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주의자의 무대

정의로운 사회활동가형 인간 C, 35세

by Eugene

‘새로움’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겠고, 놀랍지 않은 시대에 사는 요즘은 레트로가 대세이다. 문화, 사상, 패션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 시절을 소환하는 콘텐츠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라떼 시절 소환을 본격화시킨 예능 프로그램은 『놀면 뭐 하니?』(2019년 7월부터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예능)이다. 뭘 해도 이슈가 되는 천상 연예인 이효리, 네티즌에게 까이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깡 오빠 비, 여전히 건재한 유느님 유재석이 모였고, 그들은 ‘싹쓰리’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다. 지금보다 더 잘나가던 시절의 스타일, 형식 등을 본보기 삼아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의상 및 소품 또한 90년대의 감성으로 연출한 이들의 프로젝트는 적어도 내 나이 세대 (30대 중후반)들에겐 과거를 회상하기에 충분한 화젯거리였다.


‘싹쓰리’가 결성되고, 각 팀원이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했다. 그 덕에 갑작스레 일반인들에게도 MBTI 검사가 유행에 돌기 시작했다.


예전에 검사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질 않아, 이 프로그램을 본 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서 온라인에서 간단히 할 수 있는 링크를 열었다. 결과지를 받아보니 이전에 검사했을 때와 결과가 같았음이 기억이 났다.


04040404.jpg 도표 출처: https://blog.naver.com/ww31ni/221747493676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잘 맞는다 생각하면 특유의 해피페이스로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붙임성을 가졌다. 또한, 취향, 취미가 비슷한 집단을 꾸리는 데 능력자다. 그 덕에 오지라퍼라는 닉네임도 얻었고 여러 사람사이에서 상처도 종종 받았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조심하려고는 하지만, 여전히 추진력 쩌는 오지라퍼로 활동 중이다.

내가 꾸린 대표적인 집단은 나의 인맥 중에 ‘자연’, ‘요리’,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으나 멍때리며 쉬고는 싶은’ 등의 키워드에 추출된 몇 명으로 구성된 캠핑클럽이 있다. 그리고 전국을 누비며 활동하는 직업의 특성상 전국에 지인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누가 서울로 일 때문에 온다고 하면, 그를 아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게 해서 그 집단의 즐거운 시간을 단둘이 아닌, 적어도 세 명 이상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추진력은 개인전과 같은, 나에게 화려한 조명이 감싸주는 특별한 행사 날에 더욱 두드러지게 발휘된다.


2018년,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 오프닝 날, 나의 지인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모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그룹으로 묶을지 머릿속으로 빠르게 테이블을 그렸다. 서로는 잘 모르지만, 각각 전공과 취미가 비슷한 친구들 한 테이블, 대학원 친구들 한 테이블, 혼자씩 온 친구들은 뻘쭘할 테니 내가 그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소개를 해주면 되겠군. 이렇게 해서 그려진 테이블대로 좌석 배치를 마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공유했다. 그 이후에는 그들 각자가 알아서 서로의 방식으로 연락을 취하며 지낸다. 내가 깔아 놓은 무대에 좋아하는 사람들을 출연시키고, 함께 극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이 추진력과 오지랖은 대체 왜 발휘되는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했으나, 이 표를 보는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아, 난 세계 평화를 꿈꾸기 때문이었어.’


어떤 시상식에서 배우 황정민이 수상소감으로 한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스태프들과 조연배우들이 고생스럽게 차려놓은 밥상을 본인은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데 스포트라이트는 주연배우 혼자만 받게 되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다고 말하면서 이 비유를 들었다. 이 비유를 내 오지랖에 대입해보자면, 내가 준비한 어떤 무대에서 그저 재미있게 놀아주면 되는 것이 내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그들을 초대하고 함께 어울려 그 무대 위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은 것일 뿐이다. 내가 초대한 무대 덕에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고마워 한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 마음과 말들,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 그들 덕에 내 삶 역시 행복해졌고 가치있어졌기에 스태프나 배우, 둘 중 누가 더 미안하고 고마운 것은 없다. 함께 그 밥상에 차려진 것을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차린 무대에 나 혼자 서야 한다면 나는 외로워서 미쳐 죽을지도 모른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도 많고, 나의 마음과 그들 마음의 크기가 같지 않기에 상처받고 넘어지는 일도 허다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진력과 오지랖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가장 빛나는 능력일 테니, 앞으로도 세계평화주의자답게 더 큰 무대를 만들어봐야겠다. (이런 나의 성향을 진작 알았다면 헤드헌팅회사를 차렸을 것이다. 다음 생에 또 ENFJ로 태어난다면, 헤드헌팅회사 대표나 해볼까)

이전 02화아가씨 무슨 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