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Oct 01. 2024

방문객들

2010년 3월 26일부터 4월 6일까지 일기

3월 26일 금요일 벨케이드 2-2     


3월 30일 화요일 벨케이드 2-3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나의 몸도 한결 가벼워졌다. 남편과 함께 서울에 왔다. 주사실에서 벨케이드를 맞고 있는데 남편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L 회계사의 부인 N 집사가 방문했다. 여성스럽고 상냥한 그녀는 만날 때마다 호감과 함께 열등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존재다.

    그녀는 영적 상담자요 위로자다. 어떤 기술이 아니라 태도 때문에 그녀는 상대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싶다는 나의 기도를 주님이 들어주신 것인지 오늘은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씀을 들은 것 같다. N 집사를 통해 주님은 말씀하셨다. 

    “싸움이 없이는 평안도 없다. 싸움을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8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숫자이니 벨케이드 주사를 8번씩 두 번 맞는 것은 너를 완전히 새롭게 하시려는 주님의 계획이다.” 

    “올해 이후 너의 삶은 지금까지의 50년과는 전혀 다른 삶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3월 31일 수요일

    고종사촌 기영 언니와 이종사촌 미선이 부부가 방문했다. 

    기영 언니는 3년 전 프랑스에서 귀국했을 때 보고 오늘 처음 보는 것이다. 이야기 끝에 언니가 시어머니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한 며느리였던 기영 언니는 늘 죄인 취급당하며 살아온 것 같았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잘나고 잘난 시어머니는 그 유세를 며느리 괴롭히는 것으로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착하고 여린 기영 언니는 부당한 대우에 대꾸 한마디 못 하고 눈물을 감추며 살아온 것 같았다. 미국에 살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기쁨을 얻었으나 시어머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여전히 괴롭게 지냈다. 언니는 자기 때문에 남편과 시어머님이 사이가 벌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시어머님을 견뎌내는 데 급급했던 것 같다.

    시어머니가 자기 살림 뒤지는 것을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고 느끼던 어느 날 언니는 충동적으로 시어머니의 은행 통장 하나를 감추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퇴근한 아들을 불러서는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말했으나 아들이 어머니 말을 귀담아 듣지 않자 그 길로 짐을 싸서 다른 자녀의 집으로 가버렸다. 

    비슷한 종류의 에피소드가 많지만, 통장을 숨긴 일은 남편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있던 중 우울증에 걸려 자살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는 순간, “그대로 있어라!”라는 음성을 듣고 멈추었다고 한다.

    어려서는 가끔 외삼촌 댁에 가서 기영 언니와 사촌 동생들과 함께 놀곤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남보다 더 멀어졌다. 그동안 기영 언니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너무 미안했다. 언니는 자기 친구 중에 림프종과 혈액암 걸린 사람들이 있는데 둘 다 치료가 잘 되었다며 나도 나을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나와 동갑이고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이종사촌 미선이는 외가 친척들과 소식을 자주 주고받으며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소중한 사람이다.     


    친구 J에게 내일 놀러 오라고 했더니 모레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모레는 주사 맞은 후에 대전에 내려갈 거라 그녀를 점심때 만나면 퇴원 수속하고 식구들 만나 1시 41분 버스 타기가 바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만 그렇게 하라고 말해버렸다. 

    J와 얘기할 땐 자주 그 애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는 나를 발견한다. 내 쪽에서 먼저 눈치를 봐놓고는 나에게 불편한 결과가 생기면 그 애 탓을 하며 나 자신에게 화를 낸다. J는 내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에 맞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 텐데 그런 친구를 나는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고 원망하곤 한다.

     J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난 친구인데 나와 너무 다른 성격과 환경이 매력으로 다가와 그 애와 사랑에 빠져버렸었다. 그 애는 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동경하는 그 애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에 그 애 앞에서는 유독 주눅이 드는 것 같다. 어빈 얄롬의 상담사례집을 읽으며 내 안에 있는 친밀감의 장애물이 무언지 생각하다 보니 내게는 호감 가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주저함과 내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에게 느끼는 황송함과 비굴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상대가 실망하거나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극도의 두려움이 있다.      


2010년 4월 2일 금요일 벨케이드 2-4     


2010년 4월 3일 토요일 

    어제 벨케이드 주사 후 J를 만나고 부모님, 예은이와 함께 대전 집에 왔다. 스테로이드 때문에 부종이 심해져서 음식 먹기가 불편한 정도였지만 다행히 오랜만에 쾌변을 보았다.      

    이번 주 동안 온누리교회 새벽예배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데 어제는 나준석 목사님의 설교와 성찬 예식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묵상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생명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 냄새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은 이성’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나는 많은 경우 사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논평하기 잘한다. 그동안 독서와 연구를 통해 사랑의 본질에 가 닿고자 노력했으나 내 마음은 여전히 사랑보다 미움과 두려움에 지배받고 있다. 그것을 보면 이성적 접근이 나 자신을 위한 궁극의 처방은 아니었다. 

    “사랑은 상대방이 사랑으로 지각하는 무엇을 주는 것이다”라는 게리 채프먼의 정의가 지금으로선 가장 통합적인 정의인 것 같다. 철저히 상대의 입장에 설 때에야 사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기’란 것은 엄청난 각오와 작심을 하고 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은 임종 직전 마지막 호흡이 남은 상황에서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셨다. 죽음 앞에서도 타인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핵심인 것 같다.      

피어나라, 살아나라

4월 6일 화요일 심한 황사로 흐림

    유치원 가기 싫어 늑장 부리는 예솔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붉은 제라늄 화분 세 개를 샀다. 꽃은 언제나 지치지 않는 생명의 소리로 내게 외친다. 피어나라, 살아나라고.

    일주일의 자유시간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준다. 나는 늘 함께 있음의 욕구보다는 홀로 있음의 욕구가 강했다. 남이 나를 찾을 때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그들의 청을 거절함으로써 나는 일말의 우월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필요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학교나 기관은 적어도 한 학기 전에 예정된 계획표를 가지고 있기에 그동안은 미리 정해진 일정과 겹치는 요청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는 자연인의 상태로 돌아가 사람들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중요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을 포기하고, 우월한 사람이 되려는 욕심을 버리며, 나의 이기심과 편안함에 봉사하는 행위 대신 그 반대 행위를 선택하고 타인에게 초점 맞추기를 배워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행복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