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학도 A, 21세
“강렬한 스타킹의 색을 즐겨 신는 사람”
수신번호 없이 나에게 도달한 문장이었다. 대학생 때, 그림 작업을 위해 친구와 지인들에게 나에 대해 한 문장으로 요약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흔하지 않은 이 묘사가 좋았고,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장을 간직하고 있었다.
스타킹을 즐겨 신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신체 부위 중, 내가 가장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발목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보다 발목이 가늘어서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치마나, 밑단이 많이 내려오지 않는 바지를 자주 입는 편이다. 그래야 나의 여성미 넘치는 발목을 과시할 수 있으므로.
치마를 자주 입다 보니, 스타킹을 신으면 조금 더 다리가 예뻐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맨다리가 아닌 커피색 스타킹을 신으면, 마치 태닝을 한 것 같은-잘 태워지고 건강한 다리를 일시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살이 비치는 검은색 스타킹을 신으면, 왠지 모르게 야한 여자가 된 것 같아 스스로가 섹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찬 바람이 불면, 치마를 입을 때 원하지 않아도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껏 올라오는 닭살을 목격하게 되므로) 10년 전, 뉴욕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세 번의 사계절을 보내면서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스타일과 색감의 스타킹이 나의 스탐과 신탐*까지 상승시켰다. 스탐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신탐은 따라붙는다. 멋진 다리를 더 멋지게 완성해주는 것은 신발이니까.
그러고 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양말가게와 신발가게는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그 덕분에 혼자 사는 나의 집 현관엔 마치 다섯 명 정도가 사는 것 마냥 각양각색의 신발이 즐비하다. 뉴욕의 H&M, 포레버 21, 유니클로 같은 매장에 가면, 다양한 스타킹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서 나는 다종다양한 스타킹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색은 자주색, 보라색, 청녹색, 회색의 스타킹이었다. 무난한 듯하면서도 살짝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색들이라 나의 다리, 발목을 내세우기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스타킹은 참 이상한 물건이다. 다리의 모양새가 그대로 드러나는, 다리에 철석같이 달라붙는 그것은 다양한 색들로 사람의 신체를 묘하게 변모시킨다. 음.. 뭐랄까. 뭔가 판타지적이다. (그래서 스타킹 페티시즘을 가진 변태들이 있는 건가? 어쩌면 나도 그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 색이 있는 스타킹을 신으면, 마치 시대를 앞서가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힙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적어도 뉴욕에선 힙한 20대였다. 나에게 무한대의 자유를 주었던 곳이었고, 어떻게 하고 다녀도 예뻤을 몸무게였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는 강렬한 색의 스타킹을 신고, 예쁜 색의 양말을 신고, 멋진 신발을 신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한껏 멋을 부리고 나간 날은 나의 워킹도 덩달아 당당해졌다.
어느덧 나는,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 발목이 드러나면 시린 30대 중반이 되었다. 발목도 시리고, 보라색 스타킹은 쳐다만 봐도 민망해진 몸무게와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스타킹을 수집한다. 스타킹을 꼭 신어야 하는 이런 계절이 오면, 어떤 색을 신을지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이 즐겁다.
먼 훗날, 누군가에게 여전히 강렬한 색의 스타킹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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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킹을 탐냄(스탐), 신발을 탐냄(신탐)의 줄임말로 내가 만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