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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Sep 09. 2023

사랑할 수 있는 용기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독후감

    “우리 엄마도 다른 엄마들처럼 간섭도 좀 해줬으면 좋겠어.”

    한국인 엄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레나가 주인공 해미에게 하는 말이다. 레나의 엄마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엄마로서는 쿨하기 그지 없어서 (레나가 생각하기에) 청소년 딸이 임신을 했다고 말해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네가 조금 더 간섭해주면 좋겠고, 어리광을 부려주면 좋겠고, (중략) 나만 너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너도 내 안부를 궁금해하며 제주로 만나러 와줬으면 좋겠다.”  

    대학 때 문학 동아리에서 만나 20년째 남자 사람 친구로 지내는 우재가 해미에게 하는 말이다. 우재와 해미는 대학 초년생일 때 서로에게 핑크빛 감정을 느낀 적이 있으나 해미 쪽에서 가까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지금껏 적당히 거리를 두고 연락하는 사이였다. 고향 제주에서 약국을 개업한 우재는 주말마다 지인의 경조사를 핑계 삼아 서울에 사는 해미를 만나러 온다.

    레나가 엄마에게, 우재가 해미에게 받기 원했던 ‘간섭’이라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일면이었을 것이다. 간섭을 한다는 것은 남의 삶에 끼어들어 이러쿵저러쿵한다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말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지는 데는 그런 불편한 과정이 꼭 필요하다. 레나와 우재는 엄마와 해나가 자기 삶에 끼어들어 와주기를 바랬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레나의 엄마는 자기애적 인간이라서 딸에게 무심했다면 해미가 정말로 좋아하는 우재에게 곁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그와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두려움은 어린 시절 사고로 친언니를 잃은 상처에서 온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를 잃게 될 때 큰 아픔을 느끼리라는 것을 너무 일찍, 너무 세게 경험했던지라 아예 아무와도 가까워지지 않겠다는 무의식적 의지가 발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레나의 엄마나 해미나 상대가 느낄 외로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레나는 결혼하여 아이를 셋이나 낳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기가 받지 못한 ‘간섭’을 아이들에게 마음껏 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우재는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는 해미 대신 자신에게 곁을 주는 여성들과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러기는 해미도 마찬가지였는데 어쩌면 해미는 헤어져도 큰 타격이 없을 만한 사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사귀었을 것이다. 마흔에 접어든 우재가 해미에게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구애했을 때 해미의 내면에서는 그에게로 가고 싶은 마음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서로 싸운다.

    결국 해미는 우재를 만나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는데, 그 이유는 50년 전 시작되었던 선자 이모와 천근호의 사랑이 죽음 후까지도 이어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파독 간호사들

    해미의 엄마가 독일로 공부하러 가게 되면서 만난 파독 간호사 출신 이웃들 중에 선자 이모가 있었다. 뇌종양에 걸린 선자 이모가 죽기 전에 첫사랑을 찾아주고 싶어했던 그녀의 아들 한수의 부탁으로 시작한 ‘선자의 첫사랑 찾아주기’ 프로젝트는 한수, 레나, 해미 세 친구의 집요한 비밀수사에도 불구하고 성과 없이 끝날 운명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있던 해미는 한수의 전화를 통해 선자 이모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여전히 엄마의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고 있던 한수와 선자 이모가 마음에 밟혀, 해미는 거짓으로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았다고 말하고 자기가 그녀의 첫사랑 남자인 척 편지를 쓴다. 아무것도 모르는 한수는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주었다며 고마워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선자 이모는 그것이 대필 편지임을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첫사랑에게 답장을 쓰는데,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해미는 그 편지를 읽지도 못하고 20년간 묵혀둔다. 

    해미는 오랜만에 만난 우재의 말 때문에 ‘선자의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를 재개하기로 마음 먹는다. 우재는 해미 자신이 해놓고도 잊어버린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만약 글을 쓴다면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야.”라고 했던 말을.     

    선자 이모의 고향에 찾아간 해미는 중학생 시절의 선자 이모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결국 선자 이모의 첫사랑 천근호를 찾아낸다. 천근호를 만난 순간 해미는 두 사람의 사랑이 왜 이루어질 수 없었는지를, 그리고 선자 이모가 독일로 갔던 진짜 이유를 깨닫게 된다. 선자 이모와 마찬가지로 천근호도 평생 선자 이모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해미는 용기를 내어 우재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로 결심한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서로를 보지 못해도 사랑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선자의 첫사랑 찾기 프로젝트’가 해나를 구원했다.


    이 소설은 상실과 이별의 아픔이 있을지라도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아픔은 사랑이라는 상품을 사면 따라오는 원 플러스 원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사랑하지 못하고 평생 외로움에 갇혀 살 것인가, 사랑하고 상처받는 편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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