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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ug 03. 2024

최인호의 글을 다시 읽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독후감

    나의 2010년 일기를 읽다가 거기서 내가 언급한 최인호의 책이 궁금해져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나는 말년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를 모시면서 우왕좌왕하는 어머니에게 화가 치밀 때마다 글을 썼고, 모인 글을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아버지』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독자들은 내게 글 솜씨가 있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내가 느낀 감정에 공감한다고 말해주기도 했지만 나는 그 글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글을 잘 쓰기 때문에 그 글을 쓴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대리만족을 느끼라고 쓴 것은 더욱 아니었다. 나는 다만 내 속에 쌓여가는 쓰레기 같은 감정을 쏟아버리기 위해 글을 쓴 것이었다. 따라서 그 책은 아픈 손가락 같은 것이었다. 분명 나의 것이지만 잘라서 내버리고 싶은.  

    최근 토머스 울프가 쓴 『무명작가의 첫 책』에서 “사람이 책을 쓰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기 위해서”라는 구절을 발견했을 때 작가가 나를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부모님에 대한 미움을 모두 그 책에 담아서 땅에 파묻어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하기 싫을 만큼 부끄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했는데, 그 이유는 나의 감정을 지지받고 싶어서였을 테니 이처럼 모순된 것이 나의 마음이다. 

토머스 울프가 나를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최인호는 어머니가 일흔이 되는 해부터 여든에 돌아가실 때까지 한 해에 대략 한 편씩 글을 썼다. 일흔의 어머니는 교양 없고 우악스러우며, 신앙과 삶이 괴리되었으되 그 모순을 깨닫지 못하는 무식한 할머니였다. 미국 여행을 다셔 오신 후 미국물이 들었는지 빨간 매니큐어와 뾰족구두로 멋을 내는 어머니를 작가는 고운 눈으로 보지 못한다. 

    늦게 배운 멋 내기도 오래가지 못하고 어머니는 일흔 중반에 다리 힘이 빠지고 눈이 어두워지면서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된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온갖 핑계로 식구들을 괴롭히며 소란을 피워 결국 바쁜 아들과의 외출 기회를 얻어낸다. 작가는 어머니의 술책이 뻔히 보여 어머니와 외출을 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못하다.  

    작가의 어머니는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열일곱 나이에 시집 와서 아홉 아이를 낳고 두 번의 피난과 귀향을 거쳐 마흔 줄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 혼자 된 후에는 하숙을 치며 자식들을 가르쳤는데 그렇게 늙어버린 어머니에게 남은 것은 세상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싸움닭 같은 모습뿐이다. 어머니는 그냥 쫓아내도 좋았을 쥐를 꼭 당신 손으로 때려죽여서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작가는 어머니 내면에 증오가 도사리고 있다고 해석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성호를 그으며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살의를 보면서 작가는 어머니의 이중성에 치를 떤다. 

    그랬던 작가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어머니는 그저 신이 각본을 쓴 연극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간 배우였을 뿐이었으며, 어머니의 몸은 어머니가 삶이라는 무대에서 입었던 의상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해가 가면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세월의 의미를 재해석하게 된다. 어머니는 고상한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으나 자식들을 무조건 믿어주었고, 자식들이 이 땅에서 살아남아 다음 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뒷바라지했다.  

2007년에 영화화된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최인호의 부모님만큼은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부모의 후원 하나 없이 중학교 때부터 입주과외를 하며 독학했고, 나의 어머니는 망해버린 집안의 둘째딸로서 돈 벌러 나간 어머니 대신 다섯 동생들을 건사했다. 그런 분들이니 자식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서 악착같이 살았다. 어머니는 시장에 뭘 사러 가면 값을 부르는 대로 주는 법이 없었고 상인이 요구하는 금액의 반을 후려쳤다. 나는 그런 엄마가 너무 창피했지만 나의 피아노 레슨비를 대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어머니의 사정은 알지 못했다.      

    엄마는 최근까지도 시장에서 과일을 살 때면 흠집이 나서 싸게 파는 것만 골라 사면서 이런 게 더 맛있다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엄마가 싫었지만 지금은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돈을 아껴야 해서 이런 것밖에 못 사먹는다고 말하는 대신 가성비 높은 상품을 고르는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켰던 것이다.       

    내가 최인호의 글을 읽은 것은 골수이식 하기 전 엄마 집에서 요양할 때였다. 그때는 내가 최인호와 같은 심정이 되어 엄마를 성토하는 글을 쓰게 되리라는 건 전혀 몰랐었다. 나도 미래의 어느 날 엄마를 미워했던 나 자신을 후회하며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내 딸들이 나를 미워하며 글을 쓰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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