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10만원의 용돈

철부지 딸 E, 36세

by Eugene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한 성인이 된 이후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역할이 어느 순간 역전된다. 부모는 늙어가고, 자식은 점점 세상을 알아간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다니던 꼬마는 어른이 되어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에게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을 알려준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마트폰의 다양한 앱 기능, 인터넷 쇼핑몰 가입부터 구매까지 일러주어야 하는 일은 내 몫이다. 이처럼,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 외에도 부모-자식 관계의 역할이 뒤바뀐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간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하나는, 바로 용돈을 드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점점 어려지는 부모님에게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이 드리는 작은 기쁨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이 자질구레하게 쓰는 돈. 또는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


이것이 용돈의 사전적 의미이다. 목적 없이 쓰는 돈이라니.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자고로 용돈은 정해진 날짜보다는 불시에 받는 것이 좋았다. 계획해서 쓰는 돈보다 갑자기 생긴 횡재에 충동구매의 사치를 누리는 것. 집에 오신 손님이나, 친척어른 집에 놀러 가서 받았던 갑작스러운 그런 돈은 무얼 사도 좋았지만, 고등학교 1학년까지 빠순이라는 직업에 몰두했던 나는 주로 오빠들의 굿즈나, 다이어리를 꾸밀 수 있는 속지, 스티커 같은 것을 사며 행복을 누렸다.


나이와 관계없이 어쩌면 우리는 모두 용돈을 받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오래도록 사고 싶었던 무언가를 구매하는데 보탤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생활비로만 쓰기에도 빠듯할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 중반의 나는 한창 일은 하고 있지만, 부모님에게 용돈은 드리지 못한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자유로운 돈을 드리는 것보다는, 나의 자유로운 시간을 나누어 함께 쓰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혼자 벌어 살기에도 빠듯한 나에게 굳이 받지 않으시려 하지만 언제쯤 나한테 제대로 된 용돈 받아보냐고 타령을 하신다) 다행히 나보다 네 살 많은 오빠 부부가 정해진 날짜에 매달 넣어드리는 용돈 덕에 내가 시간으로 퉁 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행동에서 부모-자식의 역할이 뒤바뀌었지만, 용돈을 받는 행위에서만큼은 여전히 난 나의 부모님의 자식으로 남는 중이다. 특히, 가장 기분 좋은 용돈은 부모님과 화투나 카드 게임을 한 후 아빠에게 받는 돈이다. (물론 알코올이 포함된 게임이다) 얼마 전에도 부모님과 함께 간 경주 여행에서 나는 친구가 직접 담근 막걸리로 아빠를 유혹하고, 화투를 쳤다. 5만원으로 시작한 나의 돈은 순식간에 천원밖에 남지 않았지만, 기분 좋게 취하신 아빠는 결국 나에게 10만원의 용돈과 덤으로 로또까지 주셨다. 만약 1등이 당첨된다면 2억 10만원의 용돈을 받은 셈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가끔 이렇게 2억 10만원의 용돈을 받는 철없는 자식이지만, 그들에게만큼은 더없이 소중한 2억 10만원 이상의 시간을 나누어 쓰는 자식으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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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용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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