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려다 참은 말

시간 강사 D, 36세

by Eugene

‘저...죄송하지만 그 소리 좀 내지 말아 주실 수 있을까요?’


“분노라는 감정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는지, 그때 나는 왜 그랬으며 무얼 하고 있었는지 들여다보세요.”


2년 전 들었던 명상수업에서 선생님이 내 주신 과제였다. ‘분노를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나에게 가장 취약한 것임을 알았기에, 이 과제를 받고 명상을 하던 20분이 매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문득, 나는 연인이나 지인보다 가족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게 내가 화를 내는 경우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생략해도 된다는 어떤 ‘기본적인 예의’(이 기준은 다소 주관적일 수 있다)를 무시했을 때였다. 이를테면, 식사 자리에서 소리 내어 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한다든지, 혹은 껌을 씹을 때 딱딱 소리 내어 씹는 경우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신경이 곤두서고 날카로워진다. 분석해보건대, 나는 구강에서 내뱉는 소리에 아주 민감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지각이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 이런 행위는 습관적 행동일 경우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의 아버지가 그 소리를 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식사 후 아빠는 자주 이 사이에 낀 음식을 제거하는 소리를 낸다. 한 번은 참다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돌아오는 대답은,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니? 싫으면 너가 듣지 말어.”


였다. 나이가 먹을 대로 먹은 싱글 딸과 아빠와의 대화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것을 알기에, 그 이후로는 부모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면 자리를 먼저 정리하거나 안 들으려 애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좋지 않은 모습을 알게 되면 더욱 화가 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가 내 인생 최초의 이상형이었을지라도.


하루에 많게는 500킬로 이상을 이동하기도 하는, 특수한 직업을 갖은 나는 각종 운송수단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군중들 속에는 입으로 갖가지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 소리 중 하나가 내 고막을 한 번 뚫고 들어오게 되면, 그 어떤 시끄러운 음악을 들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적어도 그 순간엔 나의 이어폰은 기능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소리의 강도와 빈도수에 따라, 나의 참을성은 한계에 다다르기도 한다. 지하철이나 버스의 경우에는 자리를 조금 옮기면 되는데, 기차는 다르다. 기차에 탑승한다는 것은 비록 일하러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운송수단의 유형 때문에 여행에서 느끼는 설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하필 내 옆자리에 구강으로 내는 소리를 즐기는 사람이 앉았을 경우라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이 의자로 옮겨 앉고 싶은 심정이 든다. 정중하게 말을 할까? 여러 번 고민한다. 하지만 두세 시간 잠시 분노를 머금고 있으면 될 것을, 나의 언어로 옆 사람까지 기분 나쁘게 해서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불편한 상태로 있는 것이 더 큰 에너지 소모라고 판단하고 포기한다.



나의 이 예민한 청각 시스템을 알아차리고 난 후에, 나는 생각한다. 아아, 그럼 나는 앞으로 나의 청각 기능을 떨어뜨리던지, 구강으로 소리 내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흥미가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이 이상한 조건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오랜만에 나에게 화가 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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