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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Feb 01. 2021

02. 네 덕분에 월요일이 두근두근해, 싱어게인!

이렇게 스며들어버릴 줄이야!

 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 그 유명했던 슈퍼스타 K도, 쇼미더머니도, 미스터트롯도 본 적이 없다. 자의적으로 챙겨봤던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면 보이스코리아 1과 미스트롯 1 정도였는데 전자는 초중반까지만 열심히 봤고 후자는 인터넷이 안 되는 할머니 댁에서 혼자 자가격리를 하며 할 수 있는 거라곤 TV를 보는 것 밖에 없어서 마침 재방을 해주길래 시간이 맞으면 채널을 넘기지 않았던 게 다이다.

 기본적으로 경쟁을 하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오디션의 특성상 누군가의 간절함을 동력 삼아 벌어지는, 누군가의 삶을 좌지우지하게 되는 트루먼쇼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귀국 후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나가지도 않고(귀국 후 아직도 얼굴을 못 본 지인이 많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동네에서 동네 친구만 잠깐 얼굴을 보았다(우리 동네는 걸어서 최대 40분이면 모든 곳을 다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읍이다.). 그러다 갑자기 동네 소기업에 취업했는데 알레르기를 얻어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사람이 미쳐가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바람이라도 쐬지 않으면 진짜 썩어 들어가 죽을 것 같아서 초보운전인 친구의 차를 그야말로 목숨 걸고 얻어 타 바다에 갔다.


 트윈베드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백색소음 삼아 틀어놓은 TV의 채널을 돌렸다. 어라? 무려 이선희 님이 심사위원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여성 심사위원 네 분 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여서 일단 채널을 고정시켰다. 특이하게도 참가자들을 이름이 아닌 번호를 붙여 부르고 있었다. 순간 귀를 사로잡은 손 풀기용 기타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연어 장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왔는데, 엄마 따라 우연히 잠깐 스치듯 본 팬텀싱어에서 본 그 사람이었다. 그때도 목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예선에서 부른 곡의 시작과 마지막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다음 주, 채널을 돌리다가 다시 그 프로그램의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나올까 궁금해하며 보다가 불과 며칠 전에도 소식을 궁금해하며 노래를 들었던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완벽 응원 모드가 되어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게 만들었던 그는 탑 10에 무사히 안착하여 탈락 없이 이름을 공개하였다. 불행의 그림자를 무사히 떨쳐낸 듯하여 응원하는 사람마저 기쁘게 만드는 그 이름은 레이디스코드의 이소정 님이다.



 이쯤 되면 프로그램명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프로그램인지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바로 싱어게인이다.


 개인적으로 참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여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성비와 연령비를 맞췄던 프로그램이 있었던가. 처음에 주니어 심사위원들을 보고 '저들이 심사위원으로 있을 수준인가?'라고 생각했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그저 기성세대의 기준으로만 평가받던 것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싱어게인에서는 갑을관계가 비교적 적게 나타난다. 주니어와 시니어 심사위원 간에도 위계는 나타나기 쉬운데 자칫 그럴 수 있는 부분을 '요즘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를 물어보며 위계질서를 환기시킨다. 모두 동등하게 한 표의 어게인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 소신껏 투표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심사위원과 참가자 간에도 상호작용은 이루어진다.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참가자는 역시 45호 윤설하 님이다. 심사위원장인 유희열 님이 공연을 본 적이 있다고 하는, 이 최고령 참가자는 비록 2라운드에서 애석하게도 탈락하셨지만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던 모두에게 도전정신과 큰 울림을 선사하셨다. 한 명 한 명의 간절함이 부딪치는 격동의 초반부에서 제작진은 최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악마의 편집을 지양한다.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각자의 매력을 보여주고, 이름을 공개하며 그 순간 그 참가자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47호 요아리(강미진) 님의 경우는 또 어떤가. 1라운드에서의 그 무대를 보면 누구나 탈락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고 3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무대공포증을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지난 탑 10 결정전에서 연인이란 곡을 부르며 자신의 어마어마한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며 성공적으로 탑 10에 안착하게 된다. 그가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보며 실패하면 다음 기회가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만 응원과 함께 기회를 준다면 잘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사회는 그들에게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따스한 관심과 그로 인해 힘을 얻어 극복하고 끝내 피어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다가 그때 그 강미진이란 사실을 깨닫고 더더욱 기뻤고.


 락의 불모지에서 꿋꿋이 락을 지켜나가는 29호 정홍일 님은 또 어떤가. 곧고 탄탄하고 기교를 쓰지 않고 내지르는 소리는 언제나 피를 끓게 만든다. 락과 밴드 음악을 좋아하지만 한국에서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 슬펐는데, 무려 1998년도부터 헤비메탈 밴드를 해왔다는 그의 도전을 보며 제발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더더욱 이선희 님의 슈퍼 어게인이 너무나도 감사했고. 이렇게나마 저런 창법을 들을 수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벼려진 그의 강철 같은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장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해답을 가져다준다.


 화제의 30호 이승윤 님은 또 어떤가. 사실 첫 무대에서의 심사평에는 그렇게 공감하진 못했는데, 자신을 정의한 '배 아픈 가수'라는 말과 그 의미에 대해 말한 인터뷰가 참 공감이 되었다. 나 또한 어째서인지 너무나 잘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정말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하는 그 스킬에 대해 배가 아팠던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의미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매회 이어지는 인터뷰가 참 공감을 주었던 그가 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제대로 논란을 일으켰다. 물론 나에게는 극호였던 무대였고! 이게 이런 가사를 가진 노래였다는 걸 처음으로 제대로 인식했던 것 같다. 이런 노래를 부른 이효리 님의 멋짐과 그걸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자기 식으로 바꿔낸 이승윤 님이 너무나도 멋졌다.


 본인이 1 어게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다른 참가자들을 웃으며 응원하던 55호 하진 님과 국보자매로 멋진 듀엣을 보여줬던 42호 김은영 님과, 69호 소야 님. 이 프로그램에서 가수 인생 처음으로 감정을 터트려버린 40호 천단비 님은 또 어떤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앞으로의 그의 음악이 정말 기대된다. 서로 응원해주는 사이좋은 참가자들의 모습 또한 참 보기가 좋다.


 탈락자 한 명 한 명도 너무나도 애정이 가는 이 신기한 프로그램은 지금 탑 6 결정전이 방영 중이다. 처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생방송으로 챙겨보고 있는 지금, 누가 탑 6에 들어가든, 누가 우승을 하든 참가자 모두의 삶을 응원한다. 잊지 않고 그들의 음악을 꼭 챙겨 들을 것이다. 지금은 일단 집중해서 본방을 봐야지! 좀 더 좋은 소리를 위해 헤드폰도 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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