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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롱 Apr 14. 2020

존재하는 내일에 대한 나의 오늘

2018년 4월 13일의 글

부활절에 목사님이 물으셨다. "여러분, 오늘이 있으니까 내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일이 있으니까 오늘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오늘이 있으니까 내일이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내일이 있으니까 오늘이 있을수있는겁니다. 언젠가는 내일이 없는 날이 와요."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죽은뒤에 천국에서의 내일이 있을거라고 믿는다'는 이야기였던거같다.

난 내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산다는것이 무엇인지 안다. 한라산에서 눈보라속에 조난당했을때에도, 강남역사건을 도울때에도, 얼마전 큰 교통사고가 났을때에도 내일이 없을수도 있다는 생각은 순간적으로 나의 오늘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후회가 바람처럼 쓸쓸하게 스쳐지나가는 그런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면서 행복해지기도 하는 이상한 기분이다.

오히려 내일이 있다는 사실은, 날 겁나게했고 막막하게했고 걱정되게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눈이 쏟아지고, 길도 나무도 눈에 묻혀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라산에서의 조난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수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동시에 온몸에서는 '죽을 힘'을 만들어냈다. 난 벼랑을 타며 죽음이 눈앞에 서린 그 와중에도 햇빛이 스치는 그 아름다운 순간들을 사진에 남기려 셔터를 눌러댔다. 그 순간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행복부터 지키지못한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그리고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는 와중에 따뜻한 집에서 쉬고있는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희망이었다. 여길 벗어난다면 나의 행복에 온힘을 다해야지. 그런데 마침내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건너 그 천국이자 지옥같던 빙산을 뚫고 막상 내려왔을 때, 따뜻한 집으로 가는길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모든 힘이 풀려서 온 몸이 아파왔고, 다음 날부터의 일정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남역사건을 도우면서 나는 피해자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내일을 살고있는 내가 너무 이상하고 슬펐다. 사건을 깊이 알면 알수록 '나의 일'처럼 느껴졌다. 유가족들 곁에서 동화된것일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에 난 매일 매일 내일이 없는것만같았다. 오늘을 살아내는게 너무 버거웠다. 어떨 땐, 아니, 대부분은 내일이 없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오늘이 너무 소중하기도 했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오늘이 다르게 다가온 것이다. 나에게 오늘과 내일이란 그런것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져 3중추돌사고가 났을때에는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아 부딪힌다!'는 생각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몇초의 짧은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이 편안했던 이유는 그 순간만이 전부였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사고가 난 이후에 난 죽지않고 살아있었다. 깨닫는 순간, 곧바로 돈걱정부터 엄습해왔다. 몸이 아팠고 앞차가 찌그러졌기 때문이다. 곧이어 직장 출근이 걱정됐다. 바쁜시기인데 어떡하지, 전화부터 해야겠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떡하지.. 폐차하면 출근은 어떡하지. 앞차 사람들은 어떡하지. 보험금은 어떡하지. 걱정과 두려움 뿐이었다. 실제로 직장에 울면서 전화부터했다. 눈 꽉감고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싶었는데 눈뜨고 눈앞에 불어오는걸 다 맞아야만했다. 그게 나의 '존재하는 내일에 대한 오늘'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오늘과 내일이라는것은 죽음의 경계다. 행복은 오히려 죽음과 가까울때 다가오고, 오늘이 바로 그 행복이다. 내일을 기억하는 한 오늘은 온전히 행복해질 수가 없다. 내일은 언제나 나에게 너무 무겁기만했다.

그렇기에 내일을 준비하는 나보다는 오늘을 사랑하는 내가 더 행복하다. 보다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내가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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