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무슨 일 하는데?

반백수 B, 32세

by Eugene

2016년 2월. 그 당시 나는 누구에게도 티는 내지 않았지만 하는 것마다 실패하던 날들을 보내던 때였다. 하는 일도 생각처럼 되지 않고, 내는 공모마다 족족 떨어져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삶의 의욕마저 잃었다. 그렇게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요인은 아빠의 자존심이었다. 큰돈 들여 미국 유학까지 보내놨는데, 번듯한 직장도 없이 알바에, 계약직에 불안한 미래를 가진 데다가 남자친구도 없었으니 그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만든 셈이었다. 막상 당사자인 내 자존심은 괜찮았는데, 아빠가 견디지 못한 것을 보면 어지간히 날 사랑하셨나 보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한 가정의 가장이 고학력빙신인 딸로 인해 무너진다면 그것은 너무나 괴로울 일이었다. 그리하여 오랜 시간 익숙하게 해 온 그림과, 가르치는 일을 모두 접고, 아무 회사에나 들어가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나 싶어 무미건조하게 이력서를 쓰던, 잔혹했던 겨울이 바로 2016년 2월이었다.


집 밖을 나서면 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집에서 나가지 않고 약속도 만들지 않았다. 그때 친한 언니가 만나고 있던 남자와 궁합을 보고 싶은데, 혼자 가기엔 무섭다고 함께 가자고 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신내림 받은 지 얼마 안 돼서 엄청 용하대.”라는 말에 가벼운 나의 귀가 팔랑거려 따라나섰다.


신점은 처음이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괜히 처음 가는 낯선 곳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긴장되는 길을 거쳐 점집에 도착했다. 상상 속의 신내림 받은 점집치고는 깔끔하고 정돈된 방에 점쟁이 선생님도 말끔한 외모를 지닌 아주머니였다. 할아버지 신이 그녀에게 내려오시면, 갑자기 하품을 하고 담배를 피우며 말씀을 하셨는데, 그 경험이 꽤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언니가 궁합을 보고 일어서려던 찰나, 점쟁이께서 언니 옆에 앉은 나를 보며,


“아가씨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어?”


라고 물었다. 복채는 5만원. 그 당시 나에겐 큰돈이었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할아버지께서 내려오신지라, 놓치긴 아쉬울 것 같아 생년월일을 말씀드렸다.


“곧 이동수가 있겠는데? 거기 가면 사람도 많이 만나고, 하는 일도 잘되고 잘하 면 인연까지 만날 수도 있겠어. 아가씨 무슨 일 하는데?”

“저 학생들 가르치면서 그림 그리는데요.. 근데, 요즘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해야 하나 싶어서 직장 들어가려고 이력서 쓰고 있어요.”

“예술, 디자인, 교육 쪽 아주 천직인데 왜? 올해는 곧 어디 갈 것 같은데.. 좀만 기다려봐.”


되는 일 하나 없던 시기라서 그 점쟁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 복채로 낸 5만원이 아까웠지만, 함께 간 언니가 그분과 결혼한다면 축복하는 마음에 보탠다고 생각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행히 그 언니는 그분과 결혼했다)


다시 이력서를 쓰고, 내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스타트업 회사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해당 업계에 경력이 없기도 하고, 스타트업 회사라는 이유로 열정페이에 가까운 급여를 준다고 했다. 면접을 보고 집에 오는 길은 내 자존감을 더 바닥을 치게 했다.


날씨가 좋지 않던 어느 날, 집에서 종일 머무르며 문득, ‘내가 과연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일까?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감이 몰려왔다. 나의 육체는 살아있었지만, 정신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다행히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 봄이 오기 시작했고, 날씨와 햇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는 다시금 일어서려 노력했다. 그때, 지원했던 대구의 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기차에서 갑자기 얼마 전 만난 그 점쟁이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말을 믿게 된다면 의지할 것 같았기에, 그저 ‘준비한 만큼 최선을 다하고만 오자’라는 다짐을 하며 면접을 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2016년 초, 날 유일하게 받아준 대구의 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난 많은 사람을 만났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어쩌면 나를 지금까지 예술가로 살아오게 한 원동력은 대구에서의 그 일 년일지도 모르겠다. 그해 겨울, 점쟁이의 말이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어쩌면 실제로 그렇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동수가 생겼고, 많은 사람과 일들을 얻었다.


많은 것들로부터 실패하고 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날 유일하게 필요로 했던 그곳이, 점쟁이의 말마따나 나의 천직을 지탱시켜주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을 지탱시킨 것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려 시도한 나의 노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우리 인생은 미끄럼틀 (때로는 쉬워).

근데 뭐 어쩌겠어?! another day another struggle (때로는 안 쉬워)”


다이나믹 듀오 7집 수록곡 “거품 안 넘치게 따라줘”에 나온 이 가사처럼, 우리 인생은 때로는 쉽게 가다가도 때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인생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켜내기 쉽지 않았던 나의 아슬아슬했던 직업을 (여전히 쉽진 않겠지만) 이제는 견고하게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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