓여 있었다. 하프 마라톤은 21.1km라서 100m를 더해 놓으니 계산이 한결 편했다. 그럼에도 15km까지 달리고 나서야 남은 거리가 5km가 아니라 6km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착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20km에 더해진 1km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다.


3km 남은 시점에 종합운동장이 보였다. 곧 끝날 줄 알고 힘을 짜냈는데 종합운동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반환점이 하나 더 있었다. 코스 지도를 대충 본 탓에 2차 반환점이 있는지도 몰랐다. 반환점을 지나 종합운동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 제일 멀고 힘들었다. 말썽 한 번 없던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오른쪽 다리를 높이 들며 삐걱삐걱 달렸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테이핑으로 버티던 왼쪽 발목도 애써 외면했다. 주경기장이 가까워지니 단체 응원단과 스텝 분들, 교통경찰들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쯤 되면 힘을 내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야 하는데 다리가 아파서 그럴 수 없었다. 걷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남은 거리를 좁혔다. 주경기장 트랙의 도착 라인을 넘으며 달리기를 끝냈다. 메달과 간식을 받고 잠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뻗었다. 경기 다음날인 지금까지도 발목과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직 기록증이 나오지 않아 핸드폰 메시지로 대체. 달리는 도중에는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었고 달린 후에는 찍을 기운이 없었다.


지금까지 10km 달리기 대회는 몇 번 나갔다. 이런 대회를 ‘마라톤’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한 시간 달리기에 ‘마라톤’은 너무 거창했다. 하프 마라톤은 마라톤이라 할 만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달리기 준비를 했고, 준비를 했는데도 한계에 부딪혔다. 하프마라톤은 연례행사로는 해볼 법 하지만 자주는 달릴 수 없는 거리였다. 풀 코스 마라톤은 절대 하지 않겠다. 42.195km는 무리다. 3-4년 전 10km 코스를 달리며 하프 마라톤은 눈도 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무색하게도 하프를 뛰었다. 그럼에도 풀 마라톤은 뛰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뛰지 않을 것이다.


17년 10km 메달과 함께




최근에 달린 10km 달리기는 한 달 전 서울달리기였다. 한 시간 일 분의 기록이 아쉽지 않았던 이유는 비겁하게도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출퇴근한다고 한 시간씩 자전거를 탄 덕분인지 10km 내내 숨이 차지 않았다.


하프 마라톤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 아침에 집 주변에서 달리기를 연습하려 했다. 심폐가 단련된 덕분인지 2-30분 달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동네를 달리며 새로운 공원이 열린 것도 알았고, 허물어지는 직사각형 트랙도 찾았다. 버스 없이는 엄두도 못 냈던 동네 개천에 심리적으로(육체적으로?) 가까워졌다.


홀로 달리기에 가장 큰 공신은 나이키 런 클럽 어플의 가이드 러닝이었다. 가이드 러닝을 켜고 달리면 일정 거리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코치의 음성이 나온다. 코치의 말은 좋게 말하면 선문답이고 나쁘게 말하면 공수표 아무말이었다.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1분 후에 돌아오겠다던 코치는 한참 후 맥 빠지는 대답을 들려주곤 했다. '달리기를 왜 해야 할까요? ...답은 여러분 마음 속에 있습니다' 식이었다. 그럼에도 가이드 덕분에 달리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NRC 앱에 한국어 가이드 러닝은 20개 남짓이다. 제일 긴 가이드 러닝도 35분이라 하프 마라톤을 훈련하기는 부족했다. 핸드폰 언어를 영어로 바꾸어 200여 개의 가이드 러닝을 새로 찾았다. 글로벌 애플리케이션답게 코치의 발음은 알아듣기 쉬웠다. 영어 자체의 특성인지 코치가 랩에 욕심이 있는 것인지 가이드에 운율을 넣으려 해서 재미있었다.


영어 버전 NRC 앱을 받은 수고에 비해 많이 뛰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내리 10km를 뛴 서울달리기 후로 뛸 때마다 왼쪽 발목이 아팠기 때문이다. 1km쯤 달리면 아프기 시작하다가 2-3km 지나면 잦아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얼음찜질을 하며 통증을 가라앉혔다. 처음 인터벌 훈련을 한 다음 날에는 재택근무라 다행이었지 걷지도 못했다. 산책을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도 못 나가고 절뚝대며 집에 돌아왔다. 그렇다 보니 본래 계획은 한 달 동안 NRC 하프마라톤 훈련 일지를 따라 하는 것이었으나 발목이 악화될까봐 한 달간 열 번도 달리지 못했다.



출퇴근길 읽은 달리기 책, 인터넷 비전문가의 게시글, 엑스레이와 초음파 상 깨끗한 인대 이미지를 합쳐 내린 결론은 달리기에 쓰이는 관절이 신체의 다른 부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폐는 출퇴근 자전거로 다지고 있고, 하체 근육은 매주 역도를 하는 만큼 튼튼하다. 달리기 도중에는 힘들지 않지만 다음날 여파가 큰 이유도, 몸 전체적으로 불가능한 동작이 아니지만 약한 부분에 충격이 누적되기 때문일 것 같다.


이제 큰 행사는 끝났으니 당분간은 쉬고 천천히 발목을 강화할 계획이다. 토요일 아침을 달리기로 시작하고 싶다. 동네 구석구석을 달리며 계절이 어떻게 달라질지, 완공이 내년이라는 공공건물은 언제나 올라갈지 살펴보고 싶다. 풀코스 마라톤은 뛰지 않을 것이다.



커버 사진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468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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